삶과 죽음이라는 두가지의 순환 속에 놓이면 죽음이라는 것에 무뎌지기 마련이다. 살아감에 있어 죽음이 항상 옆에 있다는 사실, 그 두가지의 공존의 의미를 망각한다. 서서히 다가오는 죽음을 바라보면 그 또 한 죽음이 무섭지만은 않다. 오히려 멋적인 미소를 보일 수 있으리. 그런데 불연 죽음이 나를 마주한다면... 그렇게 갑작스럽게 닥치는 죽음을 마주보면 ‘살고 싶다’ 라는 생각이 든다. 아니 삶이란 것에 집착이 가기 시작한다. 마치 다시는 보지 못할 일요일 아침의 느릿느릿한 햇살과 그렇게 즐겨 마시던 따끈한 핫쵸코가 더이상 내겐 없음을 의미하자, 나도 모르게 뜨거운것이 볼을 스친다. 그렇게 난 26살 죽음을 마주봤다. 결코 내 일이 아닐 것만 같았던 그 차갑고 시커먼 무의 공포는 서서히 침식해 들어왔지만, 갑작스럽게 엄습했다. 나의 어제는 기다림의 초조와 불안 속에서 약간의 안도감만이 나를 지탱해 주었다. 결코 내게 이런 일이 오지 않으리라는, 혹은 아직은 젊음의 무한한 생명력이 지켜줄 것 이라는 어쩌면 든든한 안도감. 그러나 오늘은 그것이 현실과 마딱뜨려 부서져 버린다. 내일이 없는 것, 앞으로 몇시간 아니 몇분 후 가 없는 것. 시간의 멈춤. 무엇인가의 존재자체가 무가 되어버린다는 것. 그 감각에 대해 아직도 막연하다. 내가 아닌 다른 그 무엇인가가 사라져 버리면, 이내 기억으로 남을 것임을. 마치 서랍장을 넘어가버린 내게 너무 소중했던 만년필처럼. 혹은 이미 세상을 떠나가 버리신 우리 큰엄마. 미미한 기억이 있고 그리고 간혹 그립고 연민에 젖어 다시금 떠올릴 존재가 되어버린다. 그러나 내 존재가 사라짐은 무엇을 의미 하겠는가.분명 코 앞까지 와서 나를 농락하고 간 고통과 두려움 그리고 공포 이 모두가 순간이 었지만 나에게 생명에대한 강한 집착을 보여주게 되었고, 그 것으로 말미아마 해방이라는 괴기한 생각에까지 이른다. 내가 느끼는 그 모든 공포와 힘겨움이 사라지는 것이다. 내가 사라지는 것이다. 정말 애로틱한 슬픈 상념. 그것에서 묘한 해방이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해방이라는 것을 느낀것이 죽음을 마주한 전인지 후인지는 잘 모르겠다. 허나 죽음이라는 것을 마주하면 확실한 삶에대한 집착과 내 자신에 대한 연민 그리고 그것을 모두 내려 놓으면서 자유로와 질 수 있음을 깨닫게 되는것은 확실하다. 아이러니한것이 자유로와 질 수 있음을 알지만 그 마지막. 마지막이 무엇이 어떻게 오던간에 그 마지막까지 삶에 대한 집착을 놓을 수 없을 정도로 두려움에 가득 차있다. 소위 나는 쿨한 녀석. 죽음 따위 무섭지 않다는 개념적 이해. 그러나 그것이 막상 신체에 어떠한 형태로 힘이 가해지면 생각은 자유로울 수 있으나 그 깊은 곳에 두려움이 있다. 자신에 대한 무한한 연민이 있기 때문이다. 심연의 바다 속 깊은 어둠 속에 닿으면 그 두려움을 마주한다. 곧잘 태연하던 의식과 행동양식까지 모두다 액체질소와 닿아 얼어버린, 그 거대한 참치의 죽음 처럼, 마치 생전의 기억을 품고 아.직.도. 삶을 살아가는 듯 한 애환을 눈에 품은 채 얼어버린다. 그것이 바로 자신의 깊은 내면 속 두려움을을 마주 할 때다. 너무나도 소름끼치게 차가운 그러나 그 일말의 차가움조차 느끼지 못할 찰나, 온 몸이 두려움에 휩싸인다. 그 공포는 마치 태고적부터 그곳에 존재하리. 그저 그것을 자각 못한채 순간순간마다 농락하듯 그 존재는 태연히 모습을 비추고 이내금 사라져 버렸던것이다. 빛이 꺼져버린 방안에 놓여, 실루엣 처럼 놓인 사물을 피해 방을 빠져나갈 때 어른거리며 이미 내 앞에서 지켜보는 그것. 나를 들여다보며. 내가 들여다본다. 마주한다. 얼마나 멀리에 있는지 가늠할 수 없지만, 그것의 시선을 소름으로 느끼며 둘은 항상 마주 보고 있다. 깜깜한 심연 속 어둠이라 실체를 보지는 못하지만, 나는 이미 알고 있다. 태고적부터 나를 지켜본 그것. 내가 마주 하고 있던 그것. 죽음에 대한 공포이자 내안의 무한한 연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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