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쓰는가.
SDU 2015760157 김오심
나는 전남 해남군 대흥사 두륜산에서 내려다보이는 고즈넉한 마을 평활리에서 태어났다. 지금 살고 있는 목포에서 해남버스터미널까지 40분을 타고, 다시 마을로 가는 버스를 20분을 더 타야 도착하는 곳이다. 초등학교를 마치고 읍내에 있는 중학교에 다녔다. 당시 한 학급당 40명 정도에 8개 반 정도가 한 학년이었다. 읍내라고 해도 시골과 별반 다르지 않았을 테지만 우리 반에서 시험 보면 나는 언제나 1등이었다. 시골뜨기 촌 가시나가 1등 하는 것이 반 친구들에게도 신기했던 모양이다. 읍내에 사는 어떤 친구는 언니랑 같이 자취하는 집으로 염탐하러 오기도 했다. 내세울 것 하나 없는 내가 읍내의 아이들보다 성적이 좋게 나오는 것은 조금 어이없었지만 나를 더욱 당당하게 해주는 동기가 되었다. 나는 키도 작고 옷도 별로인데다 뚱뚱하고 못생겼지만 보통아이들이 신경 쓰는 부분엔 썩 관심이 없었다. 오로지 공부를 잘 하고 싶었고, 좋은 성적은 나를 즐겁게 했다.
1985년 중학교 2학년 때 목포로 이사했다. 부모님께서 농사일을 하실 때는 부끄럽지 않았다. 주변에서 모두 농사를 짓고 있었기 때문에 차별을 느끼지 못했다. 그런데 목포로 이사 올 때는 시골에서 일가친척 빚보증으로 가세가 기울고, 형편이 더 어려워졌다. 아버지는 주민센터에 가셔서 우리가족을 영세민으로 해달라고 떼를 썼고, 배운 게 농사밖에 없는 부모님은 우리들과 함께 생활하기 위해 과일 행상을 하셨다. 형제가 9명이나 되는 우리는 큰언니와 둘째언니, 부모님이 벌어오는 수입과 국가의 보조를 받아 생활했다.
내가 뭔가를 쓰기 시작한 것은 그때부터였다. 부모님이 행상하시는 것이 너무 슬펐다. 학교에 가서 선생님 설명을 듣고 있으면 부모님 모습이 필름처럼 머릿속에서 왔다 갔다 하고 도무지 공부에 집중 할 수가 없었다. 또 부끄러운 것은 우리 집이 영세민으로 책정된 사실이었다. 지금은 기초생활수급자라고 하지만 당시에는 영세민이라고 했다. 혜택은 학비보조와 의료비 보장이었다. 나는 학비를 보조 받는 것이 슬펐다. 친구들에게 내가 영세민이라고 비춰지는 모습이 짜증이 났다. 나도 친구들과 같이 시골에서처럼 활발하고 밝게 공부하고, 친구들을 리드하고 싶은데 내게는 도무지 그럴만한 건덕지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빈 노트에 날마다 일기를 썼다. 작은 용돈도 엄마를 불러 놓고 달라는 말을 망설였던 나는 친구들과 놀다가 필요한 밥값이며 기타 놀이기구들을 이용할 비용이 없어서 친구들과 놀고 싶어도 연락하지 않았다. 또 시골에서처럼 허물없이 지낼만한 친구를 사귀지 못했다. 그래서 이런저런 생각들을 일기장에 썼다. 친구를 만나고 싶을 때나 집안 형편이 걱정 될 때, 일기장에 복잡한 생각들을 쓰다보면 내 마음이 가라앉고 차분해지는 것이 좋았다. 향긋한 차 한 잔, 달콤한 주스 한 잔 없지만 일기장을 대할 때마다 내게 죽지 말고, 열심히 살아달라고 수없이 타일렀다. 쓰는 일은 그 타이름을 이끌어 주었다.
또, 내가 살아가고 있는 동안 수없이 많은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 이중에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과 내가 싫어하는 사람들이 부지불식간에 나타나게 마련이다.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알기 어렵다는 격언처럼 나와 관계를 맺는 수많은 사람들과 충돌을 피하기 위해서 내 안을 들여다보며 내 생각들을 쓰게 된다. 친구가 필요할 때 일기장을 친구삼아 하고 싶은 말을 쓰고, 누군가에게 연락하여 만나고 싶을 때 책을 읽거나, 혼자서 등산을 하며 또 다른 나와 대화하기를 즐긴다. 내가 생각하는 것들을 차분히 문자로 표현하고 나면 타인과의 언쟁에서 오는 피로를 줄일 수 있고,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빠짐없이 하게 될 뿐만 아니라, 내게 있는 잘못도 다시 생각하게 한다. 때문에 뭔가를 쓴다는 것은 나를 더욱 성찰하게 하는 힘이 있다.
고등학교를 마칠 때까지 생활의 변화를 감당하기 힘들어서 무엇인가 적으며 불안정한 나를 다스렸다면, 지금은 안정된 생활에서 좀 더 나은 나를 만나고 싶어 책을 읽으며 좋은 글들을 발췌하고, 주변에서 오는 느낌들을 메모한다. 뭔가를 쓸 때는 주변에 신경 쓰지 않고 몰입하게 하는 힘이 있다. 글을 쓰고 나서 다 읽고 고치는데 긴 시간을 보냈어도 기분은 10분이나 20분을 보낸 것처럼 집중한다. 지금까지 써온 글은 나를 위해 썼을 뿐, 독자를 고려하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 따라 쓰다 보면 독자가 사랑하는 작가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은연중에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뭐든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다보면 그 분야에 전문가가 되고 박사가 되는 것처럼 내가 즐기는 이 쓰기가 먼 훗날 내 주변과 함께 호흡하는 영혼의 징검다리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