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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모곡    
글쓴이 : 정길순    13-06-19 13:57    조회 : 6,411
   사모곡수정[1].hwp (32.0K) [1] DATE : 2013-06-19 13:57:36
 
                사모곡
                                                                 정 길 순

내 고향 고흥반도는 높지 않으면서 위엄이 있고 엄숙한 듯 하면서도 포근한 정을 느끼게 한  팔영산, 봉황산, 봉대산이 있다. 밭농사를 얼추 마무리할 무렵엔 신록의 향기에 도취되었고 들녘엔 우아한 자태를 뽐내는 미꾸라지 사냥을 나온 백로까지 날아드는 고요하고 청청한 곳이다.

         타박타박 타박내야 너 어디 울고 가니
         우리엄마 무덤가에 젖 먹으러 찾아 간다
         물 깊어서 못 간다/ 물 깊으면 헤엄치지
         산이 높아 못 간다 /산 높으면 비행기로.......

이런 동요를 구성지게 뽑아내며 못줄 구령에 맞춰 물댄 논에는 모심기로 바쁜 손들을 움직인다. 허리 펼 사이도 없는 고단한 모내기 품일을 했던 엄마는 돌 박이 동생 젖 줄 시간에 젖이 불어오면 애기를 애타게 기다렸다. 내가 애기를 업고가면 엄마는 진흙탕물이 튄 얼굴을 동생 볼에 비벼대며 “내 새끼 얼마나 배고팠는가!”  멀건 젖을 벌컥벌컥 삼키는 애기를 보며 세상에서 가장 흐뭇한 모습 이셨다.

 만취의 불꽃같은 낙엽조차 떨구어 내던 고로새나무처럼 고생만 하시고 살다 가신 어머니에 대한기억은 세월이 흘러도 어제일인 듯 눈물이 나고 마음이 아프다.

아버지는 젊은 시절 자식들에게 더 나은 교육을 시키며 좀 더 잘 살아보겠다고 50여리 떨어진 고흥읍으로 이사한 후 사업에 매진 하셨지만 타향살이에 대한 텃세에 밀려 여러 차례 사업에 실패하시고 화친의 목적으로 시작한 노름이 화근이 되어 끝내는 모든 것을 탕진하고 집을 나가셨다.

어머니 혼자  일곱이나 되는 자식을 키우며  모진 고생을 하셨다 밤마다 아랫목에 아버지 밥을 묻어 두고 혹시나 발자국소리를 놓칠세라 문지방에 머리를 대고 밤을 지새우던 엄마 가슴은 이미 숯덩이였으리라! 추운 겨울 밤 군불지핀 구들장이 식으면 자식들 추울까 하여 문풍지에 부는 바람을 몸으로 막으셨다. 발이 빠지도록 눈이 쌓인 새벽길을 거르지 않고 오일장을 모두 누비며 돈벌이를 하시고 농번기철에는 삯 모내기 일을 하셨다.
어머니는 고운 때 딸인 나를 낳고 할머니의 혹독한 시집살이로 퍽이나 우셨는데 그 이후 죽 아들만 다섯을 낳았으니 양념 딸이 되어 버린 내가 어머니의 큰 의지였고 자랑이었다
어머니는“부모 잘못 만난 것도 서러운데 장래까지 망칠 수 없다.며 막내를 낳은 산후통으로 푸석한 몸을 하고도 나를 서울로 보내셨다. 내가 상경하던 전날 밤 소슬바람조차 야속했던지 사립문 닫으시며 “어서 자거라. 새벽 차 놓칠라” 하시며 저무는 태양 같은 설움을 감추시며 따뜻한 물 한 그릇 떠줄 사람 없이 죽 사내만 둔 형편에 딸을 객지로 보내는 마음이 얼마나 슬프고 아쉬웠을까

