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햇빛이 하얗게 부서지던 봄날, 나는 처음 M을 만났다.
상파울루에서 치과업을 하는 우리 부부가 휴일에 볼일을 보러 가는 길이었다.
치과뿐 아니라 사업에도 손을 뻗친 남편에게 자문을 구하러 M이 1년 전쯤에 치과를 찾아왔었다고 한다.
치과에 가는 길에 M을 만나 인사를 나누고 함께 차를 타고, 한인 상가가 밀집된 봉헤치로에 도착했다.
데려다 주어서 고맙다고 차나 한 잔 같이 하자고 M이 먼저 제안했지만, 실은 나중에 남편이 계산을 했다.
찻집 테이블 위에는 이제 시들기 시작한 분홍색 칼랑코에 화분이 놓여 있었다.
먼저 내가 아싸이가 들어간 음료를 주문하자 모두가 아싸이가 들어간 음료수를 마셨다.
M은 자신이 관상을 잘 보는데, 사모님 관상이 좋다고, 그렇게 내 얼굴을 자세히 보았다(하지만 어디가 어떻게 좋다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런데, 내가 치과에 직접 페인트칠을 한다고 하자 대뜸, 여자에게 너무하는 거 아냐!
말 화살이 냅다 남편에게 날아갔다.
이래 가지고서야 어디 이런 류의 말을 다시 꺼낼 수가 있겠는가.
M이 쏘아 올린 말화살은 내가 잡아서 분질렀다.
얼마나 재밌는데요?
우리는 머쓱하게 M과 헤어지고 곧바로 치과에 가서 일을 시작했다.
나는 가운을 두르고, 치과 의사인 남편을 노트북 앞에 앉혀 놓고, 응접실에 신문지를 깔고 테이프를 붙이고, 척척 벽을 칠해 나갔다.
눈처럼 하얀 페인트가 벽에 칠해지면서 조금은 신문지가 깔린 바닥 위로 가랑비처럼 떨어져내렸다.
이전에 칠한 얼음색 페인트 벽은 오래 되어 얼룩이 지고 어두운데 반해, 새로 칠해지는 흰눈색 페인트 벽은 한층 치과를 밝고 생기있게 해주었다.
벽에 생기를 불어 넣는 동안 내 힘은 빠지고 허기가 져서, 집에서 싸온 도시락을 먹고 마무리를 하려던 참이었다.
M에게서 다시 전화가 왔다.
나에겐 초면인 G의 집에서 만두를 했다고, 같이 저녁을 먹자는 것이다.
우리는 교자만두의 유혹에 끌려 G의 집에 가기로 했다.
생각보다 G의 집은 치과에서 가까웠다.
단출한 G의 거실에는 (남편은 M을 통해 만난 적이 있다는) G부부와 그네의 어린 딸 외에, 우리 부부에게 초면인 O부부와 옹알이하는 아들이 와 있었다.
낯설고 어리둥절함은 금세 이민 생활의 이야기와, 연애 시절 이야기 속으로 사라지고, 나는 부지런히 교자만두를 먹고 몇몇은 맥주를 마셨다.
처음 만난 사람들은 나에게 너무 집에 틀어박혀 산다고 자주 좀 보자고 했다.
이날 이후로 나는 정말 치과에 자주 나갔다.
G는 자녀를 치과에 보내주었고, 새 환자를 소개해 주었다.
M은 치과의 기다림 방에다 자신의 낡은 노트북을 펼쳐 놓고, 인터넷을 하거나 통화를 했다.
나는 가끔 혼자인 M을 위해 찌개나 반찬을 해주었다.
답례로 M은 한국에서 가져온 파스나 명함상자와 같은 물건을 주었다.
그런데 M이 어디 사는지 어떻게 사는지를 물으면 1년간 안다는 남편은 대답을 잘 못했다.
M과 제일 친하다는 G는 단 한 번 집에 가보았다고 했다.
M은 가끔 한집에 사는 사람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하곤 했는데, 어느 날 이사를 했다고 했다.
그리고 머지않아 교자만두를 해놓고 우리 부부를 초대했다.
민간경비가 있는 아파트의 1층이었다.
꽤 늦은 저녁이어서 우리는 집에 쓰려고 사두었던 세제를 몽땅 집들이 선물로 M에게 주었다.
새집답게 M의 집은 하얀 벽에 새 가구와 새 가전제품이 저마다 하얗게 제자리에 놓여 있었다.
있을 것이 적당하게 다 있다는 점이 오히려 이상하게 보였다. 남자 혼자 사는 살림 치고는 너무 있을 것이 다 있는 게 아닌가? 형편이 어려워서 도움을 받아야 되는 입장이라고 본인의 입으로 말하던 사람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M은 아주 구차한 듯이 말을 하였다.
