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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새의 비밀(秘密)    
글쓴이 : 백두현    18-04-16 16:08    조회 : 6,395

나는 새의 비밀(秘密)

 

백두현/bduhyeon@hanmail.net

 

내보기에는 나는 새가 움직이는 동물 중에서 가장 높은 존재다. 땅 위를 걷는 동물들이 저마다 힘자랑도 하고 덩치자랑도 하는 모양이지만 그런다고 새들의 처지만 할까. 그들은 늘 하늘 높이 날며 모든 생명을 개미같이 하찮게 내려 본다는 생각이다. 어디 그뿐인가. 스스로 높은 처지라 누구보다도 멀리 내다본다. 그리고 길이 따로 없으니 빠르기까지 하며 또한 자유롭다. 그래서 부럽다. 아니, 나도 아예 새였으면 바랐던 날들이 참 많았다.

 

그런 새라 해도 언젠가는 하늘에서 떨어지는 법, 세상에 절대적인 존재란 없다. 그들 역시 가끔은 포수의 총에 떨어지기도 하고 모진 비바람에 내려앉기도 한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그들을 무색하게 하는 존재가 하나 더 있었으니 바로 어릴 적 나의 시골마을을 호령하던 지서장이다. 지금으로 말하면 파출소장 격인데 카리스마가 넘치고 넘쳐 나는 새도 떨어트리기에 충분하고도 남았다.

 

무엇보다도 지서장은 사춘기 청소년들에게 공포의 대상이었다. 장발 머리가 눈에 띄면 잡아다 가위로 머리를 쥐 파먹은 듯 잘라서 보냈고 다시 눈에 띄면 삼청교육대에 보내겠노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게다가 손버릇이 고약해 여러 사람의 뺨을 참 많이 때렸다. 술 취해서 주정을 하면 보란 듯 얼굴이 빨갛도록 뺨을 때려서 주위 사람들을 움츠러들게 했다. 어찌 보면 호기심의 표현이었을지도 모르는 일인데 여학생을 희롱하던 청년들 역시 걸리면 입술이 터지도록 뺨을 때려서 보내곤 했다. 그의 손바닥은 마치 소도둑처럼 크고 손아귀의 힘은 씨름선수처럼 세서 맞아본 사람들은 하나같이 몸서리를 쳤는데 지서장이라는 권력까지 가졌으니 아무도 맞서지 못했다.

 

어느 날인가는 배가 고파 가게에서 빵을 훔쳐 먹던 꼬마들이 지서에 끌려갔는데 저항 불가능한 애들을 개처럼 뺨을 때리고 부모에게 연락해서 데려가도록 했다. 그 어린 것이 얼마나 배가 고팠으면 그랬을까 측은했는데 이상하게도 부모들은 배알이 없는 것인지, 권력에 복종하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모진 지서장에게 연신 허리를 조아리며 감사인사를 하기에 바빴다. 사정이 그랬는데 나는 새가 뭔 대수일까. 그곳은 그가 통치하는 작은 왕국이었으며 지서장이 아니라 통치자였다. 나는 새라 해도 두렵기만 한 천하의 폭군이라 어쩌면 그가 나는 새 자체였다. 아니, 새보다도 더 높은 지위라야 보다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그랬던 지서장도 흐르는 세월은 어찌할 수 없었나보다. 서슬이 퍼렇던 권력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늙고 초라한 모습으로 요양원에서 생을 연명하다 얼마 전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나로서는 친하게 지내는 선배의 부친이기도 하거니와 천성이 샌님이라 별 피해를 본적도 없기에 기꺼이 문상을 갔다. 가면서 생각하기를 그토록 인심을 잃었으니 초상집 풍경이 참으로 쓸쓸할 것이라고 여겼다. 아픈 기억으로 넘치는 사람들뿐일 텐데 뭔 문상객이 있을까싶었던 거다.

 

그런데 아니었다. 비교적 많은 사람들이 문상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언젠가 뺨을 맞고 울분을 토하던 청년도 있고 머리가 잘려 두문불출하던 선배도 있었으며 후끈거리는 아이의 뺨을 어루만지며 분해하던 부모도 있었다. 모두 다 뺨을 맞은 기억으로 상처가 클 텐데, 어떻게 문상을 온다는 것인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문상을 마치고 돌아가는 문상객들의 입에서 까닭을 찾을 수 있었다.

 

그 양반 때문에 그래도 우리 동네에는 전과자가 없었어.”

맞아. 맞을 때는 분했는데 나중에는 고맙더라고.”

 

돌이켜보면 당시 고향에는 정말로 전과자가 없었다. 문제아는 많았지만 호적에 빨간 줄이 올라간 자식을 둔 부모가 없었던 마을... 요즘 돌아가는 세상처럼 수갑을 채우는 풍경 대신 철썩! 철썩! 뺨맞는 소리로 요란했던 세상... 과연 그랬다! 모두가 좋아하는 방식은 아니었지만 그만의 방법으로 누군가의 허물을 덮어준 것이었다.

 

염을 마친 장례식장에서 상주들의 곡소리가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기억의 저편, 아련하고 불편했던 감정들이 비로소 하늘로, 하늘로 편안하게 흩어지는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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