서울로 와서 공부 부터하고 싶었지만 고생하신 엄마 생각에 기술을 먼저 배웠고 몇 년후 작은 규모 이지만 이불제품 공장을 시작했다. 그런데 어머니 47세가 되던 1월 초닷세 날  “언니, 이모가 돌아가셨데!” 미영이의 울먹이는 말이 마치 내게 마술을 거는 것처럼 들렸고, ‘아니야! 엄마가 왜 죽어. 잘 못 전달 된 걸 거야 ’하며 나 스스로를 달래며 기차를 타고 단숨에 달려간 고향땅 우리 집 지붕엔 하얀 저고리가 올려졌고, 어머니는 말 한마디 없는 주검으로 맞아 주셨다. 막내만 데리고 주무시다가 지병인 화병으로 허망하게 세상을 떠나셨다 .
꿈도 아니고 최면을 걸 수도 없는 현실 앞에 당신이 입었던 한복을 입고 상주 노릇 할 수 있을 만치 자란 나는 엄마를 그렇게 보내 드려야했다. 구정도 지났지만 거세게 몰아치는 북풍한설에 무덤가에 둘러선 어린상주들, 9살 막내의 울음은 “엄마는 왜 혼자 산에 두고 가요, 빨리 일어나요 엄마!”하는 외침은 산천도 목이 메게 했다.  젊은 날 자신의 방탕으로 고생만 시키다 아내를 먼저 보낸 아버지의 초라한 모습은 돌아가신 엄마 만큼 나를 서럽게 했다.
엄마를 잃은 우리 가족은 아버지까지 내가 있는 서울로 이주하여 하루아침에 타향살이를 시작하셨고, 엄마와 살았던 시절의 가난을 고생이라고 생각해보지 못했던 나는 主支 잃은 코스모스처럼 흔들리는 마음을 주체할 길 없었다

깊은 강물은 돌을 던져도 흔들리지 않는것 처럼 내기억속에 엄마는 자식을 위해 자신을 철저히 포기 하셨던 분이다 어쩌다 이웃집에서 가져온 맛난 음식도 자식들 먹이느라 외면하고 엄동설한 따뜻한 아랫목을 털고 세벽 바람을 안고 장에 가신 모습에서  두 세살 터울 애기들 출산으로 늘 배가 불러 있는 엄마가 창피하기도 했고 엄마노릇은  안할 거라고 다짐도 했었다.
그런데 엄마가  떠난 자리는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크고 작은 비바람과 파도에도 떠밀릴 수 없는 섬 바위처럼 막막하기만 했다
추스려야 하는 삶은 양분 없는 바위에 피어나는 천년 송 같이 힘든 삶이 맡겨졌다.
제산을 탕진하고  해결하지 못했던 아버지의 빗 독촉이 이어지고 사춘기를 맞은 남동생들은 하루가 멀다하게 크고 작은 사고에 연륜 되며 나를 애타게 했다
그때를 회상하면 형제들에게 엄마는 될수 없지만 엄마의 자리를 감당 할수 있었던 것도 형제들 모두 둥지를 틀고 가장이되어 건강하게 살아가는 것도 어머니의 깊고 넓은 사랑의 존재가 방향을 잡아주신 힘 이였다고 생각 한다. 
 어느 듯 세월이 흘러 누나를 따르며 시장길에 무거운 짐을 들어 주던 막내 동생은 불혹의 나이가 되어 사춘기 아들 딸 아빠노릇이 어렵다고 하소연 한다 다른 동생들도 하늘의 뜻을 깨닫는다는 지천명의 나이가 되었으니 긴 세월 동안 엄마 없는 빈자리를 살아온 형제들의 가슴에 찬서리 같은 그리움을 생각하면 안쓰럽기만 하다  나 역시 개구리 울어대던 초저녁에 툇마루에 앉아 내 딸 고생시켜서 미안하다며 잡아주신 크고 묵직하고 거친 엄마 손이 보고 싶어서 그리움에 잠을 설치며 운 적이  많는데 하물며 내 형제들일까
 어머니로 채우지 못한 형제들의 가슴에 누나가 대신하는 것은 어불성설이지만  소도 언덕이 있어야  비빈다는 말처럼  형제들이 누나를 앞으로도 마음의 언덕이라고 생각하며 살아갔으면 한다 ..
“온달 같은 우리 엄마 반달 같은 나를 낳고 산이 높아 물이 깊어 못 오시나요, 저승길이 그 얼마나 멀 길래.................”

박재연   13-06-20 07:36
    
아, 47세라는 젊은 나이에요. 저희 아버지도 47세에 돌아가셨답니다 막내가 7살이었죠.  천붕이란 말을 실감했었습니다. 어렸을 적에는 부모님은 어른이니까 무슨일이든 해낼 수 있고 감당하실 수 있을꺼라고 믿었지만
지금 저는 그때 부모님보다 훨씬 많은 나이가 되었어도 어림없는 일이 되어버렸죠. 지금의 제나이만큼도 못살고 가셨으니지금같은 장수시대에 그 얼마나 원통한 일인지요. 그래도 형제자매가 있기에 아픔을 나눌 수 있으니 고마울 뿐입니다.
     
