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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72    
글쓴이 : 신미순    19-12-05 14:25    조회 : 5,048
   1472-1.hwp (31.5K) [2] DATE : 2019-12-05 14:25:03

< 1472 >

 


                                                                                                          신미순



   언제 들어올지 모르는 고객을 위해 처음 한 두 해에는 바짝 긴장을 하고 있었고, 마음은 항용 두근거렸다. 점차 시간이 흐름에 띠라 TV도 보고 책도 읽는 여유가 생겼다. 어떤 날은 신문을 읽다가 밀려오는 졸음에 볼펜으로 이내 갈지之 자를 그리는 것도 모자라서 결국은 볼펜을 바닥에 떨어뜨리고 만다. 이렇게 이십여 년 가까이 자영업에 종사했다. 자동차 없이 출퇴근하는 것이 너무 불편하여 차를 샀다. 14는 14년을 말하고 72는 14년 동안 자동차를 운행한 수치가 72,000킬로미터이다. 그야말로 출퇴근 차량으로 운행하는 게 전부였다. 만만치 않은 가게세와 모처럼의 휴일도 착신전화로 인한 단골 고객의 부름이면 한 걸음에 달려 나갔다. 그렇게 휴일도 제대로 쉬지 못했다.

 

 

집에서 자동차로 20여 분 거리의 근교에는 성남시와 과천시 그리고 의왕시의 경계를 이루는 청계산이 있다. 청계(淸溪)라는 이름은 산에서 흘러내리는 물이 맑아 청계라는 이름으로 불렀으며 조선시대에 푸른색 용이 승천하였디는 전설을 두고 청룡산 이라고도 불렀다는 기록이 있다. 주봉인 망경대를 비롯하여 옥녀봉 청계봉 이수봉 등의 봉우리로 이루어져 있는데 제일 가까운 곳이 이수봉이며, 해발582m의 중턱인 옛골이란 이름을 가진 깔딱 고개에 이르면 오후3시경 된다. 일석이조라고 막걸리를 파는 주인장의 통키타 소리에 이끌려 아는 노래를 따라 부르기도 하고, 흥얼거리기도 하면서 아무리 힘들어도 이곳 깔딱 고개까지 다녀와야 그나마 건강을 챙긴다. 산에 올라서 시원한 막걸리를 한 사발 쭉 들이키면 갈증이 사라지고, 오이를 집에서 담근 된장에 콕 찍어 먹으면 산해진미가 따로 없었다.

 

 

어느 가을날은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시집을 읽다가 어머 단풍이야! 가을 산 한 번 가봐야지 했다가, 시간이 흘러 또다시 매장 밖에 유리창으로 눈발이 부딪치면 올해도 벌써 첫눈이 왔네! 라고 말한다. 반복되는 일상이 무념무상인 것처럼 생활하며 무탈히 청소년기를 잘 보내고있는 얘들에게 고마움을 느끼지만 하루하루가 모험이며 도전이다.

 

 

자영업으로 한 장소에서 10년 정도 매장을 운영하며 상가 앞의 풍경을 그려본다. 불황 중 호황이라고 우산장수와 소금장수의 부모님을 떠올리는 상황을 자주 보곤 한다. 안타까운 현실이다. 명예퇴직과 조기 퇴직자들이 선호하는 가맹점 사업에 뛰어든 사람들. 프랜차이즈 본사만 믿고 덜컥 계약한다. 이윤은 적어도 신뢰와 신용을 담보로 선택할 수밖에 없다. 어느 날 우리 매장 맞은편에 한약재료를 전문으로 판매하는 한약국이 들어온다고 인테리어 공사를 시작한다. 업종상 비슷한 약재가 겹치기 때문에 긴장을 안할 수 없다. 개업을 한다고 길거리에 현수막이 걸리고 행사한다는 전단지가 들어왔다. 선의의 경쟁이라지만 신경이 쓰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매장이 문을 열고 하루 이틀이 지나도 고객이 들락날락하는 모습이 거의 안 보인다. 인식이 덜 되어서 그런 거겠지 라고 생각했다. 매장 앞이 4차선 도로이지만 차량의 통행이 많지 않은 상황이라서 보려고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볼 수 있다.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나는 40대 중반이었고 한약사는 30대 중후반으로 큰 키에 체격도 인물도 준수한 편이다. 업종이 비슷하니 매장으로 찾아갈 일은 더 더군다나 없었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고 했던가. 라이벌에 대한 관심 정도로 생각해주면 좋겠다. 매장을 운영하다 보면 내 경우는 붙박이형이라고 한다. 오롯이 매장을 지키면서 찾아오는 고객에게 최선을 다하고 고객이 한 번 방문하면 계속 올 수 있게 전문용어로는 충성고객을 만든다. 성격이 외향적이거나 남자 사장들은 외부영업의 형태가 있다. 자신의 개성대로 각자의 타고난 자질이나 취향대로 하는 경우를 볼 수 있지만 어쨌든 영업은 만만치 않다.

