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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벌(間伐)    
글쓴이 : 백두현    18-03-26 17:54    조회 : 7,335

간벌(間伐)

백두현


 사무실에서 바라보는 앞 산 전체가 요즘 간벌(間伐)로 분주하다. 갈수록 울창해지는 수목을 솎아내는 중이다. 내버려두어도 좋을 것 같은 산이었는데 나무들의 경쟁을 인위적으로 간섭해 보다 순조롭게 자라도록 하려나보다. 서로의 간격을 확보해 나무들에게 보다 효율적으로 일조량을 확보하게 하고 원활한 바람의 흐름을 보장함으로서 남은 나무가 더 잘 자라도록 하는 것이다. 더불어 나무들 사이, 사이 풀들도 마음 놓고 숨 쉬게 해 토양을 기름지게 하는 일이라니 누가 뭐래도 유익한 행위다.

 

그러나 간벌(間伐)은 산을 보다 산답게 만든다는 의미보다는 아무래도 인간의 잣대에서 보다 경제적으로 만드는 행위에 가깝다. 난개발을 막기 위해 도시개발 정책을 실행했던 경험을 자연에도 적용하는 셈이다. 보다 보기 좋고 효율적인 성장을 위해 더러는 희생을 강요하고 더러는 졸부도 만들어주는 도시환경에 익숙해진 사람들의 생각을 산에도 적용하는 게 아닐까. 전문가들이 어련히 알아서 잘 할까만 모자란 내가 보기에는 그런 의미에서 그게 그거다.

 

참으로 곱씹어볼수록 슬픈 일 아닌가. 힘센 놈만 살아남고 약하고 못남 놈은 먼저 삶을 마감하게 하는 잔인한 행위다. 잘 자라는 나무야말로 내버려 둬도 잘 자랄 것을. 처음부터 햇볕이 적게 드는 불리한 위치에 자리 잡았다고 원죄를 질책하는 꼴이다. 정상적인 위치더라도 장애가 있어 자라지 못한 나무는 이미 힘겹고 서러운 처지인데 꼭 잘라내야 직성이 풀린다는 것인가. 경쟁력을 갖춰 잘 살고 있는 잘난 나무들은 훨씬 더 잘 자라게 하고 소외당한 나무들에겐 죽음을 강요하는 행위가 왠지 나로서는 서글프기만 하다.

 

인간세상의 도시개발도 그랬다. 그 많은 주택정책과 금융정책의 혜택이 경쟁력이 떨어지는 서민들에게 보다 많이 돌아가는 것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현실은 정책을 더할수록 가진 자에게 더 유리해 돈이 돈을 버는 세상이 되어버리기 일쑤다. 도시가 보다 깔끔해질수록 원주민은 갈수록 더 변두리로 밀려나고 개발의 이익은 소수 자본가의 주머니를 채워지기 십상인 것이 눈부신 개발과 발전의 폐해다. 그래서 그게 그거라는 생각이 들고 이렇게 짠한 마음이 드는 것이다.

 

그런데 간벌(間伐)을 바라보는 안타까움은 전부 그들의 탓만도 아니다. 나의 생각도 모자라긴 마찬가지여서다. 저렇게 잔인하게 베어내기 전까지 잘린 나무에 대해 언제 내가 관심이라도 가졌던가. 커다란 숲만 보고 위안을 얻었을 뿐, 나무 하나, 하나에는 아무런 생각이 미치지 못했다. 쓰러지는 모습을 본 후에야 비로소 미안하다는 생각 자체가 몰염치한 행위다. 쓰러진 나무들은 쓰러지고 나서도 자신을 쓰러트린 사람들을 위해 저렇게 유용한 목재가 되어 스스로를 내어주는 것을. 나무만도 못한 마음 씀씀이를 가지고 베어낼 자격을 가진 인간이라니 얼마나 미안한 일인가.

 

지난 세월을 돌이켜보자면 돈이 될 만한 아파트에 당첨되기 위해 청약을 한 것이 몇 번이고 남들보다 잘 살기 위해 짧은 머리를 쥐어짠 적이 몇날 며칠이던가. 철거민들의 아픔을 뉴스로만 보았지 내일처럼 속상해 본 적 별로 없었고 나보다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나의 편리함을 덜어낸 적 또한 결코 많지 않다. 부동산 세법이 어떻고 대출이율이 어떻게 변한다는 고시마다 내게 어떻게 소용되는지 계산에 분주했을 뿐 널리 세상에 이로울지 고민한 적 없었던 것 같다.

 

아무려나 간벌이 끝나면 앞산이 시원해지겠다. 잘려나간 나무들의 아픔을 딛고 남은 나무들은 더 잘 클 것이다. 시간이 가면 오늘의 미안함은 곧 잊힐 것이고 새로운 경쟁이 다시 시작되리라. 내일의 숲은 분명 오늘보다 나을 것이고 남는 자의 행복지수는 계속 올라가는 세상이겠다. 그렇더라도 오늘 간벌(間伐)의 희생 또한 소중하게 기억되기 바란다. 빌딩의 높이가 높아지고 찬란할수록 불편했던 사람들도 많았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세상이면 좋겠다.

 

또 한 그루의 커다란 나무가 힘겹게 눈앞에서 계속해서 쓰러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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