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여름
김혜림
결국 사달이 났다. 하나 둘 담배를 피운다며 일어섰던 남자들은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양심은 있었는지, 맛이 없었는지 뜻 모를 칼국수 반단지가 채 식지도 않고 남아 있었다. 그것이 주인의 화를 더욱 돋운 것 같았다. 그날은 아침 일찍부터 손님이 많았다. 바쁜 틈을 비집고 아주 가끔 그런 불청객들이 찾아오곤 했다.‘먹튀’경보를 미리 감지하지 못한 죄로 나는 마음이 무거웠다. 주인은 그들을 ‘똥파리’라 부르며 무전취식을 경멸하는 파리채를 휘둘렀다. 흐트러진 밥상을 기웃거리던 애꿎은 파리들만 죽어나갔다.
추적추적 때늦은 여름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한가해진 식당 창문 밖으로 세상이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다. ‘나는 누구며, 왜 여기에 있는 것인가’라는 뜬금없는 질문이 찾아왔다. 돈이 필요했다. 단순한 작업이어야 했다. 글을 쓰더라도 돈을 벌어야했기에 머리는 많이 쓰지 않으며 쉽게 놓을 수 있는 일이 필요했다. 그렇게 수줍은 변명에 변명을 더하며 힘든 시간을 넘기고 있었다.
어김없이 점심시각이 왔다. 배고픈 손님들이 들이닥치기 시작했다. 뜨거운 칼국수 단지를 수도 없이 나르고 겉절이와 밑반찬을 요구하는 아우성에 쏜살같이 응했다. 아귀찜에 통깨를 맛깔스럽게 뿌려 내어갔고 석쇠불고기가 타지 않도록 절묘한 타이밍에 뒤집기도 했다. 뜨거운 밥공기를 서슴없이 맨손으로 다룰 즈음엔 가슴이 뿌듯하기까지 했다. 힘든 공부와 글쓰기를 떠나 차라리 제대로 팔을 걷고 돈을 벌어볼까 싶은 호기가 불쑥 올라 왔다.
그러나 세상은 그리 호락호락하진 않은 법이다. 칼국수 5인분에 석쇠불고기 한판, 아귀찜 소자는 분명 7만 7천원인데 그만 77원을 찍고 말았다. 운 좋은 77 손님은 이미 떠났고 대부분 뜨내기손님이라 돌아올 확률도 없었다. 치워야 할 점심상은 쌓여있었고 화가 난 주인은 소리를 질렀다. 아침의 무전취식일당과 오후의 계산오류인 내가 마치 작당을 하고 그날의 주인을 괴롭히는 것만 같았다. 미안한 마음에 실수한 금액을 하루일당에서 빼겠다고 했다. 주인은 그런 정신머리와 나약한 마음으로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느냐며 10분 동안 일장연설을 했다. 식기세척기를 끄고 함께 야단을 들어야했던 주방아주머니들 눈이 가자미가 되었다.
시골식당에도 브레이크타임은 있었다. 은행에 들러 공과금을 내고 시간이 남아 이리저리 배회했다. 강가로 죽 뻗은 밤나무 길을 향해 무작정 걸었다. 아무도 기다리지 않는 그 길의 끝이 희미하게 보였다. 갑자기 눈물이 났다. 바보. 이런 바보가 다신 없을 것 같았다. 간단한 일을 찾았고 쉽게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세상의 어떤 일도 단순하지도 쉽지도 가볍지도 않았다. 그 사실이 진리처럼 어깨를 누르고 있었다. 멀리 기차가 달려가는 것이 보였다. 모든 짐을 내려놓고 떠나고만 싶었다. 하지만 목적지가 없었다. 생각보다 내가 아는 세상은 너무나 좁았고 갈 곳은 없었다.
비가 그친 하늘이 개이고 있었다. 둥둥 떠다니던 생각들이 불어난 강물에 흘러가고 있었다. 비 개인 오후의 벤치는 조금은 행복해져야 했다. 하늘은 바뀌고 있었고 공기는 깨끗했으며 날아오르는 새들은 힘찼고 사람들은 웃고 있었다. 마음의 결정을 해야만 했다. 실수한 돈을 제하고 일당을 계산하여 집으로 돌아가야 할지 아님 더 똑 부러지게 일을 계속 해야 할지를. 함께 인생설교를 들어야했던 주방아주머니들의 원망의 눈빛이 떠올라 잠시 머뭇거렸다.