 

 

초겨울 어느 날 이런 내 마음을 읽기라도 한 것처럼 남편은 길 건너 한약국에 가서 잔기침이 나니 약을 좀 지어오라고 재촉한다. 속으로는 그래, 이제야 한약사에게 말을 붙여볼 기회가 왔구나.! 라고 생각했지만, 남편에게는 퉁명스럽게 본인이 지어와요. 했다. 결국은 내가 갔다. 약국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그가 “사장님 진즉에 인사를 드렸어야 되는데요,” 하며 먼저 인사말을 건냈다. 아니라고 괜찮다고 말했지만 마음속으로는 날마다 보는데요, 하며 혼자 빙그레 웃었다. 환자 나이며 이것저것 환자의 상태를 묻는 질문에 “밤에도 기침을 하시나요.?” 라고 묻는다. “네에” “각 방을 써서 잘 모르겠는데요.” 얼떨결에 대답했다. 겸연적었다. 아, 이 솔직함을 어쩌나.! 서둘러 이틀 치 약을 지어서 나왔다.

 

 

첫사랑이 잘되면 배가 아프고 첫사랑이 잘못되면 가슴이 아프다는데, 나는 첫사랑과 살며 머리가 아픈 케이스에 속하고 감성적인 면이 조금 있어서 아직도 가을이면 단풍잎을 책 갈피에 꽂는다. 이런 감성을 지닌 나는 여름날 비가 오는 날에는 이상형에게 쓸데없는 생각을 해보며 하루를 보낼 때도 있었다. 기다리는 고객은 안오고 자리를 비울 수는 없는 상황이기에 그도 그럴 수밖에 없었다. 행사 있다고 문자를 보내 볼까.? 올 때가 됐는데 왜 안 올까.? 이 궁리 저 궁리 하던 차에 마침 이상형 아파트 이웃에게서 배달요청을 받았다.

“오 기회야” 나는 또 이상형에 대한 상상을 했다. 어떻게 하면 그를 볼 수 있을까? 밤 9시 퇴근길에 도착해서 실수로 이상형의 집에 초인종을 눌러볼까도 생각했었다. 아냐 밤 9시면 직장에서 돌아와서 샤워를 마치고 저녁을 먹으면서 뉴스를 보겠지. 별의별 생각을 하고 혼자서 통쾌한 웃음을 지었다. 하하.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했던가.!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인가. 나는 상상을 했지만 실제로 고객이 앞집의 홋 수로 잘못 가르쳐 주어서 이상형의 얼굴은 못 보았지만 퇴근해서 집에 돌아온 그의 목소리만은 들을 수 있었다.

“아니” 그의 목소리만 들었을 뿐인데 아주 잠깐 설레임이 있었다.

 

 

사업을 하면서 각계각층의 좋은 분들이 매장으로 방문해 주셔서 감사했고, 건강 관련 사업이어서 수험생의 부모들은 단골 고객이 되었고, 운동선수는 물론 유명연예인 기업체 회장 및 임직원들과 다양한 직업군들의 사람들이 찾아와 주셨다. 그중에는 군 장성들도 서 너 명 있었다. 그분들은 역시나 외모에서 풍기는 포스와 아우라가 남달랐고, 친정아버님이 원 스타이거나, 본인이 별 셋, 별 넷이신 분들과 그의 가족들하고도 도란도란 친분 있게 지냈었다. 찾아와 주신 고객분들이 있었기에 망부석이 되는 줄도 모르고 하루하루를 버텨왔다. 14년을 함께 동고동락해 왔던 자동차는 72,000km 였지만 주차장이 따로 없는 단독주택에서 더 빨리 더 쉽게 녹슬어 갔다. 자동차를 폐차 시키는 날 코끝이 시큰하고 가슴이 먹먹해지는 이유는 무슨 일 일까요.?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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