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깨지지 않는 접시
장지욱
다락이 있는 단칸방에서 시작한 신혼살림은 소소한 것들뿐이었다. 대학생이었던 형편에 넓은 집을 장만할 돈이 없어 화장실과 샤워실도 없는 낡은 집을 얻었고 장롱과 냉장고와 미니 오디오가 전부인 그야말로 가난한 대학생의 신혼 생활이 시작되었다. 단출한 부엌에는 아내가 결혼 전에 사둔 비싼 접시들이 낡은 천장에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유치원 교사였던 아내가 퇴근하다 지하철역에서 접시를 파는 행상에게 샀다고 하는데 그 이유가 놀라웠다. 절대 깨지지 않는 접시라서 샀다고 한다. 길거리 행상이 직접 땅에다가 접시를 던졌는데 안 깨어지더라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아내는 100만원 가까운 돈을 주고 한 세트를 샀고 우리 결혼 생활에 당당히 한자리를 차지했다. 그런데 그 접시는 참 투박했으며 화려한 색을 입지도 않았다. 행상의 말에 의하면 고급 상아로 만들어진 접시라고 하는데 겉보기에는 전혀 고급스러운 점을 찾아 볼 수 없었다. 그리고 접시를 사용한 지 얼마 안 돼서 접시에 대한 믿음은 깨졌다. 할 줄 아는 것이라고는 라면을 끓이는 것밖에 모르는 아내가 좁은 부엌에서 음식을 하다가 접시를 산산조각 내기 시작했다. 찬장에 들어가지 못해 박스에 있던 접시들이 하나둘 부엌으로 자리를 옮기면 절대 깨지지 않는 접시를 샀는데 왜 깨지냐고 아내를 놀리고 순진함을 타박했다.
“자기야, 바보같이 그걸 믿냐?”
며칠 전, 저녁을 먹고 설거지를 하다가 한 접시가 시선을 끌었다. 21년 전에 단칸방 부엌에서 보았던 접시가 싱크대 한쪽에 놓여 있었다. 언제부터 사용한 것인지 모르지만 80개가 넘었던 접시 중에서 유일하게 남아 있는 것이다. 화려하지 않아 집에서 막 사용하던 접시들이 인식하지 않는 시간을 21년이나 같이 보내 왔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신혼 때 장만한 모든 것들이 21년의 세월을 견디지 못하고 떠나갔지만 절대 깨지지 않는 접시는 여전히 사용 중인 특별하지 않은 존재로 지금까지 견뎌 낸 것이다.
“자기야, 이 접시 아직 남아 있었네? 이거 우리 신혼 때 쓰던 거잖아.”
“계속 쓰던 건데, 뭘 그래.”
신기한 보물을 발견한 것처럼 부산을 떠는 나와는 다르게 아내는 시큰둥한 반응이다. 별스럽지 않은 것으로 의미를 두지 않는 아내가 참 무던하게 느껴졌다.
절대 깨지지 않는 접시를 판 행상을 나는 얼마나 욕 했는지 모른다. 그런데 돌이켜 보면 결혼 전에 거짓말을 한 사람은 그 사람뿐만이 아니었다.
“장모님, 이 사람 몸 고생은 시켜도 절대 마음고생은 안 시키겠습니다.”
결혼 승낙을 받으러 가서 했던 첫 마디가 그 말 이였다. 절대 마음고생 시키지 않겠다고 호기롭게 장담한 것들이 얼마나 거짓이고 사기란 말인가! 평소에는 내색하지 않는 아내가 화가 나면 기억하기도 힘든 21년 전 상처받은 것들로 시작해서 최근의 일까지 한바탕 쏟아 부어버린다.
일을 핑계로 첫째와 둘째를 낳을 때 곁을 지켜주지 못했던 것부터 셋이나 낳고 육아에 무심했던 것과 시댁 식구들과 갈등, 실직, 사업 실패, 집에 압류가 들어와서 길거리로 쫓겨났던 것 그 등등 고생 시킨 일들이 기억하기도 힘들게 많다.
그럴 때마다 ‘절대 마음은 고생시키지 않는다며 이 사기꾼아!’ 라고 하는 것 같다. 그 많은 상처를 가지고 어떻게 21년을 살 수 있었는지 신기하기만 하다. 또 몸은 고생시켜도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당당한 이 뻔뻔함에 헛웃음이 나온다. 그래도 절대 깨지지 않는 접시에 믿음을 가졌던 순진한 아내는 나의 뻔뻔한 거짓말에 속아 잘도 결혼을 해주고 21년을 깨지지 않은 사랑을 해주고 있다. 아직도 사용 중인 절대 깨지지 않는 접시처럼 거짓을 용납하고 속아주고 있다.
“여보, 이거 하나만 남았나 본데 잘 놓을까?”
“21년 동안 안 깨졌는데 깨지겠어? 절대 안 깨진다니까!”
어느 날보다 깨끗이 씻은 접시를 아내 몰래 찬장 가장 높은 곳에 올려놓았다. 절대 깨져서는 안 되는 사기꾼의 말을 이루기 위해서 나름 소중히 간직하고 싶어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