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프리카 일을 하게 되었을 때, 소식을 접한 동료들이 찾아와 걱정해주었다. 어떤 동료는 무서운 질병과 테러, 그리고 알 수 없는 미지의 것들이 가득한 아프리카를 가는 이유가 무어냐며 묻기도 했다. 나는 동물의 왕국을 생각하고 있었다. 힘은 좀 들겠지만 사자, 기린, 하마, 코뿔소, 악어와 같은 야생동물을 보는 즐거움도 꽤나 있을거라는..
2016년 7월. 서아프리카에 있는 가나의 수도인 아크라에 첫 발을 내디뎠다. 비행기에서 내려 통관을 위해 출입국 사무소 직원에게 방문 목적을 말하는 순간, 나의 치밀하지 못하고 좋게만 생각하는 버릇의 결과가 드러났다. 영어는 다 비슷한 줄 알았으나 영국식 영어에 아프리카 악센트가 섞인 그의 말은 도대체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도 콩글리시가 뒤섞인 한국 본토 영어를 쉽게 이해하지 못했다. 단어를 또박또박 그리고 짧게 느리게 말하고서야 서로간의 의사가 소통되었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 당시에는 이런 상황이 나에게 유리했을지도 몰랐다. 아프리카 여러 나라는 출입국시 검은 돈을 내거나 뺏기는 수가 있기 때문이다. 첫 입국부터 돈을 뜯기면 기분이 무척이나 상했을 일이다. 여하튼 나는 꽤 오랜 기간 짧고 느리게 말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서로 오해가 생기고 일이 잘못되었다.
각자 다른 영어로 인한 소통의 불편은 아프리카에서 일하면서 으레 넘어가야 할 신고식쯤으로 생각했다. 시간이 지나면 어련히 해결될 일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속 편한 생각은 첫 번째 아프리카 동료들의 환영식에서 멈추어야 했다. 과체중 또는 그 이상의 넉넉한 체구에 여유로운 표정을 가진 아프리카 동료들과의 식사. 알아듣기 어려운 영어에 집중하고 있었던 나는 우연히 음식을 날라다 주는 여인의 앙상한 손목을 보았다. 잠깐이지만 아프리카는 체중에서 빈부의 격차가 나타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래전 우리나라에서 잘 살고 배가 불룩 튀어나온 사람을 ‘배사장’이라 불렀을 때와도 같이 말이다.
이는 이웃 나라인 나이지리아에 갔을 때 확인 할 수 있었다. 나이지리아의 수도인 아부자 인근 국제공항에 도착하여 아부자 시내 중심가에 있는 호텔로 이동하는 길에, 천막인지 아니면 집인지 잘 분간이 안 되는 허름한 구조물들이 밀집한 지역을 지나게 되었다. 거기에는 작은 바람에도 드러눕듯 한 방향으로 쏠리고야 마는 갈대와도 같은 사람들이 있었다. 예전 마른 사람에게 농조로 했던 말. ‘갈비씨’ 그들은 모두 갈비씨였다. 검은 피부의 갈비씨들이 떼를 지어 흐늘거리듯 움직이는 모습은 기괴했고 현실적이지 않았다. 이 후 코트디부아르, 부르키나파소로 이어진 첫 출장에서 알게된 아프리카는 '배사장'과 '갈비씨'의 대륙이었다.
동물의 왕국을 보면 아프리카 어디서나 야생동물이 뛰어 다닐 것 같지만, 실제로는 사람 사는 근처에서 야생동물을 찾기는 어렵다. 식량이 부족한 인간이 주변에 돌아다니는 단백질 덩어리를 가만 내버려 둘리가 없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그 사실을 몰라, 속으로 이 정도 시골로 들어왔으면 어디선가 사자나 기린이 하다못해 얼룩말이나 영양이 나타날 텐데 하는 기대가 있었다. 그러나 몇 주간이나 시골을 헤매도 기껏 원숭이의 빨간 엉덩짝이나 보게 되었기에 속이 탄 나는 기어이 나의 소망을 현지 동료에게 이야기 했다. 그는 의아스러운 표정을 지어보이며 야생동물 보호구역이나 동물원에 가보라고 했다. 그때 ‘속았다.’라는 단어가 머리에 떠올랐다. 동물의 왕국은 사기다. 딱 부러지게 ‘이 영상은 야생동물 보호구역에서 찍은 거다.’라는 정보를 주지 않고, 왠지 아프리카 전체에 야생동물이 득실거리는 듯 사람을 착각에 빠뜨린다.
나는 아프리카를 위해 일을 한 3년 동안 한 번도 동물원이나 야생동물 보호구역에 가지 못했다. 부러 그런 것은 아니고 마음이 그럴 여유가 없었다. 그리고 굳이 야생동물을 보지 않아도 동물의 법칙을 충분히 느낄 수 있는 상황을 여러 번 맞딱뜨렸기 때문이기도 했다. 힘들게 풀을 뜯어서 단백질을 비축한 초식동물을 사정없이 잡은 후 한 입에 뜯어내어 배를 채우는 육식동물. 아프리카에서는 인간 세상에서도 적나라한 동물의 법칙을 볼 기회가 적지 않았다. 우리나라나 다른 선진국은 법이니 이념이니 문명이니 하면서 눈에 잘 뜨이지 않게 동물의 법칙을 이어가지만 아프리카는 그야말로 직설적이었다. 나는 그 직설적이고 적나라함에 질려 일이 끝나면 서둘러 공항으로 달려가야 했다. 그나마 아프리카에 적응하여 거부감이 덜할 무렵에는 말라리아에 걸렸다.
아프리카를 궁금해하는 지인들이 야생동물에 관해 물어보는 경우가 간혹 있다. 탄자니아의 세렝게티, 아니면 각 나라에서 지정한 야생동물 보호구역을 가면 텔레비전이나 영화에서 보던 코끼리나 기린, 사자를 볼 수 있을 거라고 말해준다. 그리고 나도 언젠가는 아프리카로 여행을 떠날 생각을 하고 있다. 아프리카의 산, 물, 들판, 사막은 충분히 아름답고 이국적이기 때문이다. 비록 동물의 왕국에서 나오는 주연들은 못 만나보았지만, 능히 짐작은 할 수 있기에 아프리카 여행은 가슴을 설레게 한다. 그러나 그때는 한 명의 관광객으로써 흐늘거리는 아이를 보아도, 기름기 없이 엉클어진 검은 머리의 갈비씨 애 엄마를 보아도, 삐쩍 말라 이리저리 몰려다니는 거리의 사람을 보아도 무덤덤하게 지나칠 것이다. 마음이 오염되었다고나 할까. 아니면 어찌할 도리가 없는 상황에서의 무기력함에 열의가 없어졌다고나 할까.
처음 일을 시작할 때 ‘그 많은 천연자원을 가진 54개의 아프리카 나라 대부분이 60년이 넘게 해외원조로 근근이 살아간다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합니까?’ 라는 말에 흥분을 했다. 허나 아프리카 일이 마무리 될 쯤에는 ‘그래 여기는 앞으로 60년이 더 지나도 해외원조로 근근이 살아갈지도 몰라.’라는 생각을 떨쳐내기 어려웠다. 내가 하는 일이라는 것이 실제로는 그들이 정해 놓은 법칙을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는 사실 깨달았고, 변하지 않는 그들을 보며 나는 그저 한국에 태어난 게 감사할 따름이었다. 나에게는 어림도 없는 일이었지만, 누군가, 대단한 사람이 나타나 직설적이고 단호한 동물의 법칙을 아프리카에서 걷어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