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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한한 숫자의 생명들에 부재의 공간을 남겨 놓는 것    
글쓴이 : 배수경    14-02-20 09:41    조회 : 6,165
토마스만의 1929년 노벨 문학상 수상작을 각색한 영화 '부덴브로크 가의 사람들'에서, 영예와 부를 자랑하고도 남을 만큼의 대 저택에는 이제 멋진 가구도, 콧대 높은 귀족 가문의 사람들도 찾아보기 어려운 채 바람에 날리는 커텐들만이 자리잡고 있었다. 언제나 바람 만큼 삶의 본질을 드러내는 존재는 없다고 생각해 왔지만 이렇듯 한 영화의 엔딩컷으로 자리잡아, 커다란 빈 공간 사이로 오롯이 바람만이 불고 있는 묘사는, 무심한 관객에게도 충분히 당혹스러운 일이었다. 어떻게 이토록 평화로우나 차갑고, 아름다우나 잔인할만큼 생의 단면들이 여실히 드러나는 설정이 있을 수 있을까?
 
  
토마스 만의 집 앞 골목으로 5월, 북부 독일의 안개가 짙고도 차분하게 내려 앉아 있는 날이었다. 저 끝 어디선가, 인간 시간의 그 찰나성을 비웃기라도 하듯 영화 속 마차 한대가 달려올 것만 같아 나는 골목 어귀를 한참 동안 배외하다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창백한 외벽과, 집 안의 가구들에 뒤집어 씌여진 하얀색 천들은 오래 전 떠났던 부덴브로크 가 사람들의 형상을 꼼짝없이 대면케 하고는, 산다는 것의 본질 앞에 이방인의 마음조차 겸허해지도록 했다.
 
'무한한 숫자의 생명들에 부재의 공간을 남겨 놓는 것'
 
 
실체 없이 그저 제 갈 길 대로 가다가, 그렇게 모든 것을 조용히 그러나 성실하리만큼 예외없이 데려가 버리는 바람들. 그리고 그 사이로 남겨진 텅빈 공간들을 응시하다 돌아섰던 영화 속 카메라 렌즈처럼, 나는 건물 안 곳곳을 담담한 듯 하지만 조금은 시린 시선으로 따라가 보았다.
 
 
이 안의 사람들은 다들 어디로 간 것일까 ?
 
영화는 도시의 부유한 상인 가문인 부덴브로크 가의 3대에 걸친 성공과 몰락을 담은 것으로, 세상에서 영원한 것은 없으며 모든 것이 무상하고 변전· 순환하는 현실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었다.
 
 
하지만 흥망성쇠의 노정에서 벗어난 생명이 있을 수 없듯, 그 어느 도시와 마을이 생의 이 냉혹한 수레바퀴 아래에서 벗어나 있을 수 있을까? 개인적으로는 여전히 공산주의 시절의 잔재가 곳곳에 남아 있던 동독지역들, 나폴레옹 시대의 프랑스가 있었음을 떠올리기에는 다소 실망스러웠던 파리, 한 때 제국을 이끌었으나 이제는 그 흔적들만이 남아 있는 오스트리아 그리고 무수한 영욕의 세월을 거쳤던 폴란드의 Krakow 와 같은 지역들에서 그 부재의 공간들, 상실의 자국들이 더욱 선명하게 느껴지곤 했었다.
 
 
진실로 모든 것이 한 시절의 이야기일 뿐인 것.
해가 뜨면 녹아 없어질 오래된 보석같은 눈들의 운명처럼 모두가 애처롭고 가슴 저린 것.
그러나,
바로
그러하기에
어느 칠흑 같은 겨울 밤 호수에 비친 달빛처럼 더욱 선명히 빛나고 아름다운 것.
 
아무도 없는 새벽의 들판 위, 새들과 작은 동물들의 소리 외에는 어느 것도 들리지 않던 숲 길, 그렇게 고개를 들어 한없이 바라보면 수 만 광년이 걸린다는 별들의 이동도 가늠이 될 것 같던 시골 마을의 밤 하늘, 어느 도시의 오래된 골목과 빈 의자들 사이로 푸른 쓸쓸함이 파고들던 카페에서 삶의 빗장이 열리며 드러내주던 진실들은 바로 그것이었다.
 
내게도 그 부재의 공간들이 찾아올 것이라는 견고한 진실 
 
불과 몇 십년이 지나지 않아 내가 걷고 있는 이 길들 어디에서도 살아있는 생명으로서의 나는 존재치 않을 것이라는 것. 이 모든 분주함과 삶의 고단함, 그 외의 모든 행위와 감정들 또한 존재의 손아귀에서 미끄러져 사라져 버릴 것들이라는 차디 찬 공허가 순식간에 퍼붓는 소나기들처럼 그렇게 꼼짝없이 온 몸 위에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 잔인한 공허가 있었기에 생 앞에 절실할 수 있었고 겸손하지 못한 자의 온전한 복종이, 가슴과 영혼을 다하는 기도가 가능하지 않았던가. 찰나같이 지나치는 빛과 내음에도 사랑에 빠질 수 있었던 것, 길 위의 아이들의 짧은 웃음조차 소중할 수 있었던 것, 하늘 언저리에 떠오르는 태양이 골목과 골목 사이로 드리우던 황금빛 그림자들 앞에서도 울 수 있었고 사랑하는 이들의 살내음을 향해 온전히 나를 재물로 바칠 수 있었던 것 또한 그 덕분이었다.
 
그렇게 존재 깊숙히 들어오는 충만한 절실함과 절박함이 없었더라면 이 살아있음의 애닮은 아름다움은 애당초 불가능했을 일이였다.
 
