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생일
신문주
눈을 떴다. 몸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었다. 웅성거리는 소리 속에 어머니의 음성이 들려왔다. 가만히 들어 보니 어머니는 내 손을 꼭 잡은 채 울면서 감사의 기도를 올리고 있었다. 평소에 이성적이고 신앙에 비판적이던 어머니를 생각할 때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어머니가 민망해 하실까 봐 억지로 눈을 감고 가만히 기다렸다. 어머니가 떠나실 때가 되었다. 내 입에 무엇인가 물려 있어 말을 할 수 없어서 어머니의 손을 힘껏 잡아드렸다. 혼자가 된 나는 비로소 나와 주변을 살펴 볼 수 있었다. 나는 딱딱하고 차가운 침대에 핀으로 꽂혀 있는 한 마리 나비와 같았다. 내 코, 입과 가슴 등에 여러 개의 관들이 어지럽게 꽂혀 있었고, 심장 박동기도 달려 있었다. 의료진들이 쉴 새 없이 번갈아 가며 와서 심장 박동기의 수치를 확인하고 엑스레이 촬영기계를 가져 와서 흉부 촬영을 하였고 그 결과에 따라 필요한 투약과 처치를 하였다. 중환자실이라는 별세계에서 나는 몇 일째인지 시간의 흐름을 놓쳐 버렸다.
2016년 9월 12일은 내가 다시 태어난 날이다. 꺼져 가는 심지 같던 내가 심장 판막 수술로 생명의 불꽃이 다시 당겨진 날이다. 수술 당일 아침 8시쯤 이동 침대에 뉘어 수술실과 연결된 엘리베이터로 수술실로 내려갔다. 입구 로비에서 차례를 기다리는데 바로 내 위에 높고 둥근 천장이 보였다. “내가 너와 함께 있으니 두려워 말라 (Do not fear, for I am with you.)”라는 이사야서 말씀이 한글과 영문으로 큼지막하게 적혀 있었다. 환한 조명 덕분에 그 글귀는 신비스러울 정도로 선명하였다. 그 말을 입 속으로 수도 없이 되뇌었다. 드디어 내 차례가 왔고 수술대에 누웠다. 내가 이대로 죽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언뜻 스쳤다. 눈을 감았다. 아기 예수를 품에 안고 있는 영원한 도움의 성모상을 떠올리며 내가 그 품에 안기는 상상을 하였다. 주위에서 사람들이 분주히 움직이며 얘기하는 소리가 잠시 들리는가 싶더니 나는 스르르 잠이 들어 버렸다.
돌이켜 보면, 창조주께서는 이 모든 일을 미리 준비해 두신 듯하다. 내가 갑자기 수술을 받기까지 일련의 표지들이 있었다. 일은 엉뚱한 데서 시작되었다. 2016년 봄 학기 직후 뜻밖에 여름 계절 학기 수업을 맡게 되었다. 어느 날 수업 중에 갑자기 쉰 목소리가 나면서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이비인후과에서는 역류성 위염과 식도염으로 인한 성대 질환이라며 원인이 된 스트레스를 예방하고 면역력을 키우려면 운동을 규칙적으로 하라고 하였다. 그래서 나는 매일 새벽에 일어나서 신촌의 경의선 숲길을 한 시간씩 걸었다. 그렇게 두 달 정도 하던 어느 날 몸에 이상 신호가 왔다. 갑자기 시야가 사시처럼 꼬이더니 어지럽고 다리에 힘이 빠져 걸을 수 없었다. 비슷한 증상이 두어 번 더 있었지만, 그러다 지나가려니 했다. 그러다가 가을 학기 개강을 사흘 앞둔 금요일 아침 눈을 뜨자마자 ‘오늘은 동네 내과에 가 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새 학기를 시작하기 전에 몸을 한 번 점검해 보고 싶었다. 동내 내과에서는 심전도와 심장 초음파 검사를 하자고 했고, 검사한 결과 내 심장이 위험한 상태로 나왔다. 의사 선생은 서둘러 가까운 에스(S)대학 병원 심장내과에 그 날 오후로 외래 진료를 잡아 주었다. 정밀 검사 결과도 마찬가지여서 “빨리 입원해서 수술해야 한다”고 했다.
