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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낯선 남자    
글쓴이 : 마당김미선    15-08-29 14:15    조회 : 5,009

낯선 남자

 

여보, 여보 이리 와봐. 아무래도 얘와 얘가 짝이 아닌가봐.”

후다닥 달려간 나는 또 실소하고 말았다.

  벌써 척 보기에도 짝꿍이 아닌데 왜 또 둘을 짝꿍으로 만들었어?”

바지는 갑돌이 표 상의는 갑순이 표를 입고 올곧은 짝꿍이길 바랐던가!

남편은 아침마다 여러 차례 나를 불러 세우고 나서야 집을 나선다.

 옷이든 양말이든 넥타이든 그가 입고 나서야 될 용품들을 차곡차곡 빼곡, 빼곡 갖춰놨건만

도무지 찾지도 못할뿐더러 뱅뱅 돌기만 하다 결국은 나를 불러 세운다.

그 수선을 떨고 남편이 출근하고 난 자리엔 항상 주변이 너저분하다.

 드라이를 맡길 때 붙였던 식별표가 뒹굴고, 옷걸이가 침대위에서 주인 행세를 하는가 하면 

손수건이 화장대 위에서 엉망으로 구겨진 채 오만상을 찌푸리고 있다.

벨트와 타월도 원수진 사이처럼 서로 틀어져서 방바닥을 기어가고 있다.

이 난감한 상황이 매일 아침마다 일어나고 있다.

 도무지 낯설다.

어린 아이도 아니고 지능이 떨어진 사람도 아니건만 그런 현상이 30여 년 동안

반복되고 있다.

뭘 스스로 알아서 챙기려고 들지도 않을뿐더러 챙겼다고 하더라도 뒷감당을

말끔하게 마무리 짓지 못하고 늘어놓고만 나간다.

그러니 내가 그를 향해 안구운동을( 눈 흘김) 안할 수가 있겠는가?


   엊그젠 오랜만에 딸과 둘이 춘천으로 여행을 다녀왔다.

극성맞은 머슴아이 하나 두고 가는 것처럼 이것저것 다짐하고

일러두고 갔지만 맘은 편치가 않다.

삼일 만에 들어와 보는 집안은 사람 사는 집 같지 않고 썰렁하다.

우선 현관 앞에 조명등이 보이지 않았다.

현관 앞에는 다육식물을 키우고 있어 조명등을 항상 켜두는데 그것이 또 제자리에 없다.

퇴근한 그에게 조명등 어디 갔나요?” 물었더니

내가 깨뜨렸어.”

어머, ?”

마누라도 없고 적적하기에 거실에서 자려고 누웠는데 안방에 놔뒀던 핸드폰이 울리더란다.

누군가 반가운 마음에 막 뛰어가다가 조명등을 쓰러뜨리는 바람에 깨졌단다.

아휴 내가 그거 얼마나 아끼는 건데 또 일을 저질렀군.”

며칠 나가있는데도 이러니 아주 없어지면 어떻게 살려는지 모르겠다.

도무지 뭔가 한쪽 구석

나사 하나가 빠져있지 않고서는 혼자서 할 수 있는 일도 없을뿐더러

하나라도 깨지거나 으깨지지 않는 일이 없으니 이일을 어찌하나.

 

    집안에만 들어왔다 하면

여보, 나 시원한 물 한잔 갖다 줘

여보 여기 수박 한쪽 만 줘봐

여기 불 좀 켜봐

바로 옆에 스위치가 있는데도 그걸 내가 켜주길 바란다.

뭐든 말만 하면 만사형통이라고 믿는다.

여전히 눈을 흘기면서 갖다 좀 먹으라고 윽박도 질러보고

다섯 살 사내아이 다루듯 살살 달래도 봤다.

음식을 입에 넣어주면서 기생이 원님 수발 들 듯이 애교작전도 펴봤다.

그러나 요지부동이다.

아마도 그는 내게 상전이 되고 싶은 심리다.

밖에 나가서 온갖 스트레스 받으면서 돈 벌어다 주는데 집에 들어와선

부리고 싶은 심리가 작용하는가 보다.

그러니 당연히 그의 모든 일거수일투족을 다 수발해야 하는 고단함을 안고 산다.

 

    얼마 전에는 거실에 바란스를 치기로 했다.

화초가 많아서 그동안 햇볕이 들어오는데도 그냥 참고 살았다.

창가로 기어드는 여름 햇볕은 아무리 화초를 위한다지만 조금은 차단해줄 필요성을 느꼈다.

블라인드를 칠까 하다가 아주 차광막을 치면 그 좋아하는 화초들이 아우성을 칠까봐

그냥 윗면에 짧은 바란스를 치기로 결정했고

전동공구가 필요하게 됐다.

 사무실 옆에서 전동공구를 빌려다 이번만은 꼭 자기가 못을 쳐줘야 한다고

강다짐을 한 날 저녁, 그가 전동공구를 빌려가지고 일찍 들어왔다.

