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설작업
SDU 문예창작학과 김오심
눈이 내렸다. 나는 시민이 필요한 일을 검토하여 문제점은 시정하고, 실행하는 일을 하는 공무원이다. 고위직이 아니라 시민과 가장 가까이에서 응대하는 공무원이다. 비가 많이 와서 하수구가 막히면 하수구를 뚫고, 눈이 많이 오면 길이 얼지 않도록 제설작업을 한다. 평상시에는 주무부서에서 주로 이행하지만 재난이 발생 됐을 때는 본연의 업무를 두고 직원 모두가 동시에 재난지역 배정 표에 의거, 현장에 집결하여 재난 사항을 해결한다. 며칠 전에도 눈이 많이 왔다. 제설작업은 주무부서에서 차량이나 화학재료를 이용해 1차적으로 이동하면서 제설 작업을 하지만 인도나 골목길 언덕 등은 전 직원이 위험한 지역별로 배치되어 급한 곳부터 제설 작업을 한다. 하수구도 담당부서에서 늘 민원으로 처리하지만 비가 많이 와서 갑작스럽게 물이 빠지지 못하고 고이면 재난을 해소하는 비상체제로 직원 모두가 함께 배치된다.
올 해 들어 처음 눈이 많이 왔다. 해마다 눈, 비, 바람 등이 지나치면 비상근무를 해왔지만 올해는 유난히 겨울답지 않는 따듯한 날씨가 계속됐다. 따듯한 날씨는 개나리 꽃망울을 터뜨리기도 하고, 길가 코스모스 씨앗이 꽃을 피워 바람에 하늘거리기도 했다. 산에 진달래꽃도 때 아닌 시간에 피어났다. 그런데 봄 같았던 날씨는 쏙 숨어 버리고 칼바람과 함께 눈보라가 휘몰아쳤다. 눈이 오는 날은 제설작업이 예상 됐지만 날씨가 차지고 눈발이 날리자 차라리 반가웠다. 도로에는 눈들이 쌓이고 시민들이 거주하는 도시 곳곳 언덕길에는 출근하는 차량들이 헛바퀴질을 하는 곳이 발생했다.
눈 쌓인 거리에는 간밤에도 제설작업차량이 ‘삐오삐오’ 요란하게 제설작업을 했고, 어김없이 새벽 6시를 기점으로 50분부터 비상근무에 임하라는 지시가 시달 됐다. 그런데 여직원은 제외였다. 여직원인 나는 아침에 해야 할 일을 마치고 다시 침대로 누웠다. 누워서 거리에 쌓인 눈을 생각했다. “왜 여직원을 제외시킨 거야... ” 거리는 눈으로 덮였고 눈이 쌓인 인도엔 시민들의 발자국이 그림처럼 찍혀있었다. 침대에 누워서 다시 잠을 청하려 했으나 잘 수가 없었다. 여직원이 제외되어 기분이 좋은 게 아니라 나도 할 수 있는데 하는 생각에 일어나 옷을 차려 입었다. 목도리도 하고 오리털 파카에 고어텍스 잠바까지 껴입었고 등산화를 신었다. 장갑도 준비했고 모자도 준비해서 썼다.
부부공무원인 터라 비상근무가 발령되면 오도 가도 못 하는 시간이 있었다. 어떤 때는 아이를 제설작업 하는 인근 차량에 넣어 두고 제설작업을 하기도 했다. 이럴 때는 정말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아이를 위해서 비상근무를 제외해 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아이가 스스로 씻고 먹고 할 수 있는 나이가 돼서 비상근무에 임하는 건 식은 죽 먹기다. 그 때의 먹먹함을 생각하면 눈물이 핑 돌 지경이지만, 그럼에도 나는 대한민국 공무원으로서의 사명을 더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좀 힘들면 그만두고 다른 일도 생각해 볼만 한데 나는 직장을 그만둔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해 본적이 없다. 가끔 푸념삼아 그만두고 뭔가 다른 걸 해 보고 싶다 라든가. 원 없이 놀고 싶다는 말을 하긴 했지만, 이럴 때 마음은 오히려 더욱 열심히 근무하고 인정받고 싶은 욕심이 더 높기도 했다. 결혼하기 전에는 직장과 가정을 병행할 수 없을 것 같아서 결혼도 하지 않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다. 그렇다고 내가 임하는 곳에서 빛나게 일을 잘 처리하는 건 아니다. 다만, 나는 나의 이런 성향을 싫어하지 않는다. 뭐든 잘하고 싶고 열정을 다하고 싶은 마음이랄까.
비상근무 발령은 여직원이 제외되었지만 옆의 과에서도 여직원이 많아서 여직원 스스로 출근한 직원이 더 있었다. 인도를 쓸고 언덕배기에 눈을 치우고 모래를 뿌렸다. 아침 출근하려던 차량들이 모래를 뿌려놓은 덕분에 언덕을 잘 오를 때마다 마음은 뿌듯함으로 기분이 좋았다.
제설작업을 하려니 몇 해 전 볼라벤 태풍 때 일이 생각났다. 내가 근무하던 주민센터에는 여직원이 태반이라 우리들이 제외되면 비상업무처리가 어려웠다. 그래서 나를 포함하여 여직원 둘이서 볼라벤 태풍상황을 저녁을 꼬박 세워가며 시에 보고했다. 그 때 현장 상황은 차량이 바람에 밀릴 정도로 바람이 세찼다. 새벽녘에 의자에 걸터앉아 2시간 정도 깜빡 자고, 다음날 내내 간판이며 가로수 가지며 난리가 난 거리를 청소하고 퇴근 무렵에는 너무 피곤해서 운전대를 놓을 것만 같았던 하루도 있었다. 하루 저녁을 꼬박 세우고도 나뭇잎이 하수구를 막아 인근에 차오른 물을 빼내느라 하수구에 손을 넣어 쓰레기를 치우고 물이 빠지게 조치했던 기억도 새록새록 하다.
각 가정에서 내 집 앞 눈은 스스로 치우도록 조례가 제정되어 있지만 현대로 올수록 내 집 앞 눈을 치우는 가정이 그리 많지는 않는 것 같다. 어렸을 때는 어른들이 동네 어귀까지 길을 내며 치우는 모습을 본 것 같은데 아무래도 바쁘게 움직이는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은 여유가 없는 듯하다. 제설작업을 열심히 하고 있는 내게 어느 과장이 말한다. “남자네 남자!”.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