저녁공기가 내려앉은 가게 안은 손님들로 조금씩 채워지고 있었다. 흘낏거리는 주인과 종업원들을 지나치고 조용히 앞치마를 둘렀다. 서른 개의 밥공기가 채워지길 기다리고 있었다. 모락모락 김을 피우며 정성껏 공깃밥을 만들었다. 어릴 때부터 밥 하나는 참하게 잘 푼다며 칭찬을 받았다. 선택과 집중이 필요했다. 오늘을 잘 넘기자는 마음을 선택했고 밥그릇에 집중을 했다. 딸랑, 출입문 소리가 났다.
허기진 산짐승의 눈빛을 보았다면 그런 것일까. 회색빛 공막에 아득하고 공허한 눈동자, 쳐다보기가 섬뜩하기조차 했다. 그는 올라오지 않고 한참을 차림표를 쳐다보고 있었다. 결심을 했는지 출입문 곁에 자리를 잡고 신발을 벗지 않고 걸터앉았다. 내 머릿속에서 적색경보가 울리기 시작했다. 더 이상 실수는 없어야만 했다. 주문을 권하자 손님은 그냥 아무거나 달라고 했다. ‘뭐지. 이 새로운 유형은’마음이 혼란스러웠다. 순간 손님은 용감하게도 탁자위에 천원을 올려놓았다. 그리고 이내 고개를 푹 숙였다. 당황한 나는 물병을 들고 그 자리에 굳어있었다.
“아줌마, 된장찌개 하나 올려놔요”
주방 쪽에서 우렁찬 주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느새 다가온 주인은 불청객이 내민 천원을 가져갔다. 잠시 후 만 원짜리 같은 천원 밥상이 차려졌다. 차림표엔 없는 두부 가득한 된장찌개가 뽀글뽀글 끓여 나왔다. 잠시 놀라던 손님은 급하게 숟가락을 집어 들었다. 먹는 다기 보다는 삼킨다는 표현이 맞았다. 뼈 많은 고등어를 단숨에 입속으로 우겨넣고 딱 한번 ‘컥’하고는 순식간에 해치웠다. 신기한 듯 그를 바라보던 다른 손님들도 주인이 눈치를 주자 시선을 거두었다. 주인의 지시대로 자판기의 커피를 뽑아 불청객의 탁자에 놓아두었다. 천천히 쉬었다 가라는 주인의 배려인 듯 했다.
밀려드는 저녁손님에 분주히 오가다 보니 그는 어느새 가고 없었다. 시간이 흘러 파장 분위기가 되자 주방 아줌마들이 하나 둘씩 입을 대었다.
“도대체 며칠을 굻은 거야? 아까 그 눈 봤어. 에그, 무서워라.”
“뭔 정성이래. 그냥 칼국수나 하나 대충 끓여줘서 보내지.”
돈 계산을 하던 주인이 무뚝뚝하게 대꾸했다.
“언제 또 밥을 먹게 될지 모르는데 면을 주기는 그렇잖아요.”
주인은 일당을 세어서 수고했다는 말과 함께 나에게 건넸다. 낮의 계산실수에 대해선 더 이상 언급하지 말라고 했다. 집까지는 밤길을 한참 걸어야 했기에 서둘러 가게를 나섰다.
흐릿한 달빛에 습한 밤공기가 피어나고 있었다. 겁이 많은 발걸음이 풀벌레 소리에도 괜스레 요란스러웠다. 마음이 떠도는 그런 하루가 6년 전 그해엔 매일매일 이어졌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하루를 견딘 다행과 내일을 이기는 오기로 채워지고 비워지길 반복했다. 늘 존재했지만 미처 보진 못했던 인간군상이 그려졌고 세상에 쓸모없는 것은 없다는 사실이 더욱 선명해졌다. 피아노와 글쓰기로 자랐던 긴 손가락이 가사와 노동으로 주름이 잡히고 굵어지면서 생각의 결도 늘어났다.
얼마나 더 걸어야 할까?
인생의 중반에서 주춤거렸던 나는 그나마 땅을 보며 걷지 않아서 다행이다. 어깨를 펴고 하늘을 바라보면 늘 길잡이별이 있었기에. 갈 곳이 없어도 가고 싶은 곳은 있고 사랑받진 못해도 사랑하는 이가 있으며 아직은 쓰고 싶은 많은 글들이 남아있다. 매일을 떠도는 마음의 유랑이 결코 헛되지 않기를 바라며 오늘도 불을 밝히며 조용히 책상에 다가가 앉는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