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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모님의 숫자세기    
글쓴이 : 백두현    19-02-14 14:37    조회 : 4,761

장모님의 숫자세기

 백두현

 

매일 아침 사무실에 출근하면 덜컹, 덜컹 기차 지나가는 소리가 들린다. 모닝커피의 진한 향과 기차소리가 버무려져 하루일과의 시작을 자연스럽게 알리고 있다. 그런데 그 기차소리라는 것이 갈수록 오랜 동반자 같은 느낌이다.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변함이 없어서다. 기차는 365일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같은 소리를 내며 목적지를 향한다. 역마다 다른 많은 사연을 담아 나르는 소리일 텐데 불평 한 마디 없이 종착역에 이르는 여정이 삶의 동반자 같아 마음이 늘 푸근하다. 어떤 날은 덜컹거리며 군인들이 행진할 때 장단을 맞추는 구령소리처럼 힘차게 하루의 시작을 알리고, 또 어떤 날은 지난 년에 하늘나라로 가신 장모님이 구수한 목소리로 하나, , 숫자를 헤아리는 소리처럼 들린다.

 

나의 장모님은 말년에 천식으로 많이 고생하셨다. 종일 공기청정기를 틀어놨지만 서울의 탁한 공기를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그 더운 여름에도 문을 열지 못하고 에어컨과 선풍기로 감당해야 했다. 세상 돌아가는 일을 닫힌 창문 안에서 TV로만 확인하셨으니 얼마나 답답하셨을까. 그래서 혹시 시골의 맑은 공기가 도움이 될까싶어 나의 집에 몇 달 모신 적이 있다. 충청도와 강원도 사이에 위치한 작은 도시인 제천에 살던 나의 집밖 공기로 한 숨이라도 어른의 호흡이 편안하셨으면 했던 거다. 그러나 병세가 중해 시골로 오셔서도 24시간 산소 호흡기를 달고 사셔야하는 처지는 마찬가지였다. 때문에 가까운 경로당 왕래조차 어려워 종일 집 안에 계셔야 했다. 그러나 내 집은 활짝 거실 문을 여는 것이 가능했다. 그래서 무료함을 달래려고 열린 거실 통 유리창 앞에 의자를 가져다 놓고 늘 앉아 계셨다. 그리고 멀리서 지나가는 자동차 숫자를 하나, 둘 헤아리고 계셨다.

 

거의 매일 같은 일과였다. “하나, , , ...”무심하게 지나가는 자동차를 나름 꼼꼼하게도 세셨다. 그러나 이 평범한 일상에서 발견한 안타까운 사연은 숫자 세기가 어느 순간에 자꾸 혼돈으로 멈추어진다는 거였다. 장모님으로서는 그나마 중요한 소일거리였을 텐데 아마도 여러 대의 차가 한꺼번에 지나가서일 것이다. “아이고 어디까지 세었더라?” 장모님은 다시 처음부터 하나, 둘 세기 시작하셨다. 그러나 그놈의 숫자는 예순 언저리에 이르면 반복해서 잃어버리셨다. 틀림없이 각지에 흩어져 사는 자식들 얼굴이 떠올라 혼돈하셨으리라.

그러다 어느 날부터인가 장모님은 지나가는 자동차 대신 베란다에 널린 다육이 화분을 세기 시작하셨다. 눈이 침침하신 이유였을 것이다. 움직이지 않는 화분을 센다는 것은 훨씬 쉽다고 여기셨는지 하나, , , ...” 자신 있게 화분을 세고 계셨다. 그러나 야속한 숫자세기는 다시 어느 순간에 멈추어지기를 반복했다. 백여 개의 아주 작은 화분이 모아져 있어 지나가는 자동차 세기보다 오히려 힘겨울 수도 있는 일인데 늙으면 죽어야지. 이제 서있는 것도 못 세네.” 하고 자조 섞인 목소리로 숫자 세기를 반복하셨다.

 

그런 장모의 모습이 옆에서 지켜볼수록 안쓰러웠다. 얼마나 심심하면 매일 잃어버리는 숫자세기에 집착할까 싶었다. 그러나 다른 한 편으로는 송구하게도 귀엽다는 생각이 들었다. 늙으면 어린애가 된다더니 그렇게라도 숫자놀이를 하면 치매예방도 되겠거니 안도감이 들었다. 생각할수록 다행 아닌가. 미세먼지에 창문을 열지 못하고 TV만 보시는 것보다 이렇게 시골에 오셔서 문을 활짝 열고 돼지 머리세기를 반복하기만 해도 서울생활보다는 백 배 낫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종종 친구처럼 장단을 맞춰보았다. “오늘은 몇 개까지 세셨어요?” “몰라, 예순 여섯인가부터 까먹었어.” 우습다는 생각과 안쓰럽다는 생각을 반복하면서 이렇게라도 관심을 가져주는 것 말고 더 이상 생각나는 효도가 내겐 없었다. 무능한 사위래도 상관없는 일이다. 세상 어느 부모가 큰 것을 원하던가. 빤한 숫자세기라도 서로 주고받을 거리 자체가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약간의 부채감이 덜어지는 것 같았다.

 

그로부터 멀지않은 날에 장모님은 병원치료를 구실로 서울로 돌아가셨다. 그러나 안다. 사위집이 불편하셨다는 것을. 그리고 먼지가 아무리 많아도 편했을 당신의 서울 집에서 기차가 덜컹거리듯 남은 삶을 살다 가셨다. 처음 온 곳으로, 영원한 안식으로 돌아가신 것이다. 다시 한 번이란 있을 수 없는 매정한 귀향이라 슬펐지만 받아들이는 것이 남은 자의 몫이다. 오늘도 기차소리는 여전하다. 오전 두 번, 오후 두 번 변함없이 덜컹거리며 지나간다. 그 어떤 난관에도 덜컹, 덜컹, 쉬지 않고 종착역을 향하는 기차 소리가 예순 아홉, 일흔, 숫자를 잃지 않고 헤아리는 강건한 장모님의 목소리인양 소리 내며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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