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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필을 쓰는 이유    
글쓴이 : 백두현    18-03-06 17:03    조회 : 5,420

수필을 쓰는 이유  

 백두현

              

  처음 수필을 쓰기 시작한 이후 7년이라는 세월이 지났다. 그간 두 권의 수필집을 엮어 세상으로 내보냈는데 자평하자면 기간에 비해 너무 많은 작품을 썼다는 생각이다. 그만큼 미성숙한 작품을 무책임하게 발표한 것은 아닌가, 걱정이 앞선다. 그러면서 생각하기를 도대체 나는 왜 수필을 쓰는가? 무엇을 바라 그토록 서둘러 발표하는가? 자문자답한 적이 많다. 답은 오롯이 세상을 향한 투정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다. 살면서 아쉬웠던 일, 아팠던 상처를 누군가에게 드러내며 위로받고 싶었던 거다. 나로서는 일종의 몸부림 같은 것인데 잘 살았다고 스스로 토닥이는 과정이었다고 믿는다. 말하자면 켜켜이 쌓인 내 안의 상처를 덧내기 싫어 돌고 돌아 치료하는 수단이었던 셈이다. 더 나은 미래, 보다 아름다운 세상을 꿈꾸며 누군가와 계속해서 따뜻한 소통을 원했던 것이리라.

 

  그렇게 만들어진 수필집을 비교적 여러 사람에게 보냈다. 선배 문인에게도 보내고 친구들에게도 보냈다. 더러는 학창시절 은사들이나 친척들에게도 보냈으며 회사 일로 알게 된 거래처의 지인에게도 기꺼운 마음으로 책을 보냈다. 그리고 답을 받았다. 예상외로 너무 많은 분들의 답을 받느라 한동안 바빴었다. 대부분 좋더라는 덕담이라 나름 글 쓰는 자로서 보람도 적지 않았다. 과분하게도 어떤 분은 글 속의 어떤 구절이 좋았다며 손수 전화를 주셨다. 또 어떤 분은 문학이라는 것이 거창한 것이라고 여겼는데 읽어 보니 내 얘기 같아서 읽기 편했다며 장문의 문자를 주셨다. 가끔은 예쁜 그림엽서를 보내주거나 자신의 저서를 답례로 보내오시는 분들도 많았다. 그리고 메일을 통해 일종의 감상문을 보내주신 분도 있었고 자신이 사는 지역의 특산물을 보내신 분도 계셨다. 이 모든 것이 감사하고 보람이었으며 분에 넘치는 은총이었다.

 

  그래서 고맙다. 관심이 없는 분들에겐 읽어달라고 강권하는 것 같아 일종의 공해일 수도 있었을 텐데 묵살하지 않고 살펴 주셔서 참으로 고맙다. 살펴주는 것으로 모자라 답례로 책을 사주는 분들은 더 고맙다. 글을 쓴 시간을 노동이라 보고 값을 매겨주는 것은 절대 아니겠지만 출판하기 위한 경제적인 부담을 덜어주려는 마음이 창작에 매진하라는 격려 같아서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이 모든 것이 고맙고 또 고마울 따름이지만 진짜로 고마운 분들은 마음으로 책을 읽어주시는 분들이다. 마음에서 마음으로 소통을 이룬 것이라 말할 수 없는 고마움과 책임감을 느낀다. 저자와 독자로 만나 나의 소통에 따뜻하게 귀 기울여준 것이니 글의 목적이 달성된다고 믿어서 그런 것이다. 그리고 감사하지 않는 것이 단 하나도 없었던 그 많은 답 중에는 유독 잊을 수 없는 전화가 두 통 있었다.

 

  한 통은 생면부지의 노부인에게 걸려온 전화였다. 남편 앞으로 수필집을 보내주셨는데 보름 전에 수신인이 저세상으로 갔다는 거였다. 얼마나 송구했는지 미처 살피지 못해 죄송하다며 앞으로 다시는 보내지 않겠다는 사죄를 드렸는데 뜻밖의 말씀을 하셨다. 남편이 살아있는 느낌이라 오히려 좋았다는 거였다. 평소 수필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앞으로도 보내주신다면 계속해서 읽어가며 죽은 남편을 대신하고 싶다고 하셨다. 순간 미안한 마음이 금세 사라지고 가슴이 편안해졌다. 나의 수필이 누군가의 마음을 조금은 훈훈하게 했다는 사실로 기뻤다. 처음부터 독자를 정하고 쓴 글이 아닌데 그렇게라도 역할이 있었다니 보람 있는 일 아닌가. 수신인을 정하고 보낸 수필집이었지만 수신인을 잠시 잃더라도 나의 글이 굽이굽이 물길처럼 돌고 돌다 결국은 자생력을 가지고 임자를 만난 것이다.

 

  또 한 통의 전화는 구순에 이르신 고모할머님의 전화였다. 할머님은 일제 징용으로 온 가족이 비극적인 삶을 맞게 하신 내 할아버지의 형제 중 유일한 생존자시다. 오빠도 가고, 형제들도 모두 먼저 가고, 죽을 날만 기다리던 노인네에게 이런 날이 올 줄 몰랐다고 하셨다. 내겐 할아버지요, 아버지로 기록한 이야기를 오빠와 조카의 이야기로 만나면서 많이 우셨다고 했다. 딸들이 읽어주는 내 수필을 한 편 한 편 들었더니 죽기 전에 내 손을 꼭 한 번은 잡아주고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하셨다. 모두가 내 곁을 떠나 내가 아는 친정은 망했다고 생각했는데 글을 통해 다시 살아난 느낌이라며 흐뭇해 하셨다. 그리고 며칠 후 걷지도 못하시는 노구를 이끌고 천안에서 제천까지 오셔서 진짜로 내 손을 오랫동안 잡아주고 가셨다.

 

  그래서 쓴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쓸 것이다. 내 안에 살아 숨 쉬는 감정을 글을 통해 단 한 명이라도 누군가의 가슴에 전해질 수만 있다면 멈추지 않고 쓰려고 한다. 내게 허락된 기간 동안 몇 편의 수필이 더 써질지 알 수 없으나 숫자가 중한가. 살아있는 동안 계속해서 쓰다보면 쓴 만큼 답 또한 있지 않을까. 삶이란 결국 왔다가 가는 것이로되 흔적을 남기고 가는 것일 것, 자식이라는 유전자와 함께 한 인간으로서 울고 웃으며 얻게 된 생각을 활자로 남겨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자식에게도. 가족에게도. 수신인을 모르는 보다 많은 사람들의 가슴, 가슴에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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