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7시에 고구마를 쪄먹으며 문득 시어머님 생각이 났다.
즉시 전화를 눌렀다.
“여보세요”
둔탁하고 쉰 듯한 어머니 목소리가 들린다.
“어머니, 저녁 잡수셨어요?”
큰 소리로 여쭸더니
“누구냐?, 둘째냐?” 용케 알아들으셨다.
올해 93세이신 시어머니는 고령이시라 귀가 잘 안 들리신다. 그래서 전화 통화도 또박또박 큰 소리로 얘길 해야 한다. 비밀 얘기는 못한다.
뭐 하시냐니까 텔레비전을 보고 계셨단다. 물론 동네방네 크게 틀어놓고 눕거나 앉거나
담배를 피우시고 계셨으리라.
“요새 뭐 하세요, 어머니?”
“ 낼 간장 담글라구 ”
“벌써요?”
“그래 낼이 그믐이잖냐”
“힘드신데 혼자 어떻게 하세요?”
“그래도 해야지 으떡하냐 , 내 살아있을 때나 니네들 해주는 거지 나 죽으면 사 먹어야지 할 수 있냐”
시골 장독대는 현관문에서 보이는 구석에 있다.
항아리들이 크기순으로 옹기종기 모여 있는데 그곳에는 몇 년 묵은 간장도 있고 된장도 있다. 아무것도 들지 않은 빈 독엔 거미줄도 쳐있다.
햇볕이 잘 드는 곳이긴 하지만 시골 날씨는 아직 쌀쌀 바람이 섞여 있을게 분명하다.
2월의 마지막 날. 간장을 담그는 날로 정한 며칠 전부터 어머니는 겨우내 말려뒀던 메주를 꺼내 먼지를 털어내고 물로 깨끗이 씻기도 하셨을 것이다.
그 연세에도 그믐날엔 간장을 담가야 한다고 머릿속에 동그라미를 쳐 놓으셨을 게다. 잊어버리지 않으려고 글씨가 커다란 달력을 연실 쳐다보셨을 것이다.
당일 날 무거운 메주덩어리들을 함지박에 두 서너 개씩만 담아서 날라 놓으시며 꼬부라진 허리가 더 땅하고 가까웠을 거다.
어머니는 어머니의 허리보다 더 높은 독 속에 물을 채우고 메주를 띄우셨겠지.
오이처럼 휜 허리를 항아리 한쪽에 기대면서 간장 농도를 맞추기 위한
발 돋음도 하셨을 게다.
계란으로 염도를 맞춘 후 숯과 마른 고추로 구색도 갖출 것이고
그러다가 에구구~ 허리 한쪽에 손을 얹으면서 심호흡도 하셨을 듯싶다.
당신이 생각했던 대로 농도가 맞는지 새끼손가락에 간장을 찍어 쩝쩝 간을 보시기도 했을 것이다. 장독대는 바로 산 밑에 있어 그 광경을 참새와 소나무와 상수리나무도
지켜보고 있었겠다.
간이 맞게 된 듯싶으면 장독대 한쪽에 철퍼덕 주저 않으셔서,
왼쪽인지 오른쪽인지 몸빼 바지 주머니에서 담배 한 개비를 꺼내 무실 것이고,
두둥실 떠가는 구름을 따라 멍하니 허공을 쳐다보기도 하셨겠다.
정면으로 부딪히는 햇살에 미간도 좁히셨겠다.
간장을 담갔다는 흐뭇함과 힘든 노역을 마친 가벼움이 마당 가득 고여 들었겠다.
4월쯤엔 따스한 봄 햇살을 맞으며 장은 노랗게 혹은 달착지근하게 익었을 것이다.
어머니는 익어가는 된장 뚜껑을 열어 찬란한 봄 햇살을 쬐게 할 것이고 그러면서 이렇게 중얼거리시겠지.
‘이것들이(자식들) 된장 안 떨어 졌나 모르겠네.’
어머니 외에 누구 하나 봐주는 이 없건만 온 마당에 영산홍 무더기들이
봄 무대를 혼곤하게 꾸미고 있을 그 곳.
늙은 은행나무도 어머니의 動線을 지켜보면서 연두색을 꺼내들고 있겠지.
