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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 프라블럼    
글쓴이 : 이창일    25-12-15 12:36    조회 : 2,961

노 프라블럼

  

이 창일

 

  구름 아래 바다가 보인다. 하루 동안 비행기 타고 온 봉사자 일행이 인도 남부 첸나이 공항에 도착했다. 공장 냄새 같은 쾨쾨한 냄새와 뿌연 회색 하늘이 손님을 맞는다. 출구 밖으로 나왔다. 오른팔이 없는 사람, 다리가 없는 사람, 어린아이를 업은 할머니, 배고픈 아이들이 몰려 와 구걸했다.

  싱가포르를 경유할 때 장 목사를 만났다. 하얀 피부에 젓가락같이 긴 팔로 합창단을 지휘던 대학 후배는 목사가 되어 북한 NGO 활동을 준비하고 있었다. 야자수 나무가 있는 파란 셔츠를 입고 검게 탄 얼굴을 내밀었다. 장 목사는 우리에게 인도 현지 정보를 전달하며 봉사 현장에서 가장 중요한 한 가지를 충고했다. 현장에서 어떤 돌발상태가 발생할지 모르니 그곳 선교사에게 오베이obey’하라고, 무조건 복종하라고 당부했다. 그곳 역사와 문화가 우리와 다르다고.

  짧은 머리에 군인 같은 여성 선교사가 통역관과 인도 현지인을 데리고 왔다. 도요타 트럭과 9인승 봉고차를 가지고 왔다. 우리 일행은 후원자 대표로 목사 부부와 의료팀으로 의사과 간호사, 간호학과 대학생 두 명, 공연팀 팀장으로 연극과 대학원생, 촬영 및 영상작업으로 컴퓨터 디자인학과 졸업생 한 명, 그 외 대학생 세 명, 고등학생 두 명, 중학생 한 명이다. 인도 선교사가 의료 약품을 실은 트럭으로 의사와 함께 먼저 벵갈루루 근처 고산에 있는 불가촉천민 마을로 출발했다. 후원 물품을 실은 봉고차를 운전하는 인도인과 함께 목사 부부도 뒤따라 출발했다. 다른 일행은 통역관 함께 2층으로 된 버스에 짐짝이 되어 5시간 동안 외진 산골 마을로 갔다.

  버스에서 내리자, 어린아이들이 뛰어와 헬로 헬로하며 손을 내밀며 동냥한다. 통역하는 안내인에게 치마를 입은 인도인이 다가와 노 프라블럼라고 말하며 머리를 좌우로 끄덕거린다. 일행은 바퀴가 세 개 달린 오토바이 같은 오토릭샤 3대에 나누어 끼어 탔다. 오토릭샤 운전사는 소리를 지르며 행인들과 자전거를 피하고 양들과 소 사이를 지나갔다. 정신없는 도로에 한 시간 동안 달려 불가촉천민 마을에 도착했다. 외양간에 있어야 할 소들이 검은 물이 흐르는 길 한복판에 앉아있다. 아이들은 맨발로 여기저기 소똥들 사이에서 무언가 주워 먹는다. 나는 타임머신 타고 어린 시절 산동네 고향으로 온 것 같다.

  서울 변두리인 미아리 산동네 개천가에서 혼자 놀다가 울고 있는 어린 모습이 아스라이 기억났다. 셋방 살던 어머니가 일을 나가시면 주인집 할머니가 씻기고 밥을 먹였던 이야기를 듣고 자랐다. 나이 많은 고모는 돌아가시기 전까지 내 양육과 교육비를 지원해주셨다. 고모는 평소에 너는 하나님이 눈동자처럼 지켜주신다. 어디 가서 기죽지 말고, 훌륭한 사람이 되어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거라. 나에게 빚졌다고 생각하지 말아라.’라는 말이 생각났다.

  불가촉천민 마을 사람들이 목걸이형 꽃다발을 일행들 목에 걸어 주며 환영한다. 피리를 불고 장구를 치면서 마을 집들로 행진했다. 소년들이 나마스테!” 소리를 지르며 달려오고 소녀들이 우유에 커피를 넣은 짜이를 들고 다가온다. 일행들이 땡큐라며 두 손을 가슴에 모았다. 소녀들이 머리를 오른쪽과 왼쪽으로 흔들면서 노 프라블럼이라고 하며 손을 입으로 향한다.

