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속에 비치는 시선(視線)/송명복(요셉)
어둠이 묻어있는 창가에서 불빛 따라 반짝이는 눈빛을 마음으로 읽고 있다. 언뜻 생각에, 저 창밖의 숨죽인 고요 속에서 마음을 당기는 것은 불빛 신호이다. 더욱이
사계의 변화 중 늦가을의 흐름이 세한(歲寒) 속의 세상으로
달려가고 있음을 알려주고 있다. 따라서 인생이 흘러가는 여정에서 또 하나의 간이역을 지나게 되니 그만큼
초조해진 마음이 여유란 공간을 좁히고 있다.
시선(視線) 그것은 분명히 주목하는 물체와 눈을
잇는 선을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얼마 전, 신문에서 읽었던
결혼 정보회사의 발표 내용이 유난히 기억을 새롭게 한다. 아무튼, 이
땅의 결혼 적령기에 있는 청년들에게 상대방 이성의 어느 곳을 제일 먼저 바라보느냐는 질문을 줬다. 그런데, 되돌아온 답변은 한결같이 상대방의 호수같이 맑은 눈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이
내용에 의하면 실제로 이들의 시선(視線)은 상대방의 가슴을
향했고, 마음속의 음흉한 심보가 거짓이라는 오염된 그림으로 새겨지고 만 것이다.
이러한 이유에서 인지, 우리들의 시선(視線)은 마음이 바라보고자 하는 세상을 향해서 꽂히고 있다. 더욱이 그곳에
흐르는 정서를 진실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마음속에 멋진 그림으로 옮길 때, 펼쳐지는 멋진 장면을 상상해
보시라고 전하고 싶다. 이 세상에는 아름다운 이야기가 속삭이는 모습으로 가득 차서 시선(視線)을 끌어당기지 않겠는가 말이다.
어느 한 국가가 발전된 정도를 기준으로 분류할 때, 선진국,
중진국, 후진국이라고 분류하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또한, 어느 한 개인이 피아노를 치면서 숙련되는 과정에서 피아니스트, 음악가, 예술가의 단계를 거치게 된다고도 한다. 한편, 이러한 과정 중에는 한가지 문제가 대두되는데 그것은 바로
다음과 같은 점이다. 즉 선진국과 예술가의 단계에서는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세상 속의 창의적인 장면을
열어가지만, 후발 주자들은 이들이 겪어온 실패와 좌절조차도 반복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가 되고 있다.
결국, 마음속에 아름다운 세상으로 채우는 맑은 시선(視線)을 통해서 바라보고 창의적인 세계를 펼치는 과정을 담아가는 일은 이 시대 우리의 숙명인 것이다. 우리 자신과 우리 후대들이 초조하지 않고 여유로운 인생의 간이역(簡易驛)을 지나가는 장면을 마음속에 그려가며 시선(視線) 앞으로 당기고 싶은 순간이 지금인 듯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