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상1) 그 모습이 다시 그립다
"민아, 일어나 봐."
아버지가 내 귓전에 입을 대고 조용하게 불러 잠을 깨웠다.
지금 생각해 보아, 아마도 구월이나 시월 새벽 대여섯시쯤이었던것 같다.
초록색 털실로 성글게 짠 스웨터를 주워 입고 밖으로 나왔지만
바깥은 칠흑같이 어둡고, 팔짱을 끼고 몸을 웅크릴 만큼 공기는 싸늘했다.
"가자. 지금가면 잘 들을 수 있을꺼다."
기역자 미군후레쉬 하나로 비춰진 산길을, 뭘 하려는지도 모른채, 그저 묵묵히
따라 산중턱까지 한참을 올랐다.
"됐다. 이쪽에 앉아 보자."
주변은 사물이 흐릿하게 인식될 정도로 동이 터 왔지만, 산안개가 자욱했고,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는 적막산중에 둘은 나란히 바위턱을 찾아 걸터 앉았다.
둘의 호흡이 조용해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가 불쑥 말했다.
"저기다. 들렸지?"
뭐가 들렸다는 말인지 도통 알 수 없는 나에게 아버지는 손가락으로 저만치 위치를 가르키곤
긴장된 목소리로 거듭 말했다.
"들리지. 들리지."
"잘 들어봐. 사각이는 소리. 저거, 송이가 솔갈비를 밀고 나오는 소리야."
다시 한참을 지나 아버지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렇게 기억된 소리의 위치들을 찾아 다녔다.
제법 넓은 범위였지만 찾아 나선 여기서도 저기서도 땅바닥에 소복한 솔잎만 대충 걷어내면
불쑥 치솟은 송이들이 바로 그 자리에 있었다.
아침 햇살에 환하게 밝아진 아버지의 모습을 초등학생이었던 나는 보았다.
그리고 50년이 지난 지금도 내 귀가 남보다 예민한건 아마 그 때문이지 싶다.
내 아버지, 그 모습이 다시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