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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샛별    
글쓴이 : 이창일    25-12-15 12:27    조회 : 2,813

샛별

 

이 창일

 

  캄캄한 밤 기차가 달렸다. 창밖 역사 불빛이 휙휙 스쳐 지나갔다. 성북역에서 내려 군용 트럭을 탔다. 밤새 군청색의 트럭이 텅텅거리는 소리를 내면서 달렸다. 차량이 언덕을 넘어 산속 깊이 아스라이 펼쳐진 뿌연 안개를 헤치고, 해골바가지 밑에 뼈다귀가 X로 된 지옥의 문 같은 방어문에 빨려 들어갔다.

  전방 철책 안으로 들어가는 것일까? 굽이굽이 산 등을 타고 구름 위로 올라가니 새벽 해가 쫓아와 00사단 보충대 부대 뒤로 그림자가 졌다. 민통선 마을인가? 들판을 지나 강가 건너에 마을이 보였다. 길가에는 신수리라는 이정표가 세워져 있었다. 마을을 지나 큰 개천의 다리를 건너 논밭의 끝머리에 정비중대 부대가 있었다. 부대 입구에 들어가니 경비를 서던 군인이 ~~이라고 소리쳤다.

  총포 소대로 소속되었다. 월남 전쟁에 참전했던 상사가 관리했다. 우리는 매일 화물트럭 같은 군용 탑차를 타고 전방 부대를 순회하며 총기를 수리했다.

  병장 때 가을이었다. 엄청나게 내리던 장맛비가 점차 소강상태로 접어들었다. 자욱한 안개에 부슬부슬 내린 비로 인해 비포장 길이 매우 미끄러워 위험했다. 거센 물살이 내려가는 냇가를 따라갔다. 대남방송이 가까이 들리는 철책 근처의 전방 부대에서 잔뜩 녹슬어 있는 총기류를 수리했다.

  상사는 총포 수리할 때 예민했다. 자기 생각대로 일이 되지 않으면 공구나 부품 등을 손에 잡히는 대로 집어 던졌다. 총기류 수리가 거의 마무리되어 저녁 식사 때가 다가왔다.

  갑자기 땅! ! ! 총소리가 들렸다.

  에에~엥 사이렌 소리도 울렸다. 오전에 병기를 수리하고 갔던 병사가 자살한 것이다. 부대가 어수선해졌고 우리는 본대로 복귀했다.

  날은 점점 어두워지고 비는 거세게 몰아쳤다. 화생방 훈련 때 나오던 독가스 같은 안개로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냇가를 넘친 물로 비포장도로가 파손되어 매우 위험했다. 나는 일을 못 한다고 상사한테 심한 구타를 당하면서 부대에 왔다.

  제대를 몇 개월 앞둔 때였다. 병장 계급에도 구타당하니 처연한 마음에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마침 온다던 신병 두 명이 저녁 늦게 부대에 왔다. 다음 날 아침 나는 몸이 아파 부대 출장을 못 간다고 보고했다. 그러자 상사는 꾀병이라면서 또다시 구타했다. 상사는 솔직하게 말하라고 윽박지르며 소리를 쳤다.

  “사람 죽이는 총기를 못 고치겠습니다. 다른 소대로 보직을 바꿔 주십시오.라고 했다. 상사는 뭐 저런 놈이 어떻게 군대에 왔지라며 소리를 질렀다. 군사경찰을 불러 영창 보내겠다고 협박한 뒤 차량정비소 창고에 나를 감금했다.

  나는 아픈 몸으로 온종일 초조했다. 내리던 장맛비가 멈췄다. 날씨가 맑아지면서 밤하늘에 둥근 보름달이 환히 비추는 기나긴 밤이 지나갔다.

 

  나는 창고에서 지나온 군대 생활을 회상했다.

  부대에서 일요일 종교행사를 진행할 때면 우리는 마을로 나가 종교 활동했다. 종교시설은 신수리 마을에 있었다. 법당에 나갔다.

  입대 전에는 서울 변두리 미아리 삼양동 가난한 산동네의 작은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했다. 어린이부 교사를 하며 청년부 회장으로 봉사하고 있을 때였다. 목사는 큰 교회로 성장하려는 목표를 가졌다. 그는 교회의 모든 재산을 챙겨 강남지역으로 교회를 이전했다. 헌금하고 봉사하던 집사들과 청년부 중심으로 교회의 재산을 지키려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런 일이 있고 나서 너무나 황당하고 억울하여 신을 믿지 않겠다며 불교로 개종했다.

  사단 법당에 병장으로 진급할 때까지 2년 정도 다녔다. 일병 때 108배를 하고 법광(法光)이라는 법명도 받았다. 법당 종교행사 업무를 보조하며 사단 법당의 군종을 도왔다. 군종이 전방으로 출장 갈 때는 군종을 대신해 수요일 저녁 예불을 진행하기도 했다.

