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오빠가 보낸 택배 상자를 집안으로 들였다.
얼마 전 어머니의 유품 정리를 하던 큰오빠가 간직하고 싶은 유품이 있느냐고
물어서 묵주라 대답했는데, 묵주가 담긴 상자치곤 너무 크고 무겁다.보내는 김에 텃밭에서 수확한 감자라도 보냈나, 기대하며 뚜껑을 열었다.
상자에는 묵주, 미사포와 성경책, 성가집, 기도서가 담긴 가방과 여러 권의 노트가 있다. 의아했다. 무슨 노트일까? 묵주의 십자가에 입 맞추었다. 하루에 세 번 하는 삼종기도를 어머니는 늘 그렇게 시작하셨다.
열일곱에 엄마를 여읜 어머니가 식음을 전페하고 울기만 한다는 소식에 출가한
큰이모가 부랴부랴 상경했다. 카톨릭 신자인 큰이모는 어머니를 명동성당으로 데려갔다. 엄마를 잃고 하늘이 무너지는 슬픔에 상심했던 어머니는 그곳에서 새로운 하늘을 만났다. 엄마의 빈자리에 성모마리아가 들어왔다.
삼십여 권의 노트는 어머니의 일기장이었다. 맨 위에 큰오빠의 메모가 있다.
'마음이 아파서 읽다 말았어. 아무래도 딸인 니가 정리하는 게 맞지 싶어.'
어머니의 일기장에 놀라고 당황한 마음이 묻어났다. 내 감정도 마찬가지니까. 긴 세월 일기를 쓰신 게 놀랍고, 일기장을 없애지 못하고 돌아가신 게 안타까웠다. 당신과 아버지의 속옷 빨래를 함께 사는 며느리에게 단 한번도 맡기지 않으실 만큼 깔끔한 성격인데, 자신의 일기장을 남에게 맡기다니... 기운이 쇠해서 잊으셨나, 혹 자식들에게 알리고 싶었나. 생각이 많아졌다.
어머니는 스무 살에 시집 와서 4남 2녀를 낳았다. 비록 하나는 돌 전에 잃었지만, 나머진 무사히 잘 자랐다.
'맏이가 이제 결혼해서 가정을 이루었으니, 책임의 절반은 한 셈이다. 북에 계신
시부모님을 만나더라도 떳떳할 것 같다.'로 시작한 일기장의 맨 마지막은 아버지의 장례식 날 이야기였다.
'남편의 장례식을 치렀다. 내 할 일은 다했다. 하늘에서 부모님은 만났을까?'
삐뚤빼뚤한 글씨가 힘겨워 보인다. 손이 떨려서 몇 년 전에 멈추었던 일기를 마지막으로 쓰신 모양이다. 담담하지만 헤아릴 수 없는 슬픔이 느껴졌다.
'내 할 일은 다했다.'란 말은 아버지가 안 계신 세상사는 의미가 없다는 뜻일까? 한 번도 보지 못한 시부모를 평생 마음에 둔 건 반가 여인의 책무였을까?
'올케 흉이나 보는 시누이는 사절이란다, 며느리 흉이나 보는 시어미라고 책
망하는 것 같아 무안했다. 흉을 본 건 아닌데. 세상 잘난 인물이 흉과 하소연도
구별 못 하나. 남들은 며느리 때문에 속상할 때, 딸이랑 한바탕 떠들고 나면 속
이 후련해진다는데. 딸이 있으면 뭐 하나.'
아버지 생신날의 일기를 읽다가 깜짝 놀랐다. 어머니의 감정이 너무 적나라
했다. 더군다나 나 때문에 일어난 일을 적은 어머니의 푸념이었다.
초대 음식 장만에 경황이 없는데 올케는 친정엄마가 정읍에서 올라오셨다며 친정 오빠네 집에 갔다. 갔더라도 좀 일찍 왔으면 좋으련만, 다섯 시가 넘어서야 왔다.
고양이 손이라도 빌릴 판인데. 속 터져 죽을 뻔했다는 어머니의 푸념에 내가 그렇게 대꾸했나보다
'못마땅하면 직접 나무라셔. 시어머니랑 올케 흉보는 시누이는 사절!'
잘난(?) 딸이 그랬단다. 서른 살의 내가 그렇게 버릇없었나? 굳이 변명하자면 책망이 아니라 필요할 땐 며느리라도 꾸중하시라는 의도였을 텐데.
의도야 어쨌든 잘못을 면하기는 어렵다. 그리 살가운 딸은 아니었으니까. 어머니가 원하신 건 공감이었으리라. 맞장구보다 좋은 공감은 없다는 걸 알면서도 하지 못했다. 엄마란 야박하게 굴어도 뒤탈이 없을 유일한 존재라고 생각해서 내가 그랬는지 모르겠다.
잘난 사람일수록 자신의 감정은 존중받길 원하면서, 타인의 감정은 이성으로 재단하는 실수를 종종 저지른다. 그때부터 나는 어머니의 깊은 속내로부터 손절당한 것 같다. 하소연할 곳으로 딸 말고 일기장을 택하신 걸 보면.
딸이 있으면 뭐 하나! 일기 속의 아우성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는다. 호기심으로 읽기 시작했는데 예상하지 못한 강펀치를 맞았다. 충격이 크다.
일기장을 읽다 말았다는 오빠가 이해된다. 나도 더 이상 읽기가 꺼려졌다. 또 나의 어떤 언행이 어머니에게 상처가 되었을까? 하는 두려움이 일었다.
처음에는 오십여 꼭지를 추려 책으로 엮어서 5남매가 간직하면 의미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몇 장 읽다 보니 짧은 생각임을 확실히 알았다. 어머니에게 일기는 안식처였다. 아무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은 혼자만의.
가족을 위해 하루에도 몇 차례 버려지는 자신을 다독이고 위로하는 곳, 헌신과 감내에 지친 한숨을 몰아쉬고 속내를 내뱉는 일기장만이 어머니를 지탱케 하는 힘이었다. 물밑의 바쁜 발놀림을 감추고 우아함을 뽐내는 백조처럼. 감추고 싶었던 어머니의 뜻대로 일기장을 어머니께 돌려드리는 게 맞다.
노트를 덮고, 똑같은 고민으로 잠을 설쳤을 큰오빠에게 카톡을 보냈다.
"일기 노트는 그냥 태워버릴게"
연기로 부친 일기가 하늘에 계신 어머니께 잘 전달되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