 
들판에는 다시 정갈하고 맑은 바람이 불었다.
덜컹 덜컹, 무심한 몸짓을 시작하는 기차를 따라 언덕 위에서 지던 노을이 길게 그 그림자를 따라나섰다. 공기에 부서지는 투명한 황금빛 햇살들이 희뿌연 유리를 통해 존재의 불꽃을 흘뿌리고 있었다. 저 멀리에서 고요하고 정체되어 있어 보이는 나무와 풀잎 안에서 분주히 일어나는 달그닥 달그닥 그 생의 소리들이 들리는 듯 했다.
  
 
이것들 또한 그 어느 시간이 되면 생의 인연을 다할 일.  무엇보다 찰나 같은 시간을 살다 갈 인간인 나와 다시 마주하기란 천겁의 인연이 다해도 불가능할 지 모르는 소중한 생명들이었다.
 
그러니 아낌없이 사랑할 일이다. 존재를 다하여 느끼고 품어낼 일이다. 목적 없이 듣고 보는 일에 셈하지 않을 일이다
 
죽음의 현존을 받아들이는 순간, 그 유한성 앞에 온전히 엎드리는 순간, 그 텅빔의 운명을 직시하는 순간, 내게 온 것은 생에 대한 깊은 존경과 충만함이었다. 기적은 어마어마한 것들이 아니라 '살아있음' 그 자체에 있었다. 그러한 진실을 어깨에 짊어지고 길 위에 서면 무섭고 두려운 일은 오히려 내 안에 있는 것들이었다.
 
 
수레바퀴는 어김없이 회전하고 바람은 다시 어딘가에서 불어왔다가 무심히 가고 있다. 때로는 인간의 진심 따위는 내팽겨쳐지는 것 같아 더없이 원망하고 서러워했다. 하지만 그런들 어떠랴. 너의 그 무심함에 나는 더욱 마음을 다하려 했고 내 모든 것을 바치고자 했으니.  
 
 
 
 
살아있는 것은 다 행복하라 했던가?
생이 나를 기억하지 못한다 할지라도 나는 이 생을 오롯이 기억할 것이었다.
부재하기 전의 존재들을,  찰나였기에 더욱 소중했던 그 애달팠던 이름들을.
 
 
 
 
 

임정화   14-02-20 11:14
    
안녕하세요, 배수경 선생님.
산문을 시처럼 참 아름답게 구사하시네요. 문단 나누기도 눈에 보이는 아름다움을 떠올리게 하고요.
저는 영화는 못 보고 책만 읽었는데 오래 되어서 그런지 이런 장면이 마지막에 있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네요. 저에게는 모든 것을 쓸어가는 태풍 같은 바람의 결말은 마르께스의 <백년의 고독>이 상당히 인상 깊게 남겨져 있어요.
죽음과 그 죽음 뒤에 잊혀지고 사라질 수많은 존재들의 자리가, 텅 비어 부재의 흔적을 남긴다고 보신 것 같은데, 도입부에서 언급되었듯이 그러한 부재들은 아직 남아있는 공간들, 그러니까 옛 건물이나 도시 등이 있어야만 부재의 공간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싶네요. 새롭게 조성된 무수히 많은 마천루의 도시나 숲을 난자해서 옛모습을 흔적도 없이 적멸케 한 곳에서는 부재의 공간을 느낄 수 없을 듯합니다.
왜 이런 말씀을 드리냐 하면, 물론 선생님께서 바람이나 수레바퀴 등으로 누구나 죽고 우리가 살았던 자리는 바람과 함께 사라져 텅 빈 공간만 남게 된다고 느끼시는 것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습니다만, 그 내용을 산문으로 쓰실 때 이처럼 길고 화려한 문장들로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데 치중하시다보니 정말이지 실체 없는 바람을 한 번 맞은 듯 정돈되지 않고 어수선한 기분이 들어서입니다.
물론 이런 기술방법도 선생님만의 문체이고 미를 추구하시는 방법이실 테지만, 독자들이 친근하게 작가와 교감할 수 있다면 더 좋지 않을까 하는 바람이 생기기도 한답니다. 외람된 말씀이지만 무슨 내용인지는 다 알겠고, 문장들도 시처럼 아름다운데 어쩐 일인지 다 읽은 뒤에는 아무것도 먹은 적이 없는 것처럼 입안에 어떤 맛도 남지 않거든요.
글을 오래 써오셨고 문학에 큰 애정을 갖고 계신 분이며, 참 잘 쓰신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아쉬움이 들어 길게 적었습니다. 예를 들어 처음에 토마스 만 원작의 영화를 거론하셨는데 그 영화의 내용을 소재로 작가의 단편적인 어떤 삶을 교차시켜 좀더 현실에 발을 붙인, 인상이 아닌 또렷한 이미지가 남는 글이라면 더 좋았겠다는 말씀입니다.
길기만 길고 난삽하게 댓글을 달아서 이해하시는 데 어려움만 드리는 게 아닌가 우려가 되네요. 지금도 훌륭하지만 모쪼록 더 정진하셔서 일개 독자의 아쉬움마저 지워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잘 읽었습니다.^^
배수경   14-02-20 11:39
    
안녕하세요. 임정화 선생님. 소중한 의견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특히 애정어린 조언을 해주신다는 느낌이 없는 글이 단 한 줄도 없다는 걸, 읽는 제게 다 느껴져서, 주신 말씀을 제가 오히려 다 소화해내지 못할 것이 걱정이 될 만큼 감사한 마음 뿐입니다.

예.. 주신 조언은, 이 글을 떠나서 아마도  제게 다른 글을, 또 앞으로 어떤 글들을 쓸 때에도 매번 유념하면서 쓰게 될 것 같습니다..

한번만이 아니라 여러번 선생님께서 주신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다시 한번 소중한 조언들을 주심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임정화 선생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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