  군대의 종교행사는 병사들의 정신 수양과 심신 안정이 목표였다. 불교의 평등사상과 생명 사상을 실천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석가탄신일 행사에 법당을 지원하는 대령이 늦어 법회가 잠시 중단되는 소동이 있었다. 보이지 않는 부처보다 보이는 계급이 더 높았다.

  일요일 저녁 예불을 마치고 뒷문으로 나와 언덕길을 내려왔다. 발소리에 멍! ! 개들이 짖어댔다. 닭들도 꼬꼬댁 꼬꼬! 하며 울어댔다. 어느 집 마당에서 잣나무를 태우는지 나무 타는 냄새가 바람 곁에 피어올랐다. 논두렁 샛길로 들어서니 일그러진 달빛에 어둠이 눈에서 사라졌다. 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고 넓은 논에 별이 하얗게 쏟아졌다. 물빛에 벼들이 반짝이면서 잔잔한 바람에 머릿결같이 휘날렸다. 전봇대보다 큰 느티나무를 지나가자, 소쩍새가 울었다. 개구리도 깜짝 놀라 우는 어둠 속에 멀리 부대가 보였다.

  군 종교 생활에 실망하고 제대를 몇 달 앞둔 때 부대 중위가 나에게 마을교회에서 봉사하는 일을 부탁했다. 민간교회에 가서 성가대 찬양을 했다. 예배 후 아담한 교회 마당으로 나왔다. 나를 인도한 중위가 성가대 지휘자 중사를 소개했다. 성가대 지휘자가 나를 보살펴 준다고 했다.

  성가대 지휘자는 보안대 중사로 피아노 반주자의 사촌오빠였다. 중사는 몸이 삐쩍 말라 젓가락같이 키가 커 보였다. 인상을 쓰면 험하게 보이는 중사는 나에게 젊은 여자 성가대원에게 한눈팔지 말라고 했다.

  마을에는 젊은 남자들이 모두 서울로 떠나 노인과 여자들만 있었다. 마을교회에서는 군인들의 도움이 필요했다. 특히 어린이와 청소년 교육은 물론 교회 건물 유지보수 등이었다.

  나는 교회에서 성가대 총무로 주일 아침과 저녁 예배 때 성가대에 참석했다. 낮에는 청소년부 교사를 반주자와 같이했다. 주일에는 온종일 그녀와 함께 있었다. 그녀는 나를 많이 의지했고 나 또한 그녀를 좋아했다. 그녀는 마을에서 가장 큰 여관과 시외버스를 운영하는 교회 장로의 딸이었다. 예민하고 소극적이어서인지 건강염려증에 우울증이 있었다. 그녀는 손잡는 것까지만 허용했다.

  한 번은 그녀의 부모가 서울 갔을 때였다. 초대받아 둘이 밥을 먹었다. 연못과 정자가 있는 돌담집이었다. 도자기와 수석이 많은 고풍스런 거실에서 회를 먹으며 와인을 마셨다. 나는 배가 부르고 취기가 올라와 꾸벅거리며 졸았다. 그녀는 내 잠을 깨우려 평소 좋아하는 헨델 곡을 피아노 연주했다. 졸림을 참지 못한 나는 하품을 계속했다. 그녀가 옆자리에 와서 말을 시키며 졸음을 깨우려 했다. 그때 잠결에 그녀의 손을 잡아 끌어당기며 얼굴을 들이밀었다가 따귀만 맞았다.

  차량정비소 창고에서 교회 생활을 생각하니 그녀가 보고 싶어졌다. 다음 날 아침 행정 중위는 나를 창고에서 부대 입구에 있는 위병 초소에 감금했다. 총포 수리를 거부하여 군사경찰 감옥으로 보내진다고 했다.

  오전에 부대로 온다는 군사경찰은 오지 않았다. 오후 늦게 보안대 차량이 부대 입구 초소에 정차하지 않고 곧바로 들어왔다. 정비중대 대장실로 직행 후 부대를 뒤지며 보안 검열하면서 위병 초소도 빠트리지 않았다. 책임자는 교회 지휘자인 보안사 중사였다. 계급은 중사지만 보안대는 위세가 대단하여 장성급 별들도 무시하지 못했다.

  중사는 이 병장 여기서 뭐 해, 초소 문은 왜 잠겨져 있어 차에 타라며 쓰레기통을 발로 찼다. 보안대 지프에 승차하자 차량은 논밭 사이의 대로변을 달리기 시작했다. 나는 어디로 가는 걸까.

  캄캄한 하늘에 샛별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어디선가 그녀가 즐겨 치던 헨델의 울게 하소서피아노 소리가 바람결에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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