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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시안(西安)에서 의 먹자 골목 추억    
글쓴이 : 문구현    18-01-14 09:53    조회 : 5,380

내가 탄 중국 정주에서 출발한 시안행 고속열차는 마치 " 은하철도999 "를 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시속 340키로가 넘는 속도감이 그랬고, 삼국지의 영웅들이 질풍같이 내달리는 중원을 가로 지르는 것이 그랬다. 

시안은 산서성의 성도 이며, 옛 이름은 장안 이라고 하였고, 당나라 시대는 지금의 뉴욕 보다 도 더 번창 하였던 세계 최대의 국제 도시 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진시황제의 용마병갱과 양귀비의 화청지는 중국 내 에서도 가장 인기 있는 관광지 이며, 오늘의 주인공 회족 은 중국의 소수 민족 중의 하나로, 한족화 된 무슬림 이며, 가장 성공한 소수민족으로 알려져 있다.

 

2일간 시안 에서 의 일정을 마치고 귀국하기 전날 자투리 시간 오후에 회족(이슬람거리)의 거리를 둘러보기로 했다. 회족의 거리로 들어가기 전에 가이드로부터 몇 가지 주의 사항을 들었으니 

앵벌이한테 절대 적선을 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가방을 앞으로 메고 다니며, 핸드폰은 깊숙이 간직해라 이었다. 이곳이 황야의 무법자들만 사는 곳 인가? 아니면 이슬람 테러들의 근거지라도 된다는 말인가? 하여튼 바짝 긴장하고 신발 끈을 졸라맸다.

 

먼저 들린 곳은 유명 하다는 만두 집 이었다, 밤 톨 만한 만두부터 손바닥 크기 만 한 만두 까지 160여 가지의 만두를 맛 볼 수 있다고 한다. 크고 작은 홀(hall)이 촘촘히 있는데 유니폼을 입은 종업원들이 호텔 근무자 수준 못지않으니 정말 유명 만두 집 인가 보다

종업원 이야기로는 서태후 가 즐겨 먹었던 만두 라고 한다. 이곳에 선 " 조조가 즐겨 먹었던 술 " , “양귀비가 좋아 했던 석류 " 이런 식 이었다. 비단 장수 왕 서방의 단면을 보는 것 같았다.

 

만두로 배를 채웠겠다. 지금부터 회족 거리로 나섰다. 

거리는 서울의 명동 은 저리 가라 할 만큼 사람이 많았다. 쪽 수 가지고 승부 본다는 중국 이지만 정말 사람이 많은 것을 실감했다. 차 없는 거리에 보도블록이 달고 달아 맨질 맨질 하였으며, 드문드문 있는 가로수는 손질 하지 않아 하늘을 찌를 듯이 솟아 있고, 가지가 마음대로 뻗어 건너편으로 건너갔으며, 전주 하나에 수천 가닥의 전선이 걸려 있어 거미줄처럼 하늘을 가리고 있었다. 

길의 양옆 점포는 인천 차이나타운과 비슷한 분위기 이었으나 양고기 꼬치를 주로 팔고 있어 가계마다 독특한 자신만의 화덕은 꼭 있었다. 화덕도 각양각색 이어서 스테인리스로 만든 깔끔한 것부터 무쇠로 만든 투박한 것, 흙으로 만든 오랜 세월이 느껴지는 화덕, 떴다 방 에서 쓰일 것 같은 이동식 화덕, 깨져서 갈라진 것을 쇠줄로 얽어 맨 화덕 등 평생을 화덕과 함께 사는 회족임을 느끼게 했다. 

거리의 사람들은 거의 한족 이었으며, 장사 하는 상인들은 회족(무슬림) 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가이드의 말처럼 가방을 앞으로 메고 다녔지만 거리에서 소매치기나 들치기로 거리가 소동이 일어나는 것을 보진 못 했으며, 황야의 무법자 천국으로 생각했던 것은 오해 이었던 것 같았다. 그래도 긴장의 끈을 늦추지 않고 투어 를 계속 했다. 

거리의 주인인 회족의 복장은 남자는 흰색의 빵 모자 같기도 하고 수술실 의사의 캡 같기도 한 아무 장식도 없는 모자를 쓰고 있었으며, 여자는 히잡을 착용 하고 있었는데 꽃을 수놓은 것부터 ,물결 무늬의 엷은 하늘색 나염 의 머플러로 머리와 목을 감싼 멋쟁이도 있었다. 


