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비싼 한 끼
신문주
몽실이 일박이일 집을 비웠다. 빈자리가 너무 컸다. 생후 이 개월부터 팔 년 동안 함께 하신 어머니는 무척 허전해 하셨다. 나도 안절부절못했다.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방탄소년단의 팬클럽처럼 열렬히 환영해서 성가실 때도 있었다. 하지만 이 세상에서 이처럼 나를 반겨주는 이가 또 있을까. 늘 옆에 있어서 그가 얼마나 소중한 가족인지 몰랐다.
모든 게 내 실수 때문이었다. 한 달간 입원하셨다 집에 막 돌아오신 어머니를 돌봐 드리다 보니 몽실을 챙기지 못했다. 미안한 마음에 간식을 자주 주게 되었는데 그날 저녁에는 별생각 없이 삼각형의 딱딱한 육포를 그대로 주었다. 몽실은 그 큰 조각을 한 번에 삼키려고 안간힘을 썼다. 그래도 잘 넘어가지 않고 흰 거품이 입에서 줄줄 흘러나왔다. 그때 내가 조금만 재발랐어도 그 조각을 빼냈을 텐데 때를 놓쳐 어쩔 수 없이 삼키도록 도왔다. 그의 작은 몸을 쭉 펴서 땅에서 들었다 놓았다 하고 목과 가슴을 쓸어내리기도 하고 마사지도 해 주었다. 그런데 조각이 식도로 내려가고도 계속 거품을 토했다. 그리고 평소에 하지 않던 행동을 했다. 평상시 그는 동그랗고 초롱초롱한 눈으로 어머니와 내 눈을 맞추고 달려와 안기곤 했다. 땅에 등을 대고 누워 네 발을 공중에 들고 몸을 흔들기도 하고 내게 매달리기도 했다. 그런데 이제는 딴판으로 변했다. 눈을 맞추지도 않고 잘 가지 않던 먼 구석에서 등을 돌린 채 땅에 납작 엎드려 있었다. 만사가 귀찮은 듯 좋아하던 간식도 싫다 하고 물 한 모금도 마시지 않았다.
다음 날 아침 일찍 동물병원에 전화 했는데 토요일이라 오전 열한 시에야 자리가 났다. 몽실의 엑스레이와 복부 초음파 사진을 찍어 보니 이물질이 배 쪽 식도를 막고 있어 내시경으로 이물질을 위장으로 밀어내야 했다. 수의사는 “이물질이 목에 걸려 넘어가지 않았으면 잘못될 수도 있었는데 다행이에요. 몽실이 참 비싼 한 끼를 먹었네요.”했다. 그리하여 몽실은 생전 처음으로 수액을 맞고 전신마취를 한 후 시술하게 되었다. 오후 다섯 시쯤 시술이 끝나면 연락할 테니 집에서 기다리라 했다. 그런데 시술이 잘못되면 큰 병원에 가야 한다 해서 아무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차가운 침대에 누워 작은 앞발에 주사 바늘을 꽂고 있을 몽실을 떠올리니 미안하고 애처로웠다.
드디어 다섯 시가 되었는데 전화가 없었다. 불길한 예감에 어머니는 “이제까지 우리 곁에 있어 준 데 감사해야지.” 하셨다. 기다리다 못해 전화 했더니 직원은 시술이 잘 되었고 지금 수액을 맞고 있으니 여섯 시 반에 데리러 오라고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하지만 어머니와 난 몽실이 죽었다 살아온 것처럼 반가웠다. 우리는 삼십 분 일찍 병원에 도착했다. 아직 회복 중이라고 해서 병원 주변을 돌다가 시간에 맞춰 들어갔다. 로비에 나온 몽실은 바닥에서 비틀거리며 잘 걷지 못했다. 수의사는 사람이 술 취한 것처럼 마취가 덜 깨서 그렇다고 했다. 또 이물질 가장자리에 식도를 다쳐 사료를 먹을 수 없고 혹시 이변이 날 수도 있으니 병원에서 밤새 살펴보자고 했다. 다행히 몽실은 하룻밤을 보낸 후 그다음 날 무사히 집으로 왔다.
이번 사건을 겪은 후 여러 가지 유익한 점이 있다. 우선, 강아지는 식도가 목에서 배까지 있고 사람처럼 내시경, 전신마취, 시술 및 수술과 입원을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한, 간식을 줄 때 몽실에게 이로운지 먼저 살펴보게 되었다. 탈 없이 먹을 수 있는 것을 고르고, 큰 것은 작게 잘라 준다. 이전엔 시도 때도 없이 줘서 그의 체중이 늘었는데 지금은 꼭 필요한 때만 적당량을 주고 다 먹을 때까지 지켜본다. 시술 이후 사나흘 동안 몽실이 제대로 먹지 못해서 습식 사료를 주면서 약을 먹여야 했다. 그의 입안을 처음으로 보게 되었는데 내가 얼마나 무관심했었는지 깨달았다. 빠진 이도 많고 충치도 있는데 이제껏 양치를 해 준 적이 없었다. 그동안 그를 언제나 예쁜 인형일 줄 알고 치통을 느끼는 생명체로 여기지 않았다. 어릴 때 습관을 들이지 못해 양치를 시키려고 하자 으르렁거리며 내 손을 물려고 했다. 그래서 치석 제거용 껌부터 주기 시작했다. 늦게나마 시작할 수 있어 다행이라 생각하고 그와 인내심의 줄다리기를 계속하려 한다.
이제 몽실은 세월 따라 점점 약해지고 아픈 곳도 많아질 것이다. 20세기 미국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Robert Frost)는 2행으로 된 시 “수명”("The Span of Life")에서 “그 나이든 개는 일어서지 않고 뒤를 보며 짖는다. / 난 그가 강아지였을 때를 기억할 수 있다.”(The old dog barks backward without getting up. / I can remember when he was a pup.)라고 읊었다. 이 시의 화자는 강아지가 노령견으로 바뀌어 가는 모습에서 자신의 인생을 보았을 것이다. 몽실과 함께 어머니와 나도 같은 여정을 걷고 있다. 우리 가족이 천상병 시인의 시 “귀천”(歸天)에서처럼 지상에서 아름다운 소풍을 하고 하늘로 돌아갈 수 있도록 내가 할 수 있는 힘껏 도우려 한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말이 떠오른다. 하느님, 제게 필요한 힘과 지혜를 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