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똑 한 방울씩 떨어지다 종국에는 한 줄로 이어져 쭈르르 흐르는 물줄기를 물끄러미 보았다. 비 오는 날 이런 모습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것들이야 많겠지만 나는 슬레이트 지붕만한 게 없다고 생각한다. 빗방울이 슬레이트 지붕에서 톡톡 떨어지는 소리도 좋다.
우리 집 지붕은 슬레이트였다. 부모님이 처음으로 마련한 집은 방이 두 칸이었는데, 한 칸은 세를 주었다. 결과적으로 보면 단칸방이지만 나는 풍요롭고 여유로웠다. 이부자리를 펴고 네 식구가 모두 누워도 넉넉했다. 빗방울이 슬레이트 지붕은 건드리는 소리가 들리면 나는 작달막한 마당으로 이어지는 방문을 열었다. 슬레이트가 동시에 뱉어낸 여러개의 물 다발들은 황토마당을 지나 대문 밖으로 흘렀다. 나는 이런 모습이 신기했다. 하늘에서 두서 없어 쏟아대는 빗줄기를 어찌그리 가지런히 모으는지. 슬레이트가 부리는 마술이었다.
이렇듯 비가 내리는 날이면 어머니는 수제비를 해주셨다. 된장 푼물에 호박을 숭숭 썰어 넣고는 반죽한 밀가루를 쭉쭉 떼어내서 만든 수제비. 나는 수제비가 싫었다. 그러나 어머니는 질리지도 않는 듯 똑같은 레퍼토리를 읊조리시며 꿋꿋이 수제비를 예찬하셨다. ‘비가 올 때 수제비만한 음식이 없지.’ 그래서 슬레이트 지붕에서 물줄기가 흐를 때면 어김없이 한술 떠야 하는 수제비. 나는 숟가락으로 지 멋대로 생긴 수제비를 굴리곤 했다. 그러면 ‘먹는 거로 장난하는거 아녀.'라는 야단이 어김없이 들렸다. 지금도 수제비는 슬레이트 지붕을 타고 떨어지는 물줄기를 떠오르게 한다.
그러던 어느 해 서울로 이사를 하고는 방 한 칸을 빌려 네 식구가 생활을 하기 시작했다. 한방에 온 식구가 눕기는 마찬가지지만 예전 집보다 비좁았다. 남의 집에 세 들어 사니 마음도 비좁아졌다. 그래서인지 한 동안은 사투리를 쓴다고 놀리는 동네 아이들과 쌈박질로 시간을 보냈다. 나는 슬레이트 지붕을 그리워하는 불량스러운 촌놈이 되었다. 비가와도 지붕은 툭툭이지 않았고, 방문을 열어도 줄줄이 떨어지는 물줄기가 없었다.
서울에서의 삶은 회색빛과도 어울렸고 메케하고도 답답한 매연과도 겪이 맞았다. 나는 경쟁이라는 기괴한 괴물에 내던져진 채로 허둥댔다. 시간이 흘러 술을 알게 될 무렵, 슬레이트는 훌륭한 불판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삼겹살을 올리고 불을 피우면 어느사이에 삼겹살 속 기름이 슬레이트의 계곡으로 모여들었다. 졸졸 흘러내리는 기름은 놀라웠다. ‘작은 덩어리에 이만한 액체가 숨어있다니.’ 바삭해진 삼겹살을 입에 품고는 알싸한 소주를 붓고 다시 슬레이트 불판에서 찌글대는 삼겹살을 노려보았다. 톡톡대는 빗 방울 소리 대신 삼겹살의 구수함이 피어올랐다.
21세기가 되면서 슬레이트 지붕이 암을 발생시킨다는 소식을 접했다. 재료인 석면이 1급 발암물질로 밝혀졌다. 슬레이트 지붕에서 살면 폐암이 걸릴 거라는 무시무시한 신문 기사도 났다. 그 이후 온 나라가 슬레이트 지붕이 마마호환이라도 되듯 때려잡기 시작했다. 거의 20년이 지난 요즘에도 시내 한 귀퉁이, 시골 어느 골목에서 남아 있는 슬레이트 지붕을 없애는 데 힘을 쏟고 있다.
누군가 슬레이트를 발명했을 때는 저렴하고 질 좋은 지붕 재료를 만들어 냈다며 환호를 받았을 것이다. 그리고 1급 발암물질이라는 사실을 발견한 어느 연구원도 인류를 위해서 큰일을 했다며 칭찬을 받았을 것이다. 나는 과학이 탄생시킨 물체를 과학이 외면해 버리는 진정한 과학의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러나 나는 톡톡거리는 빗방울 소리를 듣고 싶고, 지글거리는 삼겹살도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