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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의 시든 칼랑코에    
글쓴이 : 김혜숙    14-02-09 09:25    조회 : 8,112
햇빛이 하얗게 부서지던 봄날, 나는 처음 M을 만났다.
치과업을 하는 우리 부부가 휴일에 볼일을 보러 가는 길이었다.
치과에 가는 도중에 M을 만나 인사를 나누고, 함께 차를 타고 봉헤치로에 도착했다.
데려다 주어서 고맙다고, 차나 한 잔 같이 하자고 M이 먼저 제안했지만, 실은 나중에 남편이 계산을 했다.
찻집 테이블 위에는 이제 시들기 시작한 분홍색 칼랑코에 화분이 놓여 있었다.
먼저 내가 아싸이가 들어간 음료를 주문하자 모두가 아싸이가 들어간 음료수를 마셨다.
M은 자신이 관상을 잘 보는데, 사모님 관상이 좋다고, 그렇게 내 얼굴을 자세히 보았다(하지만 어디가 어떻게 좋다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M은 남편에게 들어서 내 신상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내가 치과에 직접 페인트칠을 한다고 하자 대뜸, 여자에게 너무하는 거 아냐!
말 화살이 냅다 남편에게 날아갔다.
이래 가지고서야 어디 이런 류의 말을 다시 꺼낼 수가 있겠는가.
M이 쏘아 올린 말화살은 내가 분질렀다.
얼마나 재밌는데요?
우리는 머쓱하게 M과 헤어지고 난 후, 곧바로 치과에 가서 일을 시작했다.
나는 치과 의사인 남편을 노트북 앞에 앉혀 놓고, 응접실 바닥에 신문지를 깔고, 벽테두리에 테이프를 붙이고, 척척 한쪽 벽을 칠해 나갔다.
눈처럼 하얀 페인트가 벽에 칠해지면서 조금은 신문지가 깔린 바닥 위로 가랑비처럼 떨어져내렸다.
이전에 칠한 얼음색 페인트 벽은 오래 되어 얼룩이 지고 어두운데 반해, 새로 칠해지는 흰눈색 페인트 벽은 한층 치과를 밝고 생기있게 해주었다.
벽에 생기를 불어 넣는 동안 내 힘은 빠지고 허기가 져서, 집에서 싸온 도시락을 먹고 마무리를 하려던 참이었다.
M에게서 다시 전화가 왔다.
나에겐 초면인 G의 집에서 만두를 했다고, 같이 저녁을 먹자는 것이다.
우리는 교자만두의 유혹에 끌려 G의 집에 가기로 했다. 생각보다 치과에서 가까웠다.
남편은 M을 통해 만난 적이 있다는 G부부, 그네의 어린 딸, 그리고 우리 부부에게 초면인 O부부와 아주 어린 아들까지도 와 있었다.
낯설고 어리둥절함은 금세 이민 생활의 이야기와, 연애 시절 이야기 속으로 사라지고, 나는 부지런히 교자만두를 먹고 몇몇은 맥주를 마셨다.
이날 이후로 나는 치과에 자주 나가게 되었고, M을 자주 보게 되었다.

M은 종종 우리 치과에 찾아 와서, 기다림 방에 자신의 낡은 노트북을 펴 놓고, 인터넷을 하거나 통화를 했다.
사업상 안 지가 1년이 넘었다는 데도 불구하고, 남편은 M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었다.
가끔 나는 혼자인 M을 위해 찌개나 반찬을 해주었다.
M은 우리에게 한국에서 가져온 파스나 명함상자와 같은 물건을 답례로 주었다.
M은 종종 한집에서 같이 사는 사람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하곤 했는데, 어느 날 이사를 했다고 했다.
머지않아 교자만두를 해놓고 우리 부부를 초대했다.
민간경비가 있는 아파트의 1층이었다.
꽤 늦은 저녁이어서 우리는 집에 쓰려고 사두었던 세제를 몽땅 집들이 선물로 M에게 주었다.
M의 집은 새집답게 하얀 벽에 새 가구와 새 가전제품이 저마다 하얗게 제자리에 놓여 있었다.
있을 것이 적당하게 다 있다는 점이 오히려 이상하게 보였다. 남자 혼자 사는 살림 치고는 너무 있을 것이 다 있는 게 아닌가?
형편이 어려워서 도움을 받아야 되는 입장이라고 본인의 입으로 말하던 사람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M은 아주 구차한 듯 말을 하였다.
조금은 이상스러웠지만 M이 만든 교자만두와 마라쿠자 주스는 달콤하게 입에 들어갔다.
귀로는 그렇게나 M이 좋아한다는 음악을 듣고, 이렇게 말을 많이 하는 건 처음 봤다고 할 만큼 M에게 많은 음악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리고 며칠 뒤,
M이 일식집에서 김밥 마는 일을 하다가 허리를 다쳤다고 했다.
우리는 약과 꽃을 들고 집으로 찾아갔다.
나와 남편이 시키는 대로 M은 거실 바닥에 길게 눕고 고분고분 허리를 말아 올렸다.
놀라우리 만치 M은 살이 하나도 없었다. 50대 중반인 그는 깡마르고 야위어서 비쩍 마른 멸치 같았다.
남편은 바닥에 누운 M의 허리에 손수 약을 바르고 여러 차례 한참 문질러주었다.
그러게 왜 그 나이에 그런 힘든 일을 해, 그러니까 탈이 나지.
오죽하면 내가 이런 일을 했겠나, 하긴 원장님이야 내 사정을 모르니까 그런 말을 하지.
이날 우리는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자신의 형편이 얼마나 어려운지,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기가 얼마나 쉽지 않은지, 희망이 무엇인지에 대해, 아무리 이야기를 나누고 나누어도 끝이 날 것 같지가 않았다.
자세히 보니 M은 곱슬머리에, 작지 않은 키에, 날카로운 인상이었지만 잘 웃었다.
웃을 때마다 눈가에 닭발 모양의 주름이 생겼다가 사라지곤 했다.
그의 마른 몸이야말로 물가가 비싼 상파울루에서 혼자 집세를 내고 살아가기가 얼마나 곤란한지 잘 증명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우리 부부는 이날부터 함께 모여서 살면 어떨까 생각했다.

