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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냉골    
글쓴이 : 이창일    25-12-15 12:34    조회 : 3,018

냉골

    

이 창일

 

  사랑하는 그녀가 내 곁을 떠났다. 새들을 따라 바람을 타고 구름 위에 올라갔다. 북한산 넘어 파란 하늘 속으로. 눈물도 나오지 않는다. 멍해지며 바보가 되어 가는 것일까. 아니, 미친 것이다. . 가슴속에 커다란 바위가 떨어진다. 온몸이 찌릿찌릿하고 머리카락이 곤두서며 피가 거꾸로 솟는다. 입술이 떨리고 침이 바짝 마르며 다리가 후들거린다. 어젯밤에도 잘 자. 안녕.’했던 그녀가, 찬바람과 함께 사라진 것이다. 도대체 그녀는 어디로 갔을까?

  하얀 5층 건물 길 요양원을 지나 국립재활원 정문 앞으로 갔다. 편의점에서 캔맥주와 생수를 배낭 넣고 북한산 냉골 방향으로 올라갔다. 둘레길 2구간 4.19민주묘지 방향에서 검정 레깅스에 핑크색 드라이 티셔츠를 입은 한 여자가 내려왔다. 여자 뒷모습이 큰 배낭에 감추어졌다. 그 배낭같이 나는 사랑하는 그녀 인생에 바위 같은 짐이었다. 숲속 요양병원을 지나 가파른 계단으로 시작되는 둘레길 3구간에 들어섰다. 뿌리가 다른 나뭇가지가 서로 엉켜 마치 한 나무처럼 자라는 연리지 나무가 푯말 위에 우뚝 서 등산객을 환영했다. 무엇이든 먼저 주고 안아주던, 나만 사랑했던 그녀는 나와 한 몸이었다.

  언덕을 넘어 조금 올라가니 영락기도원 입구 계곡 옆에 팔각정이 나왔다. 앙증맞은 어린아이가 기어가다가 왼손에는 꼬마 김밥을 들고 오른손으로 백발 할머니 손을 잡으며 걸음마를 하고 있었다. 진입로 옆 숲길을 따라 계곡으로 내려갔다. 기암석 절벽 사이 시원한 물보라가 파란 하늘에 수를 놓았다. 음기가 많은 골짜기로 물이 많이 흘러 내려오는 곳이다. 폭포에서 부채꼴 선상지로 많은 물이 쏟아졌다. 생명의 근원인 여자 자궁 같았다. 한여름이 지난 평일 오전으로 사람들이 없어 한가했다. 돌 위에 앉아 발을 물에 담갔다. 캔맥주를 먹으며 무지개 물방울을 바라보면서 그녀를 생각했다.

 

  “우리 아기가 아파요. 아기가 이상해요.” 그녀가 마당에 들어서며 말했다. 갓난아기를 등에 업고 서울 중구 보건소에서 미아리고개를 넘어 길음동을 지나 삼양동 산꼭대기, 산동네 100번지 마을 집으로 걸어왔다. 온몸이 땀과 눈물로 범퍼기가 되어 정신없이 소리쳤다. “보건소에서 약을 받아 왔어.” 안채 허접스러운 부엌에서 마당으로 나오던 안집 주인 여자는 그녀에게 물그릇을 주며 말했다. “약을 먹었는데도 열이 내려가지 않았어요. 영양실조로 무슨 병인지 모르겠다고 해요.” 그녀는 울먹이며 아기를 방안에 눕혔다. 대문 입구 셋방을 살던 그녀는 아기 옷을 벗기고 바가지에 물을 담아와 수건에 물을 적셔 아기 몸을 씻기 시작했다. “며칠 동안 굶은 거야. 이것 좀 먹여 봐. 우리 큰놈이 우이동 계곡에서 잡아 온 가재여.” 안집 주인 여자는 가재를 짓이겨 물컵에 담아 물을 아기 입에 넣어 주었다.

  이 마을은 홍역이 매년 습관적으로 지나갔다. 북한산 끝자락 산등성, 미아동에서 정릉으로 넘어가기 직전에 있는 100번지 마을은 실향민들과 무작정 상경한 시골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마을이다. 집을 짓기 위해 땅을 파면 사람 뼈가 나온다는 마을이다. 옛날에는 공동묘지 터였다. 마을에는 홍역으로 아기들이 많이 죽었다. “아기 엄마. 아기가 울지도 않고 핏기가 없네. 마지막으로 천막 교회 목사한테 기도라도 부탁해.”

  그다음 해 그녀는 딸아이를 낳고 시장에서 노점도 하고 파출부, 식당 닥치는 데로 일을 했다. 몇 년 후 공장에서 일하게 되어 친정에 맡긴 전 남편 아들을 데리고 왔다. 둘째 아이는 죽을 고비를 넘겼지만, 아이가 골골했다. 둘째 아이가 문제였다. 공장 일로 아이를 돌볼 수가 없었다. “안집 아주머니. 우리 아이 점심때만이라도 좀 봐주세요. 공장에서 월급 나오면 밀린 월세도 갚아 드릴게요. 부탁 좀 드려요.” 그녀는 콩나물 한 봉지를 주인집 아주머니에게 건네며 사정을 말했다. 그 후 셋방 둘째 아이는 아들만 다섯 명인 주인집 반 아들이 되었다.

