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부터 ‘주폭’이라는 단어가 우리 사회에서 회자되고 있다. 사회복지과 사무실이나 동 주민센터 상담실에는 CCTV가 설치되었고, 전화기는 자동녹음이 가능하도록 되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공무원의 안전을 지키는 것이 부족하므로 청원경찰이 배치되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더구나 연이은 사회복지공무원들의 자살소식은 이런 것들의 필요성을 더욱 부각시키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사람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연말이 되면 새해를 맞을 이런저런 준비들을 한다. 새해를 위한 나의 준비는 다가올 1년간의 삶의 지침을 준비하는데, 평소에 나는 조금은 말이 많은 편이기 때문에 ‘쓸데없는 말 줄이기’라든가, ‘잘난 척을 하지 말기’등등의 것들이다. 그런 1년간의 결심은 나라는 인간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기 위한 중요한 실행덕목이기도 하지만, 내 삶이 좀 더 행복해지기 위한 나름의 삶의 방식이기도 하다. 그동안 매년 삶의 지침들을 바꿔왔는데, 2년 동안 계속해서 동일한 지침이었던 것이 바로 ‘뱃심 기르기’였다.
나는 어린 시절 서울의 변두리에서 살았다. 아버지가 일을 해서 가족을 부양하는 보통 가정의 오 남매 중 둘째였다. 가족을 아주 많이 사랑했던 아버지는 열심히 일도 했지만, 엄마를 비롯한 나머지 가족들을 많이 힘들게도 했다. 아버지는 일제 강점기와 6.25전쟁 그리고 격동기의 한국사를 모두 겪은 분이었다. 어린 시절 전쟁으로 부모님을 모두 잃은 아버지는 외조부모님에게 양육되었기 때문에 자신의 가족에 대한 사랑이 더욱 지극했을 것이다.
가족에 대한 과도한 사랑은 본인의 열등감에 대한 표현일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은 건 내가 성인이 되고 나서도 한참 후의 일이었다. 내가 아버지를 충분히 이해하기 전까지, 나는 아주 오랫동안 아버지를 싫어했다. 아버지는 본인의 감정과 엇박자가 생기면 가족들에게 폭력을 휘둘렀고, 엄마와 우리 오 남매는 무서워서 벌벌 떨어야 했다. 중학교 1학년이었던 어느 겨울, 아버지가 아직 퇴근하지 않은 저녁시간이었다. 엄마와 오 남매가 함께 저녁을 먹고 난 후, 형제들과 즐겁게 놀면서 문득 들었던 생각이 오십이 지난 지금도 아주 생생하다.
‘아버지가 집에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렇게 십대를 보내고 대학에 가고 어른이 되었다. 결혼을 해서 낳은 아들이 훌쩍 커버려도 내게는 어린 시절의 상처들이 고스란히 마음속에 엉켜있었다. 나는 조그만 일에도 상처를 받는 소녀였고, 청년이었고 그렇게 어른이 되었다. 더구나 사회복지공무원으로 근무하면서 거친 중년의 남자를 민원인으로 상대하는 일은 너무나 힘든 일이었다.
사무실 문을 밀고 들어서는 3, 40대의 중년 남자, 그들은 약간의 알코올 냄새를 풍기기도 했고, 자신의 감정을 조리 있게 설명하지 못했다. 지금 자신이 얼마나 어려운 상태에 있는가를 설명하다가 제대로 이해받지 못한다고 생각되면 갑자기 공격적인 언어와 행동을 표현한다. 그런 민원인이라고 판단되는 순간, 나는 얼굴이 붉어지고 심장이 마구 뛰기 시작한다. 그런 상태에서 민원인의 욕구를 제대로 파악해서 적절한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것은 너무나 어려운 일이었다.
그럴 때 느끼는 나의 감정은 ‘수치심’이라는 단어가 가정 적절할 것이다. 조금씩 내 마음을 들여다보기 시작한 나는 어린 시절 내가 경험했던 나의 아버지의 모습을 떠올렸다. 중년의 거친 남자 민원인은 어린 시절 나의 아버지의 모습이었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고 한다. 적이 내 안에 있는 것을 깨닫는 순간, 나는 이길 수 있다. 하지만 마음 속 깊숙이 들어 있는 폭력의 두려움을 극복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깊이 내재되어 있는 불안과 두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책을 읽고 좋은 강의도 열심히 들었다. 마음공부를 위해 명상이나 수행프로그램도 참여했다. 그리고 내가 선택한 방법은 스스로에게 과제를 주고 실천하는 것이었다.
나에게 찾아오는 민원인이라고 생각되는 거칠고 낯선 남자가 사무실 문을 들어서는 것을 보면, 나는 우선 큰 호흡을 한다. ‘괜찮아, 잘할 수 있을 거야’라고 스스로에게 다짐한다. 그리고 내 앞에 앉은 그의 이야기를 차분하게 들어주고 받아들이고자 노력했다. 대화중에 민원인이 심한 공격성을 보여도 흥분하지 않고 스스로를 격려하는 방법, 폭력에 대비하기 위한 물리적인 안전의 방법도 준비했다. 그들도 거친 언어를 사용하지 않고 편안하게 상담이 끝나면, 그들 나름대로의 방법으로 감사를 표현하기도 한다.
민원인이 돌아가고 나면 나는 스스로를 칭찬하는 방법을 되풀이하면서, 이제는 웬만한 거친 민원인도 심장의 떨림 없이 대할 수 있게 되었다. 후배 공무원들의 자살소식을 들으며, 그들에게 찾아온 고통에 함께 해주지 못했음이 가슴 아프다.
또 하나, 돌아가신 아버지와의 행복하지 않은 이야기를 하게 되어서 아버지에게 아주 많이 미안하다. 파주 동화공원묘역에 계신 아버지의 묘비명이다.
‘삶은 고단하였지만, 소중한 가족이 있어 행복하였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