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5시~ 알람소리와 함께 용수철처럼 일어나 준비를 하고 나섰다.
나에겐 "원" 이란 친구가 있는데 그와 새벽 자전거 타기 운동에 동행 하기 위해서 이다. 이직도 초승달이 산마루에 걸려 있고 새벽 공기가 싸 하다.
원이의 가정은 무척이나 단란했었으나 일순 환란에 휩쓸려 마음고생이 심했고, 이를 이기기 위해 홀로 새벽 운동울 해 왔으며, 내가 해 줄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기에 자전거타기 새벽운동이나 동행해 주기로 한것 이다.
" 다 큰 처자가 길에서 무얼 먹고 다니누~"
5일장에서 만남 원이의 딸은 헐렁한 티샤츠에 반바지 그리고 슬리퍼를 신고 있었던것 같았었다. 핫바를 먹다 무안 했던지 고개를 돌렸는데, 이게 결혼 며칠 전 일 이었다. 결혼 후 형제를 낳았으며, 어린형제를 두고 세상을 떠났다. 혈액암 이란다.
출발 지점은 삽교천 광장 자전거터미널 이었다.
정말 오랜만에 타는 자전거 인데 잊어버리지 않고 몸이 바로 서며, 바퀴가 구르는 것이 신기 했다. 우리몸 어디에 이런 기능이 숨겨저 있는지 또 한번 조물주의 솜씨에 감탄 하며 페달을 밟았다. 하지만 금방네 숨이 차오른다.
자전거 길의 오른쪽은 소들강문 넓디넓은 논 이며, 왼쪽은 삽교호 이다.
삽교호 수변의 갈대숲은 길고도 넓어 생태계의 보고이다. 자전거로 내 달리다 보면 물새가 놀라 푸드덕 날고, 고라니가 가로 질어 내 닷는다.
청둥오리와 왜가리가 잠에서 깨어났는지 꽉꽉 거리면 다른 녀석들도 덩달아 설레발 친다.
원이는 딸을 잃고 나서 밖에 내왕도 않고 말수도 없어졌다. 큰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 하는것 같았으며, 아주 딴 사람이 되어버렸다. .쾌활하며 낙천적 이던 성격이 아주 변해 버린 것 이다. 인연의 끈을 놓지 못하고 몸부림치는 원이의 모습이 너무 안타까웠다.
그런데 그에 닥친 화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원이의 며느리는 정말 사근사근 했다. 탤런트 한효주와 같은 분위기를 주는 원이의 며느리는 서울에서 쇼핑몰 사장 이었다고 한다.
원이는 며느리와 입술과 잇몸처럼 척척 맞았으며 부녀같이 격의가 없었다. 재앙은 원이의 아들 앞으로 다가 왔다.
첨벙 첨벙 하는 물속에서 부스스 기지게를 펴며 낚시꾼이 나온다. 조그만 배에 탄 낚시꾼도 있고, 낚대를 만들어 놓고 그 위에서 밤샘 하는 이 들도 있었다. 새벽 댓바람에 담배를 빠끔 빠끔 피워대며, 커피를 끓인다. 낚시꾼들의 특징은 하나같이 말이 없었다. 낚싯대를 여나문개 박아놓고 형광 찌를 응시 하고 있는 그들은 묵언수행중인 구도자처럼 보였다.
쉴새. 없이 페달을 밟다보니 반환접인 소들공원에 가까이 왔다.
소들공원 옆에는 마을을 향해 깊숙이 뻣은 물길이 있다. 이시간이면 마을 쪽에서 나오는 부부가 탄 작은 모터보트가 물길을 따라 굉음을 내며 쏜살같이 삽교호로 곤두박질 친다. 그물에 걸린 물고기를 건지려고 나가는가 보다. 조그만 모터보트의 물 가름이 파도를 이루면 여명에 비친 붉은빛과 은빛 파도가 고기 비늘처럼 팔딱인다.
원이 아들은 간암 이며, 이식을 해야 한다고 했다. 이식수술은 잘 되서 서서히 정상을 찿아 간다니 정말 다행 이었다.
시련이 크면 그만큼 단련이 되는가 보다. 원이는 똠방 대지만 유모러스하고 분위기 메이커 였으며 재치도 있었다. 그런데 용광로 속을 나온 쇠처럼 과묵하고 산 처럼 무거웠으며 진중 했다. 지금도 자신과 싸우고 있으며 득도 하려는 수행자처럼 더욱더 의지가 굳어 보인다.
처음엔 원이를 위로하고 격려 해 주고 싶어서 동행을 자청 했지만 지나다 보니 원이는 지금은 내게 위로를 주고, 기대고 싶를때 버팀목이 되어주고, 피곤할 때 쉼터인 정자가 되어주었다. 나는 사람이 강해지는 과정을 옆에서 보았고
인간이 나약한 존재가 아닌 때에 따라서는 상상을 초월하는 강단을 갖을수도 있다는 것을 옆에서 보았다. 지금도 힘들고 견디기 어려운 일이 닥치면 원이를생각 한다.
우리는 반환점 에서 일출을 맞이한다 동해의 촟대바위에서 바라본 태양과 삽교호 에서 바라본 일출이 같은 태양인데도 느낌은 영 달라보여, 초가삼간 앞마당에 피어있는 봉숭아처럼 한 없이 정겨웠다.
태양을 바라보는 원이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하고 생각하며 그의 얼굴을 다시 한번 엿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