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acheZone
아이디    
비밀번호 
Home >  기타그룹 >  수필공모
  서정춘추    
글쓴이 : 박영하    24-01-24 14:01    조회 : 2,838


모내기철엔 실뱀장어처럼 여리고 꼬물거리던 어린 미꾸라지가 여름한철 지나서 가을걷이를 하는 10월경 질퍽한 무논에서 물 빼기 작업이 시작될 쯤이면 굵고 실한 놈들이 보드라운 진흙탕 속을 헤집고 들어간다. 논배미로 물이 들고나는 물꼬가 있는 논바닥은 축축하게 물기를 머금고 있는지라 삽으로 파헤치면 우람하고 살진 놈들이 진한 갈색 등을 내보이며 진흙탕 속으로 숨어들기 바쁘다

개중에는 삽날에 허리가 잘려 꿈틀거리는 놈도 생기게 마련이지만 이리저리 숨을 곳을 찾아 미끄러져 들어가거나 버둥거려 끈적거리는 몸뚱이에 지푸라기를 잔뜩 무친 채로 꾸무럭대다가 추어 잡이 꾼의 양동이 속으로 직행하는 신세가 되고 만다. 무논이라고 해서 미꾸라지가 다 있는 건 아니다

개울이나 물목에서 물꼬를 타고 논바닥으로 들어와 여름내 제집인 냥 휘젓고 다니며 여린 잡초나 풀벌레 등 잡다한 벌레들을 잡아먹으며 여름을 나는데 김을 매야하는 농부들에겐 이보다 유익하고 고마운 존재가 없을 것이다

거기다가 추수를 마친 후에는 농부들의 지친 기력을 회복시킬 고단백 영양소를 제공해주니 얼마나 고마운 어종이란 말인가?

농약이나 비료가 귀하던 60년대부터 쌀 수확량 증산정책 일환으로 면사무소 직원들이 각 마을에 진출하여 퇴비용 풀베기를 독려하였고 집집마다 울밖에 사각 퇴비장을 만들어 놓고 풀을 쌓아 놓았는데 면직원들은 퇴비장에 나무 눈금자를 설치해서 가가호호 간 경쟁을 부추겼고 농가에서는 이웃 들 눈을 피해가며 퇴비분량을 속이려고 퇴비 속을 파헤쳐 솔가지를 한두 짐씩 부려 넣었다 다음 날 독려를 나온 면직원이 "00 댁네가 현재 퇴비실적 1"이라고 동리를 한 바퀴 돌며 심리전에 돌입하면 이집 저집에서 부당한 술수를 동원해 하룻밤 새에 순위가 또 바뀌곤 했다.

여름을 나고 가을 쯤이면 뜨거운 햇볕에 발효되어 애써 쌓아 올린 퇴비가 폭삭 주저앉게 마련인데 겨우내 밥 짓는 연료로 사용했거나 군불로 지핀 볏짚이나 나뭇짐깨나 태운 재와 허드레 탑삭 이들과 외양간 거름까지 보태어 쌓아 두었다.


봄철이 되면 뚝새풀이 무성한 논밭으로 거름을 내어다 뿌린다.

농부들은 쟁기를 소에 얽어 깊이갈이를 한 연후에 며칠 밤낮을 이어 물을 대어 거름이 땅 심을 돋우게 해 두고 봄비가 촉촉이 내릴 날을 기다린다.

개구리 알 낳고 물벼룩 장구벌레 뛰어 놀 즈음이면 물꼬를 품은 한편에 볍씨를 넣은 못자리에서는 파릇파릇한 여린 모 들이 수북하게 올라와 있다

이때는 코흘리개 아이까지 동원해 피사리를 해 주어야 하는데 그래야만 자라면서 피사리의 노고를 줄일 수 있고 웃자라서 씨앗을 떨어뜨리는 피 이삭을 잘라내려고 벼이삭 여물어 꺼칠한 논배미를 헤매고 다니는 괴로움을 덜어주기 때문이다.

어른 손바닥만큼 자란 볏모를 무논에 심기 전에 반드시 거쳐야 하는 일이 써레질이다

길이는 1미터 쯤 됨직하고 굵기는 어른 팔뚝만 한 나무토막에 말뚝 10여개를 빗살모양으로 끼운 농기구인 써레에 두 줄을 길게 매어 소가 끌게 하여 높낮이가 다른 논바닥을 고른 후에 물이 수평을 이루게 되면 이때부터 모내기가 시작된다.

못줄을 한줄 씩 띄워가며 모내기를 해나가다 보면 허리는 지끈 거리고 진흙 속에서 한발 한발 빼 박는 다리는 천근만근이다.

농가들은 울력으로 모내기를 하는데 힘은 들었지만 이앙기 가 없던 시절 모내기는 운치가 남달랐다.

논둑에선 모내기를 독려하는 패두 어르신이 북을 어깨에 비스듬히 걸어 매고 북채를 힘차게 둥둥 쳐가며 농요를 부르며 일꾼들의 기운을 북돋우는데 무명으로 지은 저고리와 무릎까지 걷어 부친 홑바지나 잠방이를 입고 북장단을 치며 선소리를 하면 허리를 꺾고 모를 심는 이들은 단순한 후렴구로 화답한다.

손아귀에 쥔 모춤을 저마다 대중 잡은 못줄 공간에 심고 나서 길고 구성진 목소리로 한소리 하며 허리를 펴면 양쪽 두렁에서 못줄 띄우는 이가 짧은소리로 응답하며 못줄을 옮겨 꽂는다. 그렇듯 농악으로 노동의 괴로움을 덜며 논배미 하나 가득 채울 즈음이면 멀리 둑길을 따라서 함지박을 이고 큼직한 막걸리 주전자를 든 아낙들이 남정네들의 허기를 달래주기 위해 논둑길을 따라서 새참을 이고 지고 들로 나온다.