정길순   13-06-20 13:00
    
지난번 재연샘이쓴 글에서 형제들과 어려웠던시절 애기
공감가는글이었습니다
밝고 재치있는글재주 샘 넘 좋아요
조언을 아끼지말아주세요
감사합니다
이은하   13-06-20 09:36
    
어릴때는 죽음이란걸 몰랐습니다.
부모님은 어른이니까 죽음도 물리칠수 있을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릴땐 부모님의 사랑 살아계심의  고마움을 몰랐습니다.
나이가  들어보니 부모님이 계시는 것만으로도 제간 큰 버팀목이었습니다.
요즘은 부모님의 나이  드시는게 안타깝습니다.
죽음의 문특으로 한발한발 다가간다는 생각때문일까요
부모님은 2년에 나이를 한살씩 먹었음 좋겠다는 생각도 해봅니다.
부모님께 전화라도 한통드려야겠네요
길순샘 좋아하고 싶어집니다.
그래도 괜찮겠죠
     
정길순   13-06-20 13:07
    
나도 엄마가 가시기 전까지는 넘젊고 반드시 있어야 하는
는분이기에 죽음같은거 몰라서 2-3년간은 다시묘지가서 본분을열어보자고
아버지께 몇번이나 졸라보기도 했어요
인생을 살면서 당하지말아야 할일은 조실부모하는일인듯싶어요
 고마워요 나도총무님이 넘좋아요
바쁘고힘든가운데서도 분당반을 챙기시는 헌신에 감동합니다
따뜻한 답글감사합니다
김데보라   13-06-20 12:45
    
가슴 아픈 기억을 지니고 사는 인간들은 그러기에 그 사연을 안고 뒹굴다가 둥글어지는 가 봅니다.
둥글둥글둥글게 살아가다보면 좋은 날이 오겠지요.
아니 설사 오지 않는다고 해도 감사하며 사는 게 축복이 아닌가 합니다.
주어진 것에 늘 기쁨을 느끼는 그런 날들이시기를 빕니다.
     
정길순   13-06-20 13:48
    
데보라샘께 댓글했는데 줄마추기가 밀렸어요
좋은날만 왔다고믿는건 영원하신 주님으로 날마다를
함께해주시니 감사할 뿐이죠 믿음이 축복이죠
데보라샘 덕분에 우리반의 믿음의 줄기가 견실한듯해서
감사합니다
신은순   13-06-20 13:18
    
유난히도 어려움과 아픔을 가지고 지금의 자리에 계신 정선생님이 존경스럽습니다.
이제까지 지내온 것도 신앙으로 또한 스스로의 결단과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겠지요.
좋은 글 읽으면서 어머니를 그리는 마음을 화폭의 그림처럼 펼쳐 볼 수 있었어요.
표현력이 아주 좋으시니 더 많은글 부지런히 써 주세요^^
     
정길순   13-06-20 13:39
    
그냥 신선생님만 뵈도 어머니같은 따뜻함과 정겨움이
느껴지시는데 늘자상하시고 인자하신 인품을 접하니
 감사할 뿐입니다 글도 수정해주시고 칭찬까지 해주시니
제게 큰격려가됩니다
등단을 진심으로축하드리고
계속조언을 부탁드립니다
정길순   13-06-20 13:30
    
하나님 은혜 감사할 뿐이죠 슬픔을 안고 슬퍼하지만 못하도록
 또한 어려움까지 설상가상으로 격으면서 슬픔을 이기게 하셨으니
덕분에 사는방법도 터득하게 하신거죠 글을 접하지마자 어머니에 대한글을써서
우리샘들까지 우울하게 한것같아 죄송합니다
밝고 잼나게 써보도록 노력할께요
샘들의 어울림이 넘좋아요
삶을 한편의 글로서 웃고울리는 메신저역활을 하시니
난 곁에서 읽고 듣는 것만으로도 행복합니다
감사합니다 데보라샘님!! 보내주신 글보다 먼저 올렸는데
이창에서는 수정이안되네요 수정해서 다시올릴까 합니다
이경숙   13-06-21 22:22
    
정여사님, 평화스럽고 환한 얼굴에 그리 큰 아품이 있었다니 ...
  하늘이 무너지는것같다는것이 바로 그것이겠죠
  어린가슴에 무엇으로 대신하겠습니까?
  허지만 그 슬픔이 자신을 일으키고 형제들을 보살피는 가장이 되어 오늘이 있으니 , 그 노력과 뚝심에 박수를
  보냄니다.
     