다음 날은 마침 일요일이어서 같이 밥을 먹고 공원에 가자고 일찍부터 M에게 여러 번 연락을 했다.
그러나 M은 마음속을 다 보인 것 같아 창피하다면서 끝내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묘하게도 우리 부부가 살자 하고 M이 이의를 다는 형국으로 상황이 흘러갔다.
M이 우리와 함께 살기로 결정하는 데까지는 두 주의 시간이 걸렸다.
그러나 그 사이 M의 말과 행동은 마치 고장난 시계 같았다.
서로 모순 되고 일관성이 없고, 지루한 영화처럼 이런 식이 반복 되어서 기묘한 진통을 일으켰다.
이 진통은 화를 동반했고, 우울감과 부적절감 등을 유발하며 사람들을 고통으로 몰아넣었다.
그러다가, 본인의 집이라던 M의 집이 사실은 다른 사람의 집인 것을 알게 되었다.
다른 사람들로부터 M의 말의 잘못된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진짜 친구라면 설사 친구 부부가 같이 살자고 하더라도 그러는 게 아니다, 나는 니가 좋은 친구라고 해서 그런 줄로 알았더니만......
(정말 그런 것일까......)
어른의 말씀대로 결국 우리는 M과 함께 사는 것을 그만 멈추기로 했다.

상파울루 생활을 감당하지 못하고 M은 바로 다른 도시로 떠났다.
아직까지도 M의 언어와 몸짓은 나에게 또렷한 무늬로 남아 있다(멸치같이 마른 몸과 그 눈가의 닭발 주름도 함께).
어쩌면 예민하고 자존심이 센 그가 멋져 보이려고 거짓말을 한 것은 아니었을까.
아직은 그에게서 신뢰할 만한 증거를 찾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왠지 그를 믿고 싶다.
보고 싶다, 전과 달리 새롭게 꽃을 피운 M의 칼랑코에를.


임정화   14-02-11 09:25
    
안녕하세요, 김혜숙 선생님. 반갑습니다.
처음 글을 올리셨네요. 브라질에 거주하시는가 봅니다.
M과의 사연으로 이야기를 쭉 해주셨는데, 처음엔 배경이 어딘가 독자가 헤매게 되네요.
한 편의 글을 읽고 독자가 궁금증을 일으키지 않도록 가능하면 도입부에 정보를 깔아주시면 좋지 않을까 합니다. 소설의 한 장면처럼 이야기가 사건을 향해 점진적으로 긴장을 유발하는 방식이네요.
끝까지 대체 무슨 일일까, M이란 사람은 과연 어떤 사람일까, 궁금함을 가지고 읽었습니다.

이곳에 거주하는 분들이라면 함부로 누군가에게 함께 살자고 선뜻 손내미는 일이 힘든데 이민생활을 해오셔서 아마도 그런 선의를 베푸실 수 있었던 것 같네요. 맨 마지막에 '어쩌면 예민하고 자존심이 센 그가 멋져 보이려고 거짓말을 한 것은 아니었을까'라는 추측이 있긴 하지만, 전체적으로 M이란 사람이 누군지, 어떤 행동을 했는지, 어른이라는 분은 누구시기에 충고를 하셨는지 등 자세한 언급이 빠져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 문장이 한 문단인 형태인데 장소나 사건이나 시간이 같다면 한 문단으로 묶어주시고, 전환이 된다면 문단을 바꿔주세요. 그렇게 하면 독자들이 훨씬 읽기 수월하답니다.
개인적으로 닭발 같은 눈주름이 참 재미있고 눈에 선하네요.^^ 어긋난 인연이지만 그래도 그를 끝까지 믿고 싶다는 그 선의와 보고싶다는 진술이 아름답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그리고 다음 작품도 기대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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