  둘째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 때가 왔다. 아이 학교 보내는 것을 걱정하고 있을 때 고모가 집에 왔다.

  “고모님. 아이 학교는 보내야죠. 저 혼자 벌어서, 애 공부 어떻게 시켜요. 밥 굶지 않으면 다행이지요. 아이 공부 좀 시켜주세요.” 그녀는 삶을 포기한 사람처럼 허공에 말하며 고모에게 매달렸다. “애 아빠는 요즘도 집에 안 들어와. 요즘도 이북 개성집 고향 이야기만 해. 아이 공부는 걱정하지 말고, 좀만 참고 살아. 한 달에 한 번씩 아이 보내고.” 고모가 쌀, 고기, 과일과 한 달 치 생활비 봉투를 주며 말했다.

  둘째가 초등학교 입학해 가을 어느 날이었다. 그녀가 공장 일을 마치고 비를 맞으면 집에 왔다, 방에 불이 꺼져 있고 축축한 습기에 이상한 냄새가 났다. 아이들이 없고 둘째만 자고 있었다. “둘째야. 엄마 왔다. 일어나.” 가을장마로 온종일 비가 왔다. 방 안 천장에는 빗물이 떨어지고, 빗물받이 대야에는 물이 가득했다. 방은 축축하고 싸늘하며 온기가 없다. 연탄가스 냄새가 났다. 연탄불도 꺼져가고 있었다. “머리 아파.” 둘째가 비몽사몽 힘없이 말한다. “애야! 정신 차려라!” 그녀는 둘째를 마당으로 끌고 나와, 얼굴에 물을 뿌렸다.

  그렇게 아이들만 기르고 그녀는 평생 살았다. 첫째와 막내딸은 결혼시켜 집에서 내보내고 둘째와 살았다. 손자·손녀를 길러주고 며느리와 함께 살며 점점 늙어갔다.

  “둘째야. 나 요양원에 보내줘라. 첫째한테도 말했다.” 허리와 무릎관절 통증으로 엉금엉금 움직이며 그녀가 말했다. “왜요? 요양원 한번 입양하면 못 나온대요. 형이 매번 잘 모시라고 해요. 집도 저에게 주었다고 난리 치잖아요.” 둘째는 심장이 벌렁거리며 어쩔 줄 몰랐다. “집이야, 너랑 같이 살고 있으니 네 이름으로 한 것이지. 나 혼자 움직이기도 힘들고 너희에게 피해 주고 싶지 않다.” 그녀는 방안에서 지팡이를 짚고 조심조심 화장실 방향으로 가면서 말했다. “무슨 피해를 조요. 손자·손녀도 다 키워 주셨잖아요. 지금 따로 살면 남들이 뭐라고 하겠어요.” 둘째는 그녀를 부축하며 말했다. “병원비는 내가 가진 돈으로 하고 매달 요양비는 첫째와 둘이서 지급해라. 막내딸은 남편 죽고 혼자 있어 힘드니깐. 돈 얘기하지 말고.” 그녀가 화장실에 들어가며 말했다. “돈 걱정하지 마시고요. 집을 팔아서라도 원하시는 모든 것 해 드릴게요. 집에 계셔야 오래 산대요. 손자·손녀 애들도 있잖아요. 생활은 신경 쓰지 마시고요. 며느리가 알아서 잘하잖아요. 몸도 불편한데 눈치 보인다고 허드렛일하지 말고요. 제발 신경 쓰며 걱정하지 마시고요.” 둘째는 좀 퉁명스럽게 말했다. 최근 몇 년 동안 하던 말이다. 그녀는 알겠다고 하고도 조금 지나면 또 걱정하고 간섭한다. “같이 살면서 그게 되냐. 눈에 보이는데, 나는 말도 못 하냐. 혼자 움직일 수 없으니, 요양병원에 가야겠다. 네가 온종일 같이 있을 수도 없잖니.” 화장실 용기에 앉으며 말했다. “저는 요양원 가시는 것 반대해요. 평생 같이 살았잖아요. 형하고 말해 보세요. 결정하는 대로 할게요.” 둘째는 심란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녀는 결국 떠났다. 요양병원에서 요양원으로 그리고 바람으로·····. 쏟아지는 햇살에 바람이 나부낀다.

 

  목이 탔다. 마지막 남은 캔맥주를 한 모금 마시고 폭포로 들어갔다. 가슴까지 차오른 물속에서 폭포수가 머리 위로 떨어졌다. 눈물이 나왔다. 눈물이 폭포수와 함께 심장으로 흘러갔다. 하늘에서 나뭇잎이 내려왔다. 한 잎, 두 잎, 세 잎. ‘아들아. 밥 먹었니. 어디 아프지 않지. 항상 조심해라. 밤늦게까지 돌아다니지 말고. 너는 나의 삶이고, 생명이며 사랑이다. 네가 살아 있는 동안은 나도 너와 함께 살아 있단다. 내가 보고 싶니, 그럼 너를 보렴. 너는 나고 나는 너다. 안녕.’ 어디선가 구노의 아베마리아 노래가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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