일찌감치 저녁을 먹고 둘은 못 박는 작업에 돌입했다.

 나는 플라스틱 피스를 붙잡아 주고 그는 그곳에 전동공구로 못 박는 작업을

했는데 아무리 온 몸으로 전동공구에 힘을 가해도 못은 들어갈 기미가 없었다.

생전 처음 해보는 작업이라지만 남들은 금세 들어가는 못이 사람을 알아보는지 앙탈이다.

 고개를 쳐들고 섰는 나도 힘들고 못을 박으려고 안간힘을 쏟는 그도 역시 힘이 부치는지

잠시 중단 한 채 서로는 맥없이 주저앉아 폭소를 터뜨렸다.

다시 시도한 못 박기도 여전히 고난의 행군이다.

남의 남자들은 아무것도 아니게 끝맺는 작업이지 않은가!

온통 집안을 뒤흔드는 소음을 내뱉으며 용을 써도 안 되는 고난도 작업이라니 이게 될 말인지

슬그머니 화가 났다.

얼마나 집안일을 안해 봤으면 이렇게 못 하나 박는데 힘이 들어, ?”

아무래도 이 공구가 안 좋은 건가봐

안 좋기는 ......”

여러 차례 못이 거실 한 복판으로 튀어나와 뒹군 후에 겨우 못 세 개가 자릴 잡았다.

큰 한숨과 해냈다는 기쁨으로 둘은 화초 잎사귀가 들썩이도록 박수로 성공을 자축했다.

 그 봐라 이제부터 남편을 집안일에 끌여 들여야 해.

이담에 누가 먼저 혼자가 될지 모르지만 혼자라도 불편하지 않게 살려면

집안일을 어느 정도는 할 줄 알아야 되고, 그것이 전혀

낯설면 안 되지.’

양반 상투를 과감하게 벗겨 내야 한다고 혼자 중얼거렸다.

그것을 실행해 보리라고 내심 흥분된 감정을 감춰두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 저녁에 둘이 산책을 나가면서 음식 쓰레기와 재활용품을 들고

나가게 됐다.

눈앞을 가리는 박스를 들고 뒤뚱거리는 내 모습을 보면서도 뒷짐을 지고 여전히

어슬렁어슬렁 뒤따라온다.

일부러 조금 과장되게 흔들긴 했지만 그래도 아무런 동요가 없다니 이건 아닌데 싶어서

여봐요, 안 보여요? 덩치는 커가지고 조그만 여자가 들고 나가느라 애 쓰는 게 안 보이냐구우?” 그러자 남편이 위에서 덜렁거리던 박스를 냉큼 집어 들고 앞장서서 걸어 나갔다.

! 이제부터 변신이 시작이로구나 좋아서 환호성을 치고 싶던 순간,

남편이 다시 내게 돌아오더니 박스를 다시 얹어주는 것이다.

어머 뭔 시츄에이션?

?” 아무 말 없이 종전의 행동대로 뒷짐이다.

앞을 쳐다보니 아줌마 둘이서 대화를 나누고 있었는데 그녀들에게 비칠 자신의 모습이

창피했던 거였다. 나는 얼른 박스를 내려 통째로 그의 손에 올려놓았다.

쑥스럽고 자존심 상하는 상황이었지만 그렇다고 그 자리에서 큰 소리가 나면

더 시선이 집중 될 터 그 자리를 벗어나 박스를 처리하고 나서 물어봤다.

 박스 하나 들고 나오는 게 그리 자존심 상하는 일이우?” “.....”

아냐 그게 아니야 오히려 여자가 쩔쩔매고 나가는데 남자가 모르는 척 하는 게 더 흉잡힐 일이야. 여기 아파트 아저씨들 매일 음식 쓰레기 봉지 들고 나오는 거 못 봤어?”

음식 쓰레기는 나두 아니야 그런데 재활용품은 남자가 버려주면 얼마나 멋있어 보이는데

못마땅한 남편의 표정위에다 대고 둘둘 기름을 쳐댔다.

이제 첫 쑥쓰러움을 풀어냈으니 그의 변화에 기대감이 크다.

음식 쓰레기 버리는 일이야 아직 요원한 일이지만 다만 박스 하나라도 들고 나서는

훈련을 지속적으로 시켜봐야 겠다.

움직이지 않고 마누라 부려먹어서 생긴 쓸모없는 살집 들이 그대로 세월 속에

축적되어 있는 모습은 이제 덜어 내야 한다. 살도 군더더기 마음도.

 

   소나기가 쏟아지고 있는데도 양반은 뛰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구닥다리 정신이라니

겉모습은 21세기요, 내면은 근세시대를 살고 있는 불량 양반을

이참에 제대로 훈련 시켜서 근사한 현대 남자로 만들어 봐야겠다.

그날을 위해 오늘도 내일도 아자. 아자. 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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