머리로는 이상스러웠지만 M이 만든 교자만두와 마라쿠자 주스는 달콤하게 입에 들어갔다.
귀로는 그렇게나 M이 좋아한다는 음악을 듣고, 이렇게 말을 많이 하는 건 처음 봤다고 할 만큼 M에게 많은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리고 며칠 뒤,
M이 일식집에서 김밥을 마는 일을 하다가 허리를 다쳤다고 했다.
우리는 약과 꽃을 들고 집으로 찾아갔다.
나와 남편이 시키는 대로 M은 거실 바닥에 길게 눕고 고분고분 허리를 말아 올렸다.
놀라우리 만치 M은 살이 하나도 없었다. 50대 중반인 그는 깡마르고 야위어서 비쩍 마른 멸치 같았다.
유심히 들여다보니 M은 곱슬머리에, 작지 않은 키에, 날카로운 인상이었지만 잘 웃었다.
웃을 때마다 눈가에 닭발 모양의 주름이 생겼다가 사라지곤 했다.
그의 마른 몸은 물가가 비싼 상파울루에서 혼자 집세를 내고 살아가기가 얼마나 곤란한지 잘 증명하는 것 같았다.
남편은 바닥에 누운 M의 허리에 손수 약을 바르고 여러 차례 한참 문질러주었다.
그러게 왜 그 나이에 그런 힘든 일을 해, 그러니까 탈이 나지.
오죽하면 내가 이런 일을 했겠나, 하긴 원장님이야 내 사정을 모르니까 그런 말을 하지.
이날 우리는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자신의 형편이 얼마나 어려운지,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기가 얼마나 쉽지 않은지, 희망이 무엇인지에 대해, 아무리 이야기를 나누고 나누어도 끝이 날 것 같지가 않았다.
사람이 죽으려고 지하철에 뛰어드는 것이 별일 아닌 것 같다 한 M의 말이 계속 맴돌았다.
우리 부부는 이날부터 함께 모여서 살면 어떨까 생각했다.
다음 날은 마침 일요일이어서 같이 밥을 먹고 공원에 가자고 일찍부터 M에게 여러 번 연락을 했다.
그러나 M은 마음속을 다 보인 것 같아 창피하다면서 끝내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이로부터 우리 부부가 살자 하고 M이 이의를 다는 형국으로 묘하게 상황이 흘러갔다.
M의 말과 행동은 마치 고장난 시계 같았다.
원장님이 G에게 무료로 스케일링을 해주면 술을 끊겠다 장담해 놓고선, G가 스케일링을 한 뒤에도 M은 보란 듯이 맥주를 들이켰다.
부탁을 들어주면 결초보은하겠다 하고, 조금이라도 기대에 어긋나면 이기적인 것 같다고 말을 내뱉었다.
범죄적인 냄새를 풍기지는 않았지만, 서로 모순 되고 일관성이 없고, 지루한 영화처럼 이런 식이 반복 되어서 기묘한 진통을 일으켰다. 진통은 화를 동반했고, 우울감과 부적절감을 유발하며 사람을 고통으로 몰아넣었다.
그러다가 본인의 집이라던 M의 집이 사실은 다른 사람의 집인 것을 알게 되었다.
다른 사람들로부터 M의 말의 잘못된 점을 확인하게 되었다.
그리고 두 주 후 우리에게 M이 같이 살자고 하였는데,
"진짜 친구라면 설사 친구 부부가 함께 살자고 하더라도 같이 사는 게 아니다, 나는 니가 좋은 친구라고 해서 그런 줄로 알았더니만."
시어른의 반대를 맞고 결국 우리는 M과 살려고 준비하던 일을 멈추게 되었다.
정말 그런 것일까.
상파울루 생활을 감당하지 못하고 M은 바로 다른 도시로 떠났다.
아직까지도 M의 언어와 몸짓은 나에게 또렷한 무늬로 남아 있다(멸치같이 마른 몸과 그 눈가의 닭발 주름도 함께).
어쩌면 예민하고 자존심이 센 그가 멋져 보이려고 거짓말을 한 것은 아니었을까.
아직은 그에게서 신뢰할 만한 증거를 찾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왠지 그를 믿고 싶다.
보고 싶다, 전과 달리 새롭게 꽃을 피운 M의 칼랑코에를.
--------------------------------------
임 정 화 선생님, 도움말씀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댓글 버튼을 찾지 못해서 하는 수 없이 여기에 남깁니다.
독자의 입장에서 생각하려고 노력해볼게요.
정말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