그 마당에선 김 선 남, 고유의 된장이 구수한 냄새를 풍기며 4월의 봄 향기를 익혀가고 있을 거다. 어머니의 유일한 친구인 강아지 한 마리가 마당을 가로 질러 겅중대고 있을
용인의 그 봄.
어머니는 꼬부라진 허리위에 내리쬐는 봄볕을 맞으며 텃밭에서 뭔가를 캐고 심고 고랑을 만들면서 봄을 훑고 계셨겠지.
어머니가 간장을 담그신다고 한 2월도 지나고, 찬란했던 4월의 봄볕도 지나 갔다.
4월과 7월에 친척 결혼식이 있어 갔었고 추석과 어머님 생신이 든 10월에 또 다녀왔다.
벌써 11월이다
요샌 그저 전화로 추운 날 밖에 나가지 마시라고만 당부를 한다.
말이 잘 안 들리시면 그냥 “된장 남았냐” 는 동문서답에 웃음으로 전활 끊는다.
자식들 특히 멀리 떨어져 살고 있는 둘째인 우리는 된장이 바닥나야만 어머니를
뵈러갈 때가 많다. 어떤 부모나 다 그렇듯이 누군가가 오기만을 기다리시다가 자식이 짜 짠 나타나면 얼굴에 햇살이 가득하시다.
“된장 남았냐?”
대답이 떨어지기도 전에 어머니 발걸음에 활기가 실린다. 꼬부라진 허리에 한손을 얹으시고 장독대를 향하시는 모습이 여간 분주하지 않다.
어머니가 주고 싶어 하는 것이 어디 된장뿐이랴.
어머니는 내가 용인에 간다고 연락만 하면 장롱 속을 뒤지신다. 어머니가 보시기에 좋다고 생각되는 옷들이 그날 장롱에서 끌려나오는 날이다.
집에 들어서기가 무섭게 어머니는 나를 안방으로 끌고 가신다. 그리고 쌓아 놨던 옷들을 얼른 입어보라고
성화시다.
젊게 잡아도 70대 할머니에게나 맞을 옷을 입으라고 야단이시다. 나는 참 난감하다.
그렇다고 어머니 앞에서 단호하게 싫다고 할 수도 없다.
나는 잠깐 연극배우가 되기로 한다. 갑자기 폭삭 늙어버리고 만다. 그래야 좋아하신다.
그 옷들은 좋아하는 연극배우에 의해 곧 커다란 보따리가 되어 현관문 앞에
놓여진다. 안 가져 갈까봐 아예 현관에 수문장을 시켜 놨다.
몇 해 전 겨울 설 명절에는 느닷없이 꽃신 한 켤레가 내 발 앞에 놓여졌다.
반 강제로 내 발에 꿰어 맞춰진 꽃신은 발과 따로 놀 정도로 컸다. 어머니에게 누군가가 선물 한 것인데 어머니 발이 워낙 크시다 보니 그럴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잘 맞는다고 너나 갖다 신으라고 내 대답을 기다리셨다. 꽃무늬가 새겨진 빨간 꽃고무신은 내 발에 신겨져 또 나를 희극배우로 만들었다. 그 꽃고무신도 내 보따리 안에 귀한 품목으로 자리 잡고 이동을 기다리는 신세가 되었다.
꽃고무신에 짤막한 한복 치마를 입으면 곧바로 연극 무대에서 신파극의 주연이 되어도 손색이 없을 만치 화려하고 고전적 차림새가 될 것 같다.
현관문을 지키는 옷 보따리도 내 가방 깊숙이 쳐 박혔던 꽃고무신도 올 때는 어머니 몰래 장롱 속으로 은신시키고 나는 시골을 빠져 나온다. 그 후 어머니의 서운한 전화벨이 어김없이 나를 호출하기에 이른다. 참으로 어머니는 보따리 부풀리기 선수시다.
구순의 기억력 치곤 너무 파릇하시다. 무, 고춧잎, 민들레, 심지어 감자까지 말려서 차곡차곡 쌓아놓으신다. 산야에서 자라는 한 해살이 풀들은 모조리 말려서 내가 오기만을 고대하신다. 그것들은 나의 출현과 동시에 남편의 보약이란 책무를 진다.
