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즈의 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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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지욱
어둑한 새벽에 일어나 기숙사 방문을 열고 나가면 다람쥐 쳇바퀴 도는 일상이 시작된다. 아침 점호와 조례가 끝나면 조장 누나들이 오늘 할 일감을 정해주며 못 끝나면 야간 잔업이라고 엄포를 놓았다. 공장 기름밥을 먹은 지도 6개월, 재봉틀이 일렬로 줄을 맞춰 일감들을 쏟아 놓는 곳에 내 자리가 있다. 시다에서 진급해 미싱사가 된 것이다. 오래된 재봉틀은 매일 닦고 기름칠을 했지만 칠이 벗겨져 볼품은 없다. 그래도 미싱사가 된 기쁨은 여간 큰 것이 아니다.
시다는 고달픈 직업이다. 온종일 서서 일을 하고 재봉틀이 쏟아 놓는 일감들에 채여 이리저리 쫓아다니기 바쁘다. 또 누나들의 온갖 심부름을 웃는 얼굴로 하지 않으면 잔소리에 원인 없는 두통이 생기고 만다.
“지욱아, 물!” “지욱아, 실밥 따!” “지욱아, 일감!” “지욱아....”
20명이 넘는 누나들 잔소리에서 해방의 자유를 누리며 재봉틀에 앉아 나만의 작업을 반복했다. 가죽을 겹쳐서 ‘드르륵’ 밟으면 재봉틀 발이 지나간 자리에 실밥이 발자국을 만든다. 재봉틀 바늘이 동그란 바늘구멍에 들어가 밑 실밥을 낚아채면 마술처럼 가죽은 한몸이 된다. 바늘구멍을 무료하게 쳐다보며 반복되는 작업을 하고 있으면 서서히 오즈의 입구가 열린다. 오즈의 입구는 반복되는 일상인 공장에서 벗어나 추억의 세계로 들어간다.
양복을 입은 아버지와 우리 가족은 서면에 있는 경양식집에 모여 앉아 있었다. 구경도 못 해본 경양식집이라는 곳에서 함박스테이크를 먹었다. 작업복만 입던 아버지가 근사한 양복을 입고 온 가족이 처음으로 외식하러 온 것이었다. 칼질하는 법도 모르고 포크가 두 개라 뭘 써야 할지 어리둥절했지만, 아버지가 사용하는 대로 따라 했었다. 고기를 한 입 넣었을 때, 제일 좋아하는 불고기가 까칠하게 느껴질 정도로 입안에서 사르르 녹았다. 입안에서 부서지는 고기들이 혀를 녹이고 소스는 침샘을 자극하였다. 테이블 위에 은빛 식기들과 샹들리에 조명이 우리 가족의 식사를 따뜻하게 밝혀 주고 있었다. 아버지는 조명 아래에서 배우 같은 모습으로 식사를 하였다. 회색 양복이 빛을 받아 아버지 얼굴에 환한 미소를 드리운 것 같았다.
오즈의 입구는 닫힐 줄 모르고 또 다른 세계로 나를 이끌어 간다.
책가방을 멘 학생들이 학교에 가기 위해서 골목들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남녀 공학인 중학교에서 유별나게 우리 반만은 자기가 원하는 이성 옆에 앉을 수 있었다. 다만 선착순이라는 것이 문제였다. 여학생이 일주일 동안 정해진 자리에 앉으면 남학생은 자기가 마음에 드는 여학생 짝을 찾아 앉으면 된다. 순진한 친구들은 마음에 드는 여학생 주변을 맴돌았다. 나는 순간의 선택이 미모를 결정한다는 미모 우선의 정신으로 양보하는 법이 없었다. 30분 걸리는 등굣길이 10분이면 될 정도로 축지법을 써서 원하는 여학생 옆에 앉았다. 그러나 일주일 후에 선택을 당할 때는 아침이 왜 이리 싫은지 좋아하는 여학생은 다른 자리에 앉아 애간장을 태웠다. 어느 날, 창가에 부딪히는 꽃잎들이 늦은 봄을 아쉬워하는 날에 서구적인 여학생 옆에 앉아 칠판에 그려지는 수학기호들이 아름답다고 생각하였다.
“지욱아, 밥 먹으러 가자.”
오즈의 입구가 덜컹 닫히고 바늘이 바늘구멍을 메우고 있다. 매캐한 공기가 공장의 풍경을 선명하게 떠오르게 했다. 옷을 툭툭 털고 식당으로 가면 바람에 따라 들어 왔는지 밥 위에 실밥이 똬리를 틀고 있다. 실밥을 고를 새도 없이 밀려오는 허기에 복종하며 배 속을 채우면 빈 것들이 포만감을 느껴 맛이란 감성을 잊어버린다. 그렇게 서둘러 채운 날 선 것들을 소화하기 위해서 사람들은 공장 구석구석에 쓰러져 되새김질하고 있다.
오후 작업을 알리는 벨이 울리면 공장 안에 뒹굴며 누워 있던 사람들이 몸을 부스스 일으켜 자기 자리로 간다. 오후에는 장갑에 똑딱단추를 박는 작업을 하라고 반장 누나가 지시를 한다. 암수 단추를 프레스 위와 아래에 끼우고 장갑을 구멍에 맞춘 다음 패달을 밟으면 똑딱단추가 완성이 된다. 단추를 넣고, 장갑을 넣고, 페달을 밟고, 프레스 구멍을 무료하게 쳐다보며 반복되는 작업을 하고 있으면 서서히 오즈의 입구가 열린다.
‘한 달 동안 보지 못했던 엄마를 만나 맛있는 것을 먹을 수 있을까?’
‘양복 입은 아빠는 어디서 살고 계실까?’
‘친구들은 오늘도 자리다툼을 하고 있을까?’
프레스가 익숙하지 않은 소리를 내며 오즈의 입구를 닫았다. 사람들이 쫓아오고 반장 누나는 하얀 얼굴에 핏기가 사라진 모습으로 내 이름을 부른다. 사람들은 오즈의 세계에 빠져 정신을 차리지 못한 나를 주임이 운전하는 오토바이에 태웠다.
오토바이가 가방을 메고 집에 가는 학생들 사이를 요란한 소리를 내며 지나간다. 내 나이 또래 아이들은 친구들과 붉은 케첩이 흐르는 핫도그를 들고 시장통을 누비고 있다. 핫도그에서 떨어지는 케첩을 연방 혀로 핥는 모습들이 오토바이 옆을 지나간다. 오른손 집게손가락에 박힌 단추와 장갑이 바람에 휘날리며 붉은 피를 핫도그에 뿌려대고 있다.
열악한 환경에서 유일한 도피처가 된 것은 오즈의 입구였다. 환상의 세계에서 친구들과 뛰어 놀고 한 가족이 모여 정을 나누던 것들을 생각하며 힘든 시간을 이겨냈다.
오즈의 입구는 30년이 지난 지금도 집게손가락에 흔적을 만들어 놓았다. 푹 페인 살집에 동그란 입구의 흔적이 선명하게 나있다. 그 입구를 통해서 공장의 냄새들, 잔소리하던 누나들, 실밥 가득한 밥, 발목이 나오는 이불을 덮고 자던 모습, 밤늦게 공부하면 간식 사주던 형들, 붕어빵 팔던 어머니, 헤어지기 전에 본 양복 입은 아버지 모습이 보인다. 시간이 지날수록 희미해지는 얼굴과 일들이지만 힘이 들 때면 추억처럼 떠오르는 얼굴들이 지금도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