난 그 때 일생일대의 기로에 섰다. 평소에 사소한 일도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 하는 내게 수술 여부 결정은 너무도 큰 과제였다. 피를 못 보는 내게 수술에 대한 두려움은 당연하였다. 입원 첫 날 피와 관련해 돌발 사태가 있었다. 간호사가 내 팔에서 채혈을 할 때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끝까지 지켜보았다. 그런데, 간호사가 주사 바늘을 빼자 갑자기 비위가 상하기 시작하더니 두통, 구토와 울렁거림으로 몇 시간 동안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그 날 밤 흉부 시티 (CT) 촬영을 하러 휠체어에 태워져 본관 촬영실로 실려 갔다. 옷을 바꿔 입는 과정에서 낮에 채혈했던 자리에 붙어 있던 일회용 반창고가 떨어져 피 자국을 보게 되었고 낮의 악몽이 되살아나 몇 시간 동안 또 한 차례 곤혹을 치렀다. 그런데, 수술에 대한 두려움 보다 더 큰 문제는 가을 학기에 맡기로 했던 학부 강의 두 과목이었다. 학과와 학생들에게 미안했지만, 고민 끝에 결국 수업을 포기하고 수술을 하기로 했다. “중간고사 기간에 수술 하면 안 될까요? 겨울 방학 때 하면 안 될까요?”하고 의사 선생에게 물었었다. 거의 3주를 병원에서 보냈고 퇴원 후에 반 년 동안 휴양을 해야 했던 것을 생각하면 작년 9월에 수술을 받았던 것이 정말 잘 했다 싶다. 하지만 내가 수술을 하기로 결정한 것은 용감해서가 아니라 살기 위해서였다.
살기 위해서 생전 처음으로 입원을 했다. 새로운 환경에서 살면서 그동안 보지 못 했던 내 모습을 알게 되었고 당연시했던 많은 일들이 기적이었음을 깨달았다. 정신적 가치를 추구하느라 무관심했던 내 영혼의 그릇, 내 몸을 새롭게 보게 되었다. 몸의 통증이 심해 기도조차 할 수 없던 나, 마음대로 몸을 움직일 수 없어 짜증을 부리던 나도 신앙심이 깊고 참을성 많은 사람이라는 평소 이미지 뒤에 숨어 있던 내 모습이었다. 이렇게 내가 바닥을 치고 있을 때 창조주께서는 천사들을 보내주셨다. 밤낮으로 내 몸을 돌봐 준 수많은 의료진들, 나를 찾아 준 은사 님, 남동생 부부, 제부, 선배와 친구들과 병원에서 내 곁을 지켜 준 어머니와 여동생, 기도로 후원해 준 많은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창조주의 사랑을 느낄 수 있게 해 주었다. 나를 살리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움직였는지 돌이켜 보니 경이로울 뿐이다. ‘이렇게 큰 은혜를 입고 다시 살아났으니 이를 어떻게 갚아야 하나?’ 하고 퇴원할 즈음해서 한동안 고민했다.
죽음의 문턱에서 되돌아 온 내가 지난 일 년 동안 후회 없이 살았는지 스스로에게 물어 본다. 정채봉 시인은
“아팠다가 병이 나은 날의, / 상쾌한 공기 속의 감사한 마음으로 몸을 돌본다면” // ...(중략) // 이 사람은 그 때가 언제이든지 / 늘 새 마음이기 때문에 // 바다로 향하는 냇물처럼 / 날마다 새로우며 깊어지며 넓어진다”
고 노래했다. 봄 학기를 돌아보니, 처음의 다짐과 달리 학기가 진행되면서 몸에 밴 완벽주의가 발동하는 바람에 새 마음을 유지하지 못 했고 “감사한 마음으로 몸을 돌”보지 못 했다. 다가오는 가을 학기에는 욕심을 버리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순리대로 살기로 다짐한다. 원래 겨울에 태어났지만 가을을 좋아하는 지천명의 내게 창조주께서 또 한 번의 생을 주셨다. 심정지가 되었던 그 여섯 시간의 수술 이후 지금 이 순간까지 창조주께서 나를 살리시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내가 지어진 목적을 재확인하고 그에 따라 나만의 고유한 삶을 용기 있게 살면서 나와 내 주변 사람들을 분별 있게 사랑하며 살고자 한다. 이것이 바로 덤으로 받은 생명에 대해 은혜를 갚는 길일 것이다. 그리하여 천상병 시인처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고 싶다. 이제 곧 맞을 두 번째 생일을 어떻게 축하할까 행복한 상상을 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