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개 없는 천사
신문주
아무리 찾아도 없었다. 얼마 전 모처럼 바퀴 달린 시장 가방을 끌고 장보러 갔다. 혹시 어머니와 통화할지 몰라 가방 뒷주머니에 휴대전화를 넣고 거리를 힘차게 행진했다. 그런데 집에 와 보니 휴대전화가 없었다. 하도 오랜만에 가방을 꺼내 쓰다 보니 부직포로 된 주머니가 헤어져 큰 구멍이 나 있던 것을 미처 몰랐다. 부랴부랴 걸었던 거리를 되돌아가며 혹시 바닥에 떨어져 있나 살피고, 물건을 샀던 가게까지 가서 물어봐도 없었다. 급히 인터넷을 뒤져 휴대전화 분실 시 대처 방안을 찾았다. 분실 신고를 하기 전에 동네 통신사 직영대리점에 가서 통화내역을 조회하라고 되어 있었다. 갔더니 직원은 통신사 본점 고객센터로 찾아가라고 했다. 그런데 마침 그때가 토요일 오후여서 이미 문을 닫은 때였다. 결국 통신사로 전화 걸어 분실 정지 신청을 하였다.
사실 이런 소란이 처음이 아니었다. 지금 쓰는 스마트폰은 두 번째인데, 첫 번째는 아무 탈없이 고장날 때까지 내 곁에 있었다. 그런데 이번 전화기는 벌써 두 번째 분실 신고를 하게 되었다. 첫 번째 사건은 올 해 6월 학교 도서관에서 일어났다. 집에 와서 전화기를 찾으니 흔적도 없었다. 생전 처음으로 전화기를 분실한 것이었다. 마치 세상이 끝난 것처럼 허전했고 정신이 나갈 정도로 무척 당황했다. 어디서 잃어버렸는지 기억이 나지 않아 학교 도서관으로 돌아가서 화장실에다 공고문을 붙였다. 화장실에다 전화기를 놓고 나왔는데 혹시 찾으면 사례할 테니 연락 달라고 쓰고 여동생 연락처를 남겼다. 그런데 몇 시간 안 되어 여동생에게서 전화가 왔다. 어떤 여학생이 내 전화기가 도서관 서가 책들 위에 놓여 있으니 와서 가져가라고 하더란다. 너무 반가워서 단숨에 달려갔다. 과연 내가 대출했던 책들이 꽂혀 있던 자리 근처 책들 위에 전화기가 얌전하게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화장실에 붙여 놓았던 공고문을 떼고 나오면서 몇 시간 동안 겪었던 대 혼란을 상기했고 전화기를 찾아 준 학생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가득 찼다. 늘 곁에 있어 언제나 함께 있을 줄 알았고, 내 삶에 그토록 중요한 존재인 줄 몰랐는데, 다시 찾은 전화기가 어찌나 소중하게 느껴졌는지 모른다. 고마움의 표시로 사례를 하려 하자 그 학생은 “저는 졸업생입니다. 사례를 받으려고 연락드린 게 아니었습니다. 고맙지만 마음만 받겠습니다. 전화기를 잘 사용하시길 바랍니다.”라는 내용의 문자메시지를 보내왔다. 그래도 성의 표시로 에세이집 한 권과 감사 카드를 도서관 대출대에 맡겨 두고 그 학생더러 찾아가라고 하였다. 그런데 이제 또 전화기를 잃어버렸으니 그 학생에게 면목이 없었다.
