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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화꽃 향기보다 더 진한 향기는    
글쓴이 : 백두현    15-09-01 09:26    조회 : 5,186
국화꽃 향기보다 더 진한 향기는
백두현
 
얼마 전, 평소 아끼던 고향 후배가 모친상을 당했다. 그래서 꽃집을 운영하는 친구를 통해 내 이름 석 자가 크게 새겨진 조화를 보냈다. 그런데 그 조화라는 것이 내 형편에는 맞지 않는다. 그렇게라도 품위를 유지해야할 마땅한 명예가 있는 것도 아니고 딱히 나를 널리 알려야 하는 사업가도 아니라서 그렇다. 또한 나는 쓰는 것보다 버는 것이 더 많아 남들보다 우월감을 갖고 살아가는 처지도 아니다. 그저 요란하지 않게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하게 문상이나 다녀오는 것이 사실은 내 격에 맞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평소 형편에 어울리지 않게 선뜻 조화를 보냈다. 이유는 상을 당한 후배가 외동아들이라 아주 조용한 장례식이 될 것 같아서다. 조용하다고 바로 초라한 것은 아니지만 아직 한국적인 정서는 그렇게 여겨지기 십상이다. 더욱이 어려서 고향을 떠났으니 주변에 사람이 많지 않을 것 같았다. 그의 직업 역시 힘 있는 갑의 위치가 아니라서 문상객이 붐빌 리 없다. 그래서 조화 하나라도 더 쓸쓸하지 않게 장례식장을 지키게 하고 싶었다. 남들 눈으로 보면 허례라도 좋고 낭비라도 상관없었는데 그런 생각이 든 이유는 이십 오년 전 참으로 초라했던 나의 그날을 기억하기 때문이다.
나의 어머님이 가신 날 장례식장에는 조화가 딱 하나 있었다. 다니던 회사의 사규에 의해 의례적으로 보내진 것이었다. 당시 내가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하자마자 돌아가셨기 때문에 그 하나 말고는 딱히 조화를 보내올 만한 곳이 없었다. 부고를 돌리면 통과의례처럼 보내주는 그 흔한 거래처 하나가 당시 사회 초년병인 내게 없었다. 친구들 역시 모두 나와 비슷한 처지라 아직 상조회 같은 조직을 만들지도 못했고 인사치레로 가짜 조화를 여러 개 구입할 여력도 없었다. 위로 형님이 한 분 계셨지만 마땅한 직업이 없었고 동생들 또한 군에 가 있거나 중고등 학생이라 조화는커녕 문상 올 손님조차 없었다. 가신 분 역시 평생 농사를 업으로 사신 분이라 바쁜 농번기에 누가 문상만 와도 감사한 일이었다.
그런데 그런 초라한 장례식장 풍경이 민망했던지 문상을 마친 친구들이 가지 못하고 고스톱을 치며 밤샘을 했다. 새벽녘에 휑한 얼굴로 하나, 둘 직장으로 돌아갔는데 그들이 가고 난 후 조화 하나가 더 배달되어 왔다. 조화의 리본에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ㅇ ㅇㅇ>라고 보낸 이가 적혀있는 것이 아니라 <죄송합니다. 백 두현 친구 일동>이라고 받는 내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친구들이 고스톱을 친 후 딴 사람의 돈을 강탈하듯 추렴해 병원 앞 꽃집에서 주문하고 간 모양이다. 순간 만감이 교차했다. 평소 조화에 대해 별 감동 없는 그저 그런 인사치레라고 여겼는데 조화라고 다 같은 조화가 아니라는 생각에 오랫동안 눈길을 뗄 수 없었다.
그래서 장례식장을 출발하는 버스 안에서 자꾸 조화가 눈에 밟힌 나는 결국 장례버스 뒷좌석 한 자리를 여유 있게 조화가 차지하게 하고 장지까지 갔다. 사실 뭐 조화가 하나든 두 개든 쓸쓸한 건 마찬가지다. 더욱이 고스톱을 쳐서 딴 돈을 추렴해 국화꽃다발을 하나 더 세워둔다고 장례식장 분위기가 갑자기 훈훈해질 리도 없었다. 그렇더라도 그때 하나 더 배달된 조화는 친구들의 마음이 섞여져 큰 위안이 되었다.
대개의 조화가 가지는 운명은 이렇든 저렇든 3일만 지나면 지고 말 꽃들이다.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개가 형식적이기 마련이라서 그렇다. 동문회나 상조회 같은 모임에서 정관으로 정해져 있어 타인의 손을 빌려 보내진다. 조직생활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회사의 사규에 의해 조화가 보내지도록 정해져 있어 일종의 계나 다름없다. 어쩌다 이름을 각인시키고 싶은 거래처에서 접대용으로 보내지거나 과시가 필요한 사람이 자기홍보용으로도 많이 보낸다. 그래서 조화를 배열하는데도 부나 권력의 고하에 따라 순번을 정하는 것이 요즘 장례식장의 흔한 풍경이다.
적지 않은 가격으로 보내졌는데도 장례비용의 정산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고 꽃집의 매출이나 올리는 역할이 다인 조화에 대한 생각은 그렇듯 별로 인상적이지 못하다. 그렇다고 장례식장에서 묘지까지 따라가는 것도 아니다. 장례식이 끝나기가 무섭게 다시 차에 실려 꽃집으로 되돌아가 버린다. 그리고 약간의 재단장을 거친 뒤 다시 10만원 안팎에 팔려 이 장례식장에서 저 장례식장으로 돌고 도는 것인데 보내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이나 무슨 감동이 있을까 싶다. 
그렇더라도 장례식장에 조화는 어느 정도 필요하다. 형식적이라도 썰렁한 기운을 덜어낼 수 있어서 좋다. 바쁜 삶이기에 미안한 마음을 조금은 상쇄시켜서라도 나쁘지 않다. 미처 문상을 가지 못하는 사람의 핑계거리로도 좋고 가끔은 나처럼 돈으로는 부족해 조금 더 생색을 내기에도 그만이다. 무엇이든 쓰임새를 너무 삐딱하게만 생각할 필요는 없다. 툭하면 사과박스에도 담기고 비타500 박스에도 담겨 전해지는 돈이 지천인 세상이 되었지만 그에 비하면 조화에 쓰이는 돈은 얼마나 인간적인가. 적은 것보다는 많은 것이 좋고 없는 것 보다는 있는 것이 좋으리라.
나의 조화가 그렇게 기꺼이 보내졌다. 국화꽃 향기보다 더 진한 향기는 사람의 향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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