정길순   13-06-24 13:14
    
선생님  같이 한클래스에
계신것 영광으로생각합니다
이렇게 격려의 글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지난번 김영환샘 등단파티서 같이있지 못하고 먼저와서 죄송하고요
날씨가무더운데 건강조심 하세요 선생님 떠올리며 세실리아 며느님
귀한효부를 두시고  샘님 인자하신 모습대로 정말 복이 많으신것 같아요
좋은글 많이 보여주세요
공해진   13-06-23 09:00
    
타박타박 타박내야 너 어디 울고 가니.
대단한 사모곡입니다.
모진 고생은
형제애라는 큰 선물을 받으셨군요.
늘 화목하시고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정길순   13-06-24 13:38
    
우애가 돈독한것은 아니지만
 가난만 물려받은 덕분에 제산문제로 법정다툼 같은것은 걱정할일없죠
누나를  마음의 언덕으로 여기는건 어릴때 그렇게
살아서이겠죠
지금도 살기 어려울때 툭하면 불러대는 동생들 호출에 긴장 하고 삽니다
감사합니다
박서영   13-06-24 19:27
    
샘,유쾌한 인상과 적극적인 삶의 모습이 좋아요.  합평때  맘이 아프더라구요. 그래서 이제야 들어와  읽게 되네요. 우리 엄마가 할머니 할아버지를 일찍 여의였거든요. 그 마음이 오죽했을까 싶엇는데 언제나 의연하고 지혜롭게 살아오셨어요.  동생들까지 챙기시는 모습 넘 좋습니다. 화이팅이예요.
정길순   13-06-25 15:46
    
반가워요 서영샘 외모도 럭셔리하신고 글도 샤프하신데
따뜻한 정도 갖추셨으니 역시 글쓰시는 만능이십니다
샘글읽느라 정신세계가 늘업그래드 된것같아요
어쩜그리도 반짝거리는 사고를 펼치시는지 놀라고 부럽습니다
좋은글 대할수있어 감사해요
자매가 많은 가운데서 사신것 부러워요
난 13살터울 여동생하나 아들만둘 시댁도 남자만 5형제 남자들 속에서만 살아서
그렇잖아도 없는애살이 아주굳었요
수필반에오니 내가 무척결점이 많은 환경에 살고있는거 느끼겠더라고요
그래도 행복합니다
좋은글들 과 함게할분들 만났으니
기대하며 사랑합니다
박인숙   13-06-26 00:14
    
어머니를 일찍 보내드리고 힘든 시간들을 보내셨네요.
동생들의 언덕이 되셨던 선생님. 훌륭하십니다.
이제 옛날을 돌아보며 아름다운 글로 나눌 수 있음에 행복하실거라 생각되네요.
계속 건필하세요.
정길순   13-06-27 18:33
    
인숙샘 지난번 일일 일식논리를 아주확신있게
써주셔서 망설이고있 던차에 다이어트도 하고 날씬몸매 유지도기대하며 짐생각나는대로지키고있어
0.5키로쯤 감한것같아요
그것보다 어떤분이시길래 그토록 사랑ㅇ받고계신가 궁금했는데 역시 넉넉한 인심을 베푸시네요
댓글주셔서 넘감사합니다
그넉넉한 인심본받고싶네요 더욱건필하세요
왕연균   13-06-29 18:14
    
문장 표현력이 좋으시네요.  일찍 자립하시고 신앙속에서 극복하신  것 축복합니다. 하나님은 고난을 통해서 사랑하는 자에게 예정된 축복을 주니까요.  저도 국교 2학년때 한국전쟁 중에  어머니가  나이 39세에 시골에서 돌아가셨습니다.  지금쯤은 충분히 고칠 수 있는 병이지요. 한국의 어려운 과거지요. 형님이 19세에 동갑내기와 결혼하고 고교를 갖 졸업한 형수가 와서  4남매와 마버지가 계시는 집의 안주인이 되었습니다.  정선생님은 아버지 문제로도 힘드셨군요. 돌아가신 분들이 천당에 가시도록 기도해야지요. 후손들은 건강하게 갑절 더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고 봅니다. 기도 많이 하시길 바랍니다.
정길순   13-07-02 12:32
    
수필반에 교수님이계서서 참좋습니다
우리나라 보리고개시절을 교수님 글에서읽고
정서가 통하는것을 느낌니다
어려운시절 을 살아본 사람들은 역시 삶의직곡을 아름답게 표현하는 여유도갖는가봅니다
댓글로 격려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메서지같은 교수님 글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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