  인도인들은 어떤 일에도 괜찮아요, 좋아요, 가능해요노 프라블럼로 말한다. 또 한국 사람은 어떤 말에 긍정하거나 상대방 말에 수긍하면 머리를 앞으로 끄떡이지만, 인도인들은 머리를 좌우로 까딱까딱했다.

  불가촉천민은 우리 일행을 신이 보내 준 사람으로 생각하여 기쁘게 환대했다. 이들은 종교적인 계급사회와 문화 속에서 살고 있었다. 사람이 죽으면 자연으로 돌아가고, 전생의 업으로 이생의 신분이 결정되는 운명을 믿고 있었다. 현세의 삶을 인내하고 선행하면 다음 세상에 복을 받는다고 생각했다. 카스트 신분제도 속에 들지 못하는 불가촉천민은 최하층 계급으로 짐승만도 못한 취급을 받았다. 존재 자체를 불결하게 취급받아 접촉을 금지했다.

  학교 운동장에 도착했다. 지붕이 없이 외벽만 있는 교실이 한 채 있다. 앞뒤로 문짝이 없는 통로가 있고 50명 정도 사람이 있을 수 있는 공간에 칠판 하나만 있다. 교실 옆에 천막이 한 동 있다. 천막으로 인도인들이 접시만 한 나뭇잎에 얇은 호떡 같은 차파티와 카레 같은 닭고기 커리를 담아왔다. 점심이었다. 요구르트에 여러 과일 조각이 들어 있는 라씨도 가져와 식사했다. 인도인들은 오른 손가락으로 집어 먹고 일행은 준비해 간 일회용 젓가락으로 먹었다.

  식사 후 일행은 마을 사람들에게 의료품을 나누어 주기 위해 준비했다. 낮에는 의료봉사를 진행하고 저녁때는 공연하기로 했다. 의료팀장인 조 의사가 뿌리줄기가 훤히 보이며 둘레가 5m 정도 되는 인도보리수 앞에 진료 공간을 만들고 간호과 출신 대학생과 약품을 정리했다. 연극학과 대학원생인 공연팀장이 삐에로가 되어 공연팀 단원들과 마을을 한 바퀴 돌면서 동네 아이들과 마을 사람을 운동장으로 데리고 왔다. 처음에는 50명 정도였다. 의료봉사를 시작할 때는 150명 정도로 마을 사람과 환자들이 몰려왔다. 인도 선교사가 지붕 없는 교실에서 의약품과 후원 물품들을 보관하고 천막에서 진료하기로 변경하여 의료팀은 진료실을 다시 세팅했다.

  구름같이 몰려온 사람들을 해산시키기 위해 얼떨결에 내가 ! 프로그램으로 말하자 인도인들은 노 프라블럼(no problem)’으로 받아들여 파도 같이 밀려 들어왔다. 당황하여 프로그램, !’”라고 말했다. 그때부터 일회용 파스 하나 얻으려고 마을 사람 백여 명이 흉기 들고 집단 난투극을 벌여 난리가 났다.

  밤하늘 쏟아지는 별들을 안고 안개 속 새벽이슬을 스치는 여정으로 봉사를 끝냈다. 우리 일행은 문화 체험 여행으로 북부 델리를 통해 네팔 히말라야로 출발했다. 들판 같은 첸나인 기차역에는 개미 소굴같이 사람이 많았다.

  델리를 거쳐 테레사 수녀가 인도 콜카타(Calcutta)에 세운 죽음에 이르는 집이라는 무료 호스피스를 방문했다. 문 앞 입구 양쪽에 시체들이 즐비하게 있다. 문 안 어두운 넓은 공간에는 죽어가는 사람들을 위해 인도인 손을 붙잡고 임종을 지켜주는 봉사자 한 무리가 있었다. 우리 일행들을 보고 . 한국 사람이다.”라고 말하며 나이 어린 동양계 여학생이 반겼다. 나무 벽 사이로 들어온 햇빛으로 인형 같았던 그녀의 사과 같은 얼굴은 더욱 빛났다.

  나는 고모가 생각나 눈가에 눈물을 머금고 고개를 숙였다. 하얀 천을 머리에 두른 늙은 수녀가 다가와 고개를 좌우로 까닥까닥하며 내 두 손을 잡았다. “노 프라블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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