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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사활동의 이유    
글쓴이 : 나경호    24-10-05 11:33    조회 : 1,650
   4. 봉사활동의 이유.hwp (124.5K) [0] DATE : 2024-10-06 16:22:59

봉사활동의 이유

나경호

 

  퇴근 시간이 되자 약속한 듯 두어 명의 사람들이 모였다. 우리는 함께 차량에 타고 가까운 시장을 방문했다. 몇 가지 물품을 사서 예닐곱 개의 비닐봉지에 나누어 담았다. 찾아간 곳은 장애인이나 노인들이 사는 집이다. 주로 재래식 주택 한쪽 귀퉁이나 한적한 곳에 사는 그들은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이다.

  비닐봉지 안에는 그날 먹을 수 있는 음식이나 생필품이 들어 있다. 때론 제철 과일이나 채소를 담기도 한다. 매주 하는 일이지만, 그분들은 우리가 가는 날을 잘 아시고, 그날이 되면 기대감으로 우리를 기다린다. 우리는 그분들 집에 방문하는 거의 유일한 손님이다. 가족과 헤어졌거나 홀로 사시는 분들이라 명절이 되어도 온정을 나눌 사람이 없다. 이 일을 그만둘 수 없는 이유이다.

  회사 입사 후, 불우이웃 돕기 모임이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봉사활동은 시간과 경제적인 여건이 넉넉한 사람들이 하는 일로 인식하고 있었는데, 박봉에 쉽지 않은 삶을 사는 공무원 집단에서 하는 일은 신선하게 다가왔다. 가입 후 활동에 깊이 매료되었다. 일 년이 지난 어느 날, 모임의 회계를 맡아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20 대 중반 모 페인트회사에서 영업사원을 한 덕분에 회비 걷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회계에서 총무, 회장으로 역할이 바뀌는 데 시간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모임의 가입에 선뜻 동참하던 회원들은 봉사활동을 직접 하는 건 부담스러워했다. 그러는 사이 50 명이었던 회원 수가 150 명이 넘어섰고, 회비도 늘어 돕는 가정의 수도 증가하였다. 25 년을 함께 참여했고, 그중 회장직을 20 년이나 맡았다.

  일부 회원들은 내가 장기 독재를 한다고 뒷말을 하곤 했다, 백방으로 후임자를 물색했지만, 회장을 맡으려는 이는 없었다. 퇴임 한 달을 남겨둔 시점에서야 나는 회장직에서 물러날 수 있었다. 부회장이 그 직을 이어받았다. 우리가 하는 일은 불우이웃들에게 매주 부식을 전달하고, 매월 약간의 생활비를 지원하는 것이다.

  가입 당시 연간 300 만 원에 달하던 사업 규모가 퇴임 연도에는 3,000 만 원으로 확대되었고, 돕는 대상 또한 변화가 있었다. 초기에는 소년소녀가장 3명을 돕는 것으로 시작했는데 퇴임 시에는 불우이웃 10 가정, 사회복지시설 4 , 국제 아동 6 명으로 늘었다. 그늘진 곳은 어느 사회에나 존재한다. 우리나라처럼 인구밀도가 높고 생존경쟁이 치열한 곳에는 부적응자가 있게 마련이다.

 

사회의 그늘은 지역에 함께 사는 이들의 몫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평소 나의 지론이다. 우리가 한 일은 사회의 그늘진 곳 구석에 촛불을 몇 개 비추었을 뿐이다. 지금은 옛 추억이 되었지만, 훌륭한 후배들이 일을 더욱 잘 해주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부모님은 넉넉하지 못한 살림과 부족한 배움에도 불구하고, 어려운 이웃에 대한 따뜻한 마음을 나에게 물려주셨다. 맹자는 인간의 본성에는 인(), (), (), ()의 네 가지 덕이 있으며 그중 인()의 근본은 측은지심이라 했다. 측은지심이 인간의 본성이라는 말에 공감이 간다. 내가 노력하거나 스스로 깨우쳐 얻은 게 아니라, 부모님을 통해 자연스럽게 물려받았기 때문이다.

조만간 전에 다니던 직장에 찾아가 보려고 한다. 그동안 방문하고 싶었으나 마땅한 명분을 찾지 못해 망설이고 있었다. 이번 기회에 후배들을 만나 그때의 추억을 다시 소환하고 내 안에 오랫동안 묵혀 두었던 측은지심도 다시 회복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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