이번에는 이제나저제나 기다려도 소식이 없었다. 인터넷으로 전화기의 위치를 추적해 보았더니 같은 동네 옆 골목의 빌라 건물 주소가 떴다. 용기를 내서 어머니와 함께 그곳으로 갔다. 1층은 외출 중인 듯 잠겨 있었고, 2층은 아주머니 한 분이 문을 여시더니 사정을 듣고 나서 전화기를 본 적이 없다고 하셨다. 3층 문을 두드렸더니 한 장년 남성이 나와서 귀찮은 듯이 신경질 섞인 말투로 본 적이 없다고 했다. 이 세 사람 가운데 누가 진실을 말하는 걸까 하는 의문이 들면서 그때 처음으로 내가 셜록 홈즈 였으면 하고 바랐다. 실망하며 집에 돌아와서 통신사 고객센터에 다시 전화를 걸었다. 위치추적에 나온 주소를 찾아갔는데, 세 집이 모두 못 봤다고 하는데 어찌 된 일이냐고 물었다. 직원은 위치 추적 결과 나온 주소는 대략 그 주변이라는 뜻이라고 했다. ‘그럼 전화기는 도대체 어디 있단 말인가? 혹시 범죄 조직에 속한 사람들 손에 넘어가지 않았을까?’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어 도통 마음이 안정되지 않았다. 몇몇 지인들에게 사정을 말했더니, 다들 하는 말이 요즘은 휴대전화를 습득하면 돌려주지 않는다고 했다. 이제껏 세 번이나 휴대전화를 주워 주인에게 돌려줬는데 정작 내 것은 돌려주는 사람이 없구나 하고 불평하는 마음까지 들었다. 휴대전화기 없이 하룻밤을 지냈고 일요일을 맞았다. 이제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오직 주은 사람의 마음에 달려 있다고 마음을 비우고 미사 참례하러 갔다. 미사 중에 하느님의 뜻이라면 전화기를 찾을 수 있게 도와 달라고 기도를 드렸다.
그런데 집을 비운 새 기적이 일어났다. 미사에서 돌아 와 현관문을 열자마자 어머니께서 “네 핸드폰 찾았다.”하시는 게 아닌가. 내 귀를 의심했다. “어디요?” 했더니, “충전 중이다.”하셨는데, 정말 내 전화기였다. 어머니께서 자초지종을 말씀해 주셨다. 내가 집을 나서고 얼마 안 돼 동네 사람이라면서 전화가 걸려 왔다. “휴대 전화기를 잃어버리셨지요?”하며 우리 집 위치를 묻더니 젊은 부부가 현관까지 와서 전화기를 건네주고 갔다. 사례를 하겠다는 어머니께 “동네 골목에 떨어진 것을 주워 드리는 것뿐인데요, 사례는 무슨 사례 입니까?” 하며 총총히 가버렸다. 어머니는 급한 마음에 현관문도 잠그지 않고 집이라도 알아놓을 양으로 그 부부를 따라나섰다. 그런데 한 빌라 건물 앞에서 그들을 놓쳐 버리셨다. 외모가 어떤 분들이냐고 물었더니, “구레나룻을 기른 사람이 아담한 모습의 아내와 왔었다”고 하셨다. 어머니와 나는 포도 몇 송이와 사례금을 급히 챙긴 후 그분들을 찾아 나섰다. 어머니의 기억을 쫓아 골목길을 들어 가 그 부부가 사라졌다는 공터를 지나 제법 큰 빌라 건물 앞에 섰다. 이제 어떻게 찾아야 하나? 건물의 공동 입구에 있는 유리문을 열려면 번호를 알아야 했고, 12가구나 있는데, 그 부부가 몇 호에 사는지 알 수가 없었다. 일요일이라 기다려 봐도 건물을 오가는 주민도 없었다. 아무 번호나 눌러서 “이런 부부를 아느냐”고 물어 볼까 하다가 민폐만 끼칠까 봐 그 건물을 떠나 왔다. 오다가 다시 갔다가 결국 돌아 나왔다. 언제라도 동네에서 마주치면 감사 표시를 해야겠다 싶었다. 돌아오는 길에 골목에 놓인 의자에 앉아 계시는 동네 할머니 두 분께 “건강하세요.”하며 포도를 나눠드렸다.
이번 기회로 얻은 게 많다. 늘 가까이 있는 물건과 사람들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깨닫게 되었다. 언제 내 곁을 떠날지 모르기 때문에 같이 있을 때 최선을 다해야겠다. 또 휴대 전화기를 분실한 사람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하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휴대 전화기 덕분에 천사들을 만났다. 도시의 사막 한 가운데에 오아시스가 있음을 알게 되었고, 온갖 불협화음이 끊이지 않는 이 세상에 아직도 믿을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희망을 보았다. 사실 휴대전화기 분실에 따르는 불편함과 경제적 손실보다도 남의 전화기를 돌려주지 않는 사람이 있다는 가능성에 더 실망이 컸다. 그런데 내가 만난 천사들은 사람에 대한 믿음을 되살려 주었다. 천사들이여, 고마워요. 하느님께서 복을 내려 주시길 빌어드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