양고기를 먹는 회족은 무엇이던지 뾰쪽하게 만들어 고기를 꿰어 고치를 만들어 화덕에 굽는다, 철사, 가는대가치 젓가락 굵기의 나무, 손가락 굵기의 뒤틀린 나무, 작대기 같은 굵은 나무라도 뾰쪽하게 깎으면 꼬치가 된다. 거리는 고기 굽는 연기로 자욱했으며, 고기 굽는 냄새가 거리를 메웠다. 

마늘 즙을 발라 구은 밀가루 빵에 양 꼬치를 쌓아 먹는 것이 일반적인 이들의 식습관 이며, 여기에 석류 주스와 말린 포도, 말린 망고, 말린 바나나등 말린 과일을 곁들여 먹는다.

가계 주인 인 듯 한 노인과 대물림 하는 듯한 젊은이들이 어울려 장사를 하고 있었으며, 가이드의 말처럼 쉽사리 친해지기 어려운 사람들이 아닌 무척 이나 상냥하고 인사성이 밝은 사람들 이었다.

 “이라 불리는 빵과 양 꼬치를 30위안만 내면 배가 터지도록 포식을 하며, 10위안 주고 말린 과일을 사면 가지고 다니기가 어려울 정도로 많이 준다.

 

길 가운데 좌판을 놓고 파는 꼬치 집에서 양 꼬치와 백주를 먹었다. 한국에서 먹던 고량주와는 달리 백주의 맛은 담백했으며 :" 딩호와" 하며 엄지척 하니 웃으며 한잔 더 준다. 

이때 90은 되어 보이는 노파가 살금살금 다가오더니 손을 내밀며 한 푼 줍쇼. 했다. 노인의 행색을 보아 그냥 지나칠 수 없어 동전 하나를 주었다. 그랬더니 어디서 나타났는지 노인, 아이들이 뒤섞인 한 떼가 몰려 왔으니 말로만 듣던 앵벌이 와 만난 것 이다. 앵앵거리는 그들은 공포 그 자체 이었으며 빨리 그 자리를 떠나는 수 밖에 없었다.

 

양고기를 팔며 꼬치를 굽거나, 양고기만 전문으로 파는 점포가 있었으며, 이들은 도체를 점포앞 길거리 에서 매달아 놓고 발골 한다. 그들의 발골 실력은 정말 대단 하여 해부학 교실의 학생이 메스로 뼈와 살을 분리 하는 것처럼 정교 했다. 부분 육을 파는 점포 에서는 염통, , 허파, 쓸개, 내장, 등이 김이 서리어 있고, 머리, , , , 혓바닥등이 엽기적인 분위기 였다. 

길거리에서 면발을 뽑는 묘기를 보여주는 젊은이는 흡사 소림사의 주방장 같았다. 

서양인과 동양인의 중간 모습인 회족들은 모스크 에서 기도하는 중국 안의 무슬림 이다.밤이 깊어지며 회족의 거리는 더 휘황찬란해 진다. 점멸 하는 장식전구 아래의 젊은 회족 여성은 오뚝한 콧날에 뚜렷한 이목구비가 재기 발랄하고 예뻤다.

 

나는 이 회족 거리 에서 우리가 과거에 가지고 있었던 큰 에너지를 느꼈고, 생명의 꿈틀거림을 느꼈다. 우리 한국의 큰 힘은 역동성 이었다. 이로 인해 무역대국이 되어 유엔의 회원국 수 보다 많은 120개 국가와 교역을 하며 국부를 쌓아 왔다. 이미 쇠잔한 우리의 열망을 이들에게서 보았는데, 우리가 이들보다 조금 잘 산다고 하여 이들을 하시 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언제부터 인가 오렌지 족이 되어 비트코인으로 일확천금 벌수 있다고 허황된 꿈을 키워 왔다. 선진국 문턱을 겨우 넘었다가 다시 추락 하는 일본이나 이탈리아를 보지 못 하는 것 인가? 잠시 상념에 잠겨 보았다. 그리고 가이드의 말만 듣고 경계 했던 회족들 에게 미안해했다. 

 어차피 먹거리 장터인걸. 덜 깨끗하면 어떻고, 덜 위생적이면 어떻겠는가? 화덕에 구우면 모든 것이 깨끗해 지겠지 하고 맘껏 먹어 주었다.

 

다시 기회가 되면 시간을 쪼개서 잠간 들려오는 회족거리의 투어가 아닌, 풀코스로 시간을 보네고 싶다.

 


노정애   18-01-19 19:12
    
문구현님
반갑습니다.
먼저 저희 한국산문에 글을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글을 아주 잘 쓰시는군요.
글 쓰는 공부를 하신분 같았습니다.
생동감 있는 여행글이 참 좋았습니다.
다음 글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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