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와 洋傘
비가 올 때는 우산이 필수다.
비를 맞으면 왠지 초라해 보이고 처량해 보이기까지 한다.
가녀린 여학생이 비를 맞으며 걸어가는 것을 보면 얼른 뛰어가서 우산을 받쳐주고 싶다.
그 만큼 비를 맞는 것은 썩 유쾌한 일이 아니기에 우산은 생활필수품이다.
그러나 양산은 있으면 좋고 없어도 그만이긴 하지만, 여자들에겐 우산만큼이나 필요한 물건이다. 햇볕을 가리는 차광막으로 한 여름에는 젊은 아가씨들보다 오히려 나이든 이들이 더 양산을 많이 들고 다닌다.
여자들이 한껏 멋을 부리고 양산까지 받쳐 들면 왠지 완벽한 패션이 완성된 느낌이다.
햇볕이 쨍쨍 쬐는 날, 얼굴이 벌개져서 찡그리고 걸어가면 뭔가 덜 마무리된 기분이 든다. 그래서 여자들에게 있어 양산은 장신구이자 보호구이다.
요즘은 양산의 종류도 많고 가격도 다양하다.
꽃밭을 양산위에 올려놓았는가 하면 화려한 레이스를 둘러서 한 층 그것을 드는 이를
공주풍 으로 꾸며주기도 한다.
어떤 양산을 들었는가에 따라서 그녀가 어떤 취향을 갖고 있으며
그녀의 주머니 무게까지 살짝 엿보기도 한다. 단순히 햇볕을 가리는 물건만이 아니라
패션의 완성이라는 시대적 사명을 띠게 된 양산의 가격 또한 만만치 않다.
소재의 고급화를 내세워 껑충 뛴 가격에 만지작거리기만 하다가 결국 허탈하게 돌아서야 할 때도 있다. 눈에 들면 비싸고 그렇지 않으면 맘에 안 들고
이래서 선 듯 골라들기가 쉽지 않은 것이 양산이다.
누가 큰 맘 먹고 사주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그 주변을 뱅뱅 돌고 돌다가
겨우 하나 고르게 될 때도 많다. 이걸 고르고 나면 저게 마음에 들고 마음에 드는 걸 골라 펴보면 또 다른 양산이 ‘나도 여기 있소’를 외치니 가격이나 문양, 견고성과 기능성이 모두 합당하려면 마음속이 복잡해진다.
그래서 양산을 여기저기 펴보기만 하다가 그냥 나오는 날엔
그 상점 직원의 흰자위가 눈 안에 가득해지고 입이 댓 발로 나올 수도 있다.
뒷통수에 꽂히는 뜨거운 시선이 멀리까지 광선을 쏘며 따라올 수도 있다.
그렇게 필요하지만 마음에 쏙 드는 양산을 사기가 힘이 들기도 하다.
나도 여름이면 양산을 즐겨 쓴다.
그동안 내 곁을 떠난 양산도 숱하게 많다. 우산처럼 양산도 잃어버리기 쉬운 물건이기
때문이다. 집을 나서면서 나를 따라 나섰던 양산이 집으로 돌아올 때는 없다.
없는 걸 뻔히 알면서도 가방 속을 이 잡듯 뒤진다.
잃어버리고 새로 살 때마다 이번엔 잃어버려도 아깝지 않을 싸구려를 사야지
하면서도 막상 양산을 고르게 되면 아무거나 사지지 않는 것이 여자 마음인가보다.
7월이 수명을 다 해가는 말경.
학교 동기가 그전부터 한 번 어디든지 다녀오자고 끈질긴 제안을 했다.
그러자고 수락을 하고 둘이는 모처럼 전주 한옥마을로 나들이를 했다.
오랜만에 새마을호 기차를 타고 전주 땅에 닿았다.
당연 흥분이다.
심리적 흥분은 차분함을 뺏어간다.
어디가든 침착해야지 하면서도 그게 잘 안 된다.
타지에 간 터라 이동 수단으로 택시를 탔다.
택시를 타고 가는데 나와 이별의 조짐인지 가방에서 삐져나온 양산 손잡이가
덜그덕 덜그덕 차문에 부딪친다.
얼음처럼 투명한 꽃문양의 손잡이를 봤으면서도 그것이 마지막 인사인줄을 몰랐다.
배낭 속에 넣어서 뒤에 짊어지고 택시를 탔는데 아마도 내릴 때
이별 통보를 했던 그 양산이 가방 속에서 빠져나갔던 것 같다.
택시에서 내리면 펼쳐질 여행의 달콤함에 양산을 잃어버릴 줄은 생각도 못했다.
양산이 없어진 줄도 모르고 한옥마을 주변을 걷고 있는데 동행 했던
동기가 양산 어디 갔냐고 물었다.
그때서야 양산이 내 곁을 또 떠났음을 알았다.
그 양산은 올 여름이 시작될 무렵에 산 새 양산이다.
작년 가을에 나와 이별을 하고 떠난 까만 레이스 양산을 대신해서 산 것이다.
외출이 잦지 않아서 그동안 별로 쓰지도 않고 모셔두었다.
바람을 쐬러온 덕분에 데리고 나왔던 건데 그것과 또 헤어졌다.
