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은 서투른 대학병원과의 만남이다. 접수를 해야하고, 기다리고, CT촬영 결과 또한 미리 미디어실에 맡기어야하고, 기다리고, 또한 대학병원 카드를 만들어야하는 등 나름 길고 긴 단계를 밟아야만 나에게 통.보.해줄 사람을 만난다. 통보를 받기전 왜래 진찰이라 불리우는 공간에서 숨을 죽인채 기다린다. 그 공간은 엄숙하다 못해 숙연해지는 감정이 도는 곳이다. 상황에 따라. 경우에 따라 틀리겠지만, 애써 힘겨움을 숨긴 듯 하기도 하고, 방금 옆에서 짧은 머리로 남편과 통화를 하는 아주머니 처럼, 검사 결과가 좋아 내년을 기약하며 가는 분도 있다. 그러나 저마다 다 이야기가 있다. 비통하고 슬프지만 희망이 있다고 하는 이야기들. 이루 다 말할 수 없는 감정으로 꽉찬 대기실 안에 그 격정과 희비와 초조 그리고 희망이 교차하는 이 터질듯한 공간이 의식적으로 차갑게 온다. 고요하다. 시끄럽지만 침묵이 있다. 그러고는 이내 마치 ‘쨍그랑’ 하고 깨어지는 침묵에 잠겨 있던 의식이 다시 돌아 온다. 방안이다. 순백의 천사라고 하였는가. 허옇게 분칠한 방안과 허연 가운을 입고 내 기록을 흝으면서 기다리는 이, 그리고 순백의 책상, 조명, 마치 그 무엇 하나 백색이 아니면 안될 듯 한 공간에 홀로 이물질이 되어버린 듯한 기분으로 초조히 기다린다. 그리고 터지는 통보. 12분을 원칙으로 하는 대화아닌 대화. 통보. 처음에는 멍하니 긴장한 탓에 무슨 말인지도 모르게 “아 네… 그렇습니까?” 연신 반복하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가슴에 암덩어리가 있다더라. 그리고 그것이 이미 가슴뼈를 파먹었더라… 일타 이타 삼타. 그렇게 정신없이 두들겨 맞으니깐 고작 자그마한 목소리로 말을 할 수 있었던 것이 “심각한가요?” 였다. 아직 약간의 정신은 있나 보다, 나 죽는겁니까라고 물어보지 않은걸 보니… 어쨌튼 이에 역시 아주 짧은 답변 “한 주먹만한게 가슴에 있는데 정밀 검사를 햐야 깃수가 정해집니다.” 기수가 도대체 무엇이고간에 어쩌면 표정하나 변하지 않는 상대방으로부터 과도한 역겨움이 느껴진다. 이 역겨움은 당황스러움은 접수처에 가서 다시 한번 나를 당혹케 한다. 젊은 여성이 마주하고 돈 몇천원을 손에 쥐어주며 한다는 소리가 “중증 암환자 혜택으로 처음 접수비에서 돌려드립니다.” 장난하나. 아직 나의 병이 내게 온 것을 인지 하지 못한 상태에서, 혹은 영화나 드라마에서만 나오는 그러한 좌절과 슬픔과 분노를 채 느끼기도 전인채 그저 병원의 순서를 밟아 가는 과정인 것일 뿐이였는데... 인지. 아직 나의 아픔에 대한 병을 의식적으로 인지하기 전. 그러한 두서 없는 상하 좌우 그 어느 방향감 조차 없이 구름위를 걷는 듯한 몽환적 상태에서 그 몇푼안되는 돈을 꼬깃 가방에 넣으며 도대체 여기가 어딘가 싶더라. 중.증.암.환.자. 내가 전해 들은 것이 머리속에서 채 인지되기도 전에 이미 모든 것이 전산상으로 나는 이미 중증암환자였다. 아무렇지 않듯 나 역시 한개의 또 다른 환자일 뿐 아무런 감정없이 기계적 반응을 보이는 이와, 달콤한 미소를 머금고 죽음을 다시 한번 되 환기 시켜주는 사람들.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이곳에 객관적 방관자만이 웃음을 머금고 친절아닌 친절한 행위를 하고 있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