그것까지 차마 싫다고 할 수가 없어서 들고 오긴 하지만, 막상 어떻게든 먹어보려고 하면 도저히 먹을 수 없는 상태가 되어있다. 온갖 잡동사니가 섞여서 과연 그것이 보약으로서의 기능을 할 수 있을지 먹거리 많은 세상에 또 불효가 터진다.
쓰레기통으로 버려지면서도 어찌나 죄스럽던지
‘어머니 제발 이런 것 좀 하지마세요’
혼자 중얼거린다. 안하시면 얼마나 편하실 건데 왜 그 고생을 하시는지 버릴 때 마다
죄받는 것 같다.
그것을 해놓으시며 얼마나 힘드셨을까 생각하면 도저히 버리면 안 되는데도 버려야만 한다. 그렇다고 ‘그런 것 좀 하지마세요’ 라고 직접 말 할 수는 없다.
그렇기에 매년 편치 않는 일이 반복된다.
용인 산자락에 어머니가 이렇게 혼자 사신다.
연세가 많다고 해서 절대 할 일을 미루거나 귀찮아하시지 않는다.
그러나 당신 혼자 잡숫는 섭생만은 귀찮으신가보다. 어쩌다 가 뵈면 밥솥에 며칠 밥을 한꺼번에 해놓고 잡수신다. 그럴 때마다 며느리 된 도리도 못하면서 된장은 꼬박꼬박 퍼다 먹는 입장이 좌불안석이다. 어머니의 유일한 낙은 무엇이든 만들어서 자식들에게 나눠주는 것이다. 그나마 된장 갖다 먹는 것이 효도하는 일일까.
어머니께 미안하다는 표시로 고작 한다는 게 전화를 드리는 일이다.
그러면 끊을 때 마다 오히려 “고맙다”고 하신다. 당신 잡수실 것은 신경도 안 쓰시면서 자식들 안위만 걱정하시는 어머니를 닮으려면 난 아직도 멀었다.
자식들은 나름대로 잘 들 살고 있음에도 어머니는 매일 새벽잠을 날려버리고
염불로 자식들의 건강을 빌어주신다.
동네가 시끄러울 만치 큰 소리로 천수경을 틀어놓고 염주를 돌리신다. 그건 하루 일과 중에 어머니가 식사를 하듯이 꼭 하시는 일이다.
아마도 식구들이 몰려오는 큰 집안 행사를 빼고는 단 하루도 거르지 않고
그 의식으로 하루를 열고 계신다. 독실한 불교 신자인 어머니가 자식들에게 해 줄 수 있는 또 하나의 恭이다.
오늘도 어머니에게 전화를 눌렀더니 어디서 뛰어오셨는지 숨이 찬 목소리로 받으신다.
“저녁 잡수셨어요?”
“그래, 애비 들어왔니?”
“아직 안 들어 왔어요”
“얘, 저번에 가져간 감자 말린 거 있잖어. 그거 술 마시는 사람한테 좋대.
보리차 끓이듯이 끓여서 멕여.”
“네, 어머니”
감자 말린 것은 이미 쓰레기통으로 들어 간지 오래다.
그것이 어떤 성분과 효과를 지니고 있는지는 모르신다. 다만 그 무엇이든 자식의 입속으로 들어가는 사실만이 어머니에겐 중요하다. 이미 없어진 감자 말린 것을 끓여 멕이라고 하는 어머니나 대답하는 며느리나 답답하긴 마찬가지다.
철썩 같이 먹이리라 믿는 어머니에게 찰떡같은 대답은 민망하기 이를 데 없다.
이제 어머니 연세 구순을 넘기셨다.
해주셔봐야 기껏 몇 년이다. 지금도 다리가 아프시다 면서도 여전히 뭐든 뜯어다 말리신다.
올 겨울엔 어떻게 하든 골라내고 걸러내서 한 번쯤 어머니의 마음을
고스란히 마셔봐야겠다.
돌아가신 연 후에 그것들을 그리워하며 후회하지 말고 이번만은 꼭 어머니의 정성을
음미해야겠다. 어쩌면 올 가을이 어머니가 주시는 마지막 선물이 될지도 모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