연분홍 바탕에 작은 물방울무늬와 까만 레이스를 둘러 귀염성 있고 앙증맞았다.
양산을 사기 위해 백화점을 찾았을 때 첫 눈에 확 내 마음을 사로잡아 버렸었는데
이리 쉽게 떠나다니. 그것을 사서 쓰고 나오면서 누군가가
“어머, 양산 예쁘네요”
이렇게 외쳐주길 바랐던 물건이다.
애지중지 하면서 현관 우산 꽂이에 꽂아두고 자주 쳐다봤었다.
다신 잃어버리지 말아야지 각오도 했었다.
한옥 마을에서 땡볕을 그대로 받으며 걷자니 떠나간 양산이 간절히 아쉽다.
미간에 주름을 잡으며 인상을 쓸 때마다 ‘에휴 왜 인상을 쓰냐’며 살포시
얼굴을 가려주던 내 짝, 양산이 없어지면서 여행의 흥분도 반감되었다.
그저 그늘만 보면 앉고 싶고 보는 것도 귀찮아 졌다.
상점에서 수박 주스를 사먹으며 양산을 잃어버렸다고 하소연을 했다.
전주에 와서 양산 잃어버린 것이 두고두고 추억에 남을 것이니 잊고 더 나쁜 일 안 생긴 걸 다행이라고
생각하란다.
참, 내일이 아니면 누구나 판단도 쉽고 포기도 쉽다.
또 그걸 사야 할 텐데 괜히 생돈 들게 생겼으니 마음이 심난스럽다.
그날 전주에서 두고 온 양산은 누구 손에 들어갔을까.
택시 기사의 아내에게 들어갔을까.
아니면 젊고 예쁜 아가씨 손님에게 선심 쓰듯 건네졌을까.
돌아올 때 탔던 60대의 택시 기사 말 맞다나, 우산이나 양산을 하도 많이들
두고 내려서 트렁크에 싣고 다니다가 젊고 예쁜 아가씨가 타면 ‘옛다’ 하고 준다나.
그래서 왜 아가씨에게 주냐고 괜한 타박을 하기도 했다.
내 양산은 아마도 가정적일 것 같은 아저씨의 아내에게 건네졌을 것 같다.
아내가 차려주는 뒤늦은 저녁상을 물리고 아저씨는 기분 좋게
“어여 이리와 봐. 내가 오늘 아주 괜찮은 물건을 택시에서 주어왔어”
하면서 물기어린 아내의 손에 쥐어주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면 그 아내는
“오메, 이쁘다” 하면서 양산을 펴들고 빙글빙글 몇 바퀴 돌기도 했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 그 아내의 취향과 동 떨어진 것이었다면
“뭐가 괜찮어, 아휴 하나 멋있지도 않구만이라우”하면서 써보지도 않고
신발장 한쪽 구석에 쳐 박아 둘 수도 있을 것이다.
이렇게 본 주인은 애가 타고 있는데 주은 이들은 제멋대로들 그 물건을 가지고
좋으니, 별로 라느니 한가로운 평들을 하고 있겠다.
여자에게 있어 양산은 단순히 햇빛 가림 막 역할만 하는 것은 아니다.
비가 올 때는 우산대용으로도 쓰인다.
길에서 누군가와 시선을 피하고 싶을 때도 있을 것이다.
그럴 때 한쪽으로 기우뚱 얼굴을 가려버리고 지나가면 아무도 모른다.
접었을 때는 지팡이나 어떤 장애물을 걷어내는 도구로도 쓰인다.
누군가가 해꼬지 하려고 한다면 그것이 방패가 되기도 한다.
일단 패션의 완성이라는 악세사리 역할에서 그때그때 용도를 달리할 수 있으니
여자에게 있어 필수품이 아니고 무엇이랴.
집에 와서도 현관에 꽂혀있던 그것의 부재가 여간 허전하지 않다.
생물이든 무생물이든 그것과의 교류가 얼마나 소중한 건지 잃어버리고 나서야
절절하게 느끼게 된다.
며칠 있다 또 양산을 사러 갈 것이다.
남자들이 알면 안 쓰면 그만이지 자꾸 잃어버리고 사는 건 뭐냐고 하겠다.
한 여름에 양산을 쓰지 않고 나가는 건 사정없이 쬐는 자외선의 공격을 그대로 받겠다는 얘기다. 그렇게 중요한 양산을 사들면 다신 잃어버리지 않게 해달라고
고사라도 지내야 할까보다.
양산대에 전화번호를 크게 써서 분실에 대비한다고 해도
잃어버리면 그만이지 습득자가 그것을 보고 연락을 해 올 가능성은 희박할 것이다.
또 잘못하면 그 양산 하나를 미끼로 나쁜 마음을 먹을 수도 있겠다.
오로지 잃어버리지 않게 내 손아귀에 꼭 쥐고 정신을 바짝 차릴 수밖에 아직까진 묘수가
떠오르지 않는다.
새로운 것과 만나면 “야, 우리 이젠 헤어지지 말고 언제까지나 잘 지내보자”
그러면 그것은 “그래 이번엔 잘 지내보자” 이렇게 말해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