삶아 건져낸 국수와 열무김치나 채소 겉저리와 고추장 장떡안주로 큼직한 막걸리 한 사발 꿀덕 꿀덕 들이켜 마시고 장국에 고명까지 얹어 말아준 국수를 뚝닥 해치우고 나면 그간의 고통이 어지간히 수그러든다. 그릇 챙기는 아낙들을 뒤로하고 노소가 한 공간이나마 두세 패로 나뉘어 돌아앉아서 봉초나 필터 없는 궐련을 나누어 피우노라면 여느 동리나 하나쯤은 있을법한 소리꾼이 포만감으로 불룩한 배를 두드리며 한 곡조 뽑아내면 삼식이 아범은 짝발 짚고 서서 지게목발을 두드리며 소리꾼의 신명을 돋워준다. 뒷정리에 바쁜 아낙들이나 점잖은 노인들까지 걸진 민요가락에 웃음꽃이 만연하니 신윤복의 그림속의 정경 다름 아니다.

여름날에는 논에 사는 우렁이나 미꾸라지와 벌레들을 잡아먹으려고 황새나 두루미가 한가롭게 오가는 것을 볼 수 있는데 멀리 산에서 바라보면 뙤약볕 아래 논배미를 훑고 걸어 다니며 허리를 간간히 꺾는 흰 옷 일색의 예닐곱 농부들의 모습은 널따란 평야를 오가며 벌레를 잡아먹는 백로가 오락가락하는 듯하다

어머니는 이웃집 밭일 품앗이 가시고 아버지는 맥고자를 쓰시고 목에 수건하나 두른 채 목축임도 못하고 논에서 김을 매고 계시다.

또래들과 개울에서 텀벙 거리며 놀다가 제방에 올라가 우리 논 김매시는 아버지를 바라보니 참도 거르고 점심 잡수실 시간이 한참은 지났건만 숙연히 일만하고 계시다.

어머니 속내는 아버지가 일하시다가 원근에 새참 내고 점심 나올 때 시골 인심에 불러서 잡숫게 하지 않겠냐고 생각하시지만 새참 내오고 점심 내온 이웃이 한둘이 아니건만 멀어서 불러도 들리지 않을 곳이요 부르지도 않는데 염치없이 들이 밀 위인이 아니신지라 어린 내 소견에도 아버지 걱정에 제방둑을 안전부절 오르락내리락 한다.

오후 서너 시경 뱃속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도록 놀다보니 아무래도 아버지 걱정으로 이대로 있을 수는 없다는 생각에 친구들을 뒤로하고 홀로 집으로 돌아와 부엌살림을 뒤져보니 가마솥 안에 어린자식들 배곯지 말라고 사발에 퍼 담아 둔 보리밥 그릇이 옹기종기하다.

찬거리를 찾아보니 먹잘 것 없는 시어터진 묵은 짠지뿐이니 이것만으로는 안 되겠다 싶어서 살광(찬장) 밑에 놓여있는 두엇의 오지항아리를 열어보니 염장갈치가 들어 있었다.

열두 살 어린 녀석이 무얼 할까마는 염량대로 갈치를 한 마리 끄집어내어 소금에 절어 비린내가 진동하는 염장갈치를 그대로 국솥에 집어넣고 물 붓고 소금 한 숟가락을 퍼 넣고 곤로 불에 국적불명의 국일지 찌개일지 모를 갈치염장 국을 끓여 함지박에 담아 아버지께 내갔다.

"아부지 진지 잡숫고 하세요"

"웬 밥을 가져왔니?"하며 가져온 먹거리를 보아하니 어머니의 솜씨는 아닌지라 "네가 만들었니?" "" "웬 국도 끓였구나?"


박영하   24-01-24 14:14
    
처음 올려보는데 글자 수가 있나봅니다  짤리는군요
웹지기   24-01-25 22:49
    
글자 수가 문제가 아닌 것 같습니다. 글에 불필요한 HTML 태그가 포함이 되어 있는 듯합니다.
글을 다 지우시고 새롭게 글쓰기를 누르신 후 아래 두 방법 중 하나로 시도해 보시면 글 전체 올리기가 될 수도 있습니다.

1. 글에서 끊기는 부분에 혹 기호가 있다면 기호를 지우거나 다른 기호로 바꾸면 오류가 해결되기도 합니다.

2. 글을 복사해 넣기 전, 컴퓨터의 메모판을 여시고 붙여 넣은 후, 메모판의 글을 복사해서 수필공모 방 글쓰기 창에 붙여 넣으시면 될 수도 있습니다.

3. 글을 복사해 넣으신 후 전체를 긁어서 블럭 선택하여
입력창 상단의 글꼴크기 조정 옆 '서식지우기(파란색 T 모양)' 이나 그 옆 'HTML(빗자루 그림)태그 지우기' 명령단추를 누르세요.
박영하   24-01-26 09:16
    
웹지기님 감사합니다  이래서 하나씩 배워가네요^^
 
   

박영하 님의 작품목록입니다.
전체게시물 3
번호 작  품  목  록 작가명 날짜 조회
공지 ★★수필 응모하는 분들은 꼭 읽어보세요 (6) 웹지기 05-15 78804
3 밤길 (1) 박영하 01-31 2689
2 서정춘추(수정본입니다) 박영하 01-26 2241
1 서정춘추 (3) 박영하 01-24 28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