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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정춘추(수정본입니다)    
글쓴이 : 박영하    24-01-26 10:19    조회 : 1,555

 모내기철엔 실뱀장어라고 해도 믿을 만큼 여리고 꼬물거리던 어린미꾸라지가 여름한철 지나서 가을걷이를 하는 10월경 질퍽한 무논에서 물 빼기 작업이 시작되면 보드라운 진흙탕 속으로 헤집고 들어간다. 논배미로 물이 들고나는 물꼬가 있는 쪽 바닥은 축축하게 물기를 머금고 있는지라 삽으로 파헤치면 우람하고 살진 놈들이 진한 갈색 등을 내보이며 진흙탕 속으로 헤집고 들어가기 바쁘다.

 개중에는 삽날에 허리가 잘려 꿈틀거리는 놈도 생기게 마련이지만 이리저리 숨을 곳을 찾아 미끄러져 들어가거나 버둥거려 끈적거리는 몸뚱이에 지푸라기를 잔뜩 무친 채로 꾸무럭대다가 추어 잡이 꾼의 양동이 속으로 직행하는 신세가 되고 만다. 무논이라고 해서 미꾸라지가 다 있는 건 아니다.

 개울이나 물목에서 물꼬를 타고 논바닥으로 들어와 여름내 제집인 냥 휘젓고 다니며 여린 잡초나 풀벌레 등 잡다한 벌레들을 잡아먹으며 여름을 나는데 김을 매야하는 농부들에겐 이보다 유익하고 고마운 존재가 없을 것이다.

 거기다가 추수를 마친 후에는 농부들의 지친 기력을 회복시킬 고단백 영양소를 제공해주니 얼마나 고마운 어종이란 말인가?

 

 농약이나 비료가 귀하던 60년대부터 쌀 수확량 증산정책 일환으로 면사무소 직원들이 각 마을에 진출하여 퇴비용 풀베기를 독려하였고 집집마다 사각 퇴비장을 울 밖에 만들어 놓고 풀을 쌓아 놓았는데 면 직원들은 퇴비장에 눈금자를 설치해서 가가호호 간 경쟁을 부추겼고 농가에서는 이웃 들 눈을 피해가며 퇴비분량 속임 용으로 퇴비 속을 파헤쳐 솔가지를 한두 짐씩 부려 넣었다 다음 날 독려를 나온 면직원이 "00 댁네가 현재 퇴비실적 1"이라고 동리를 한 바퀴 돌며 심리전에 돌입하면 이집 저집에서 부당한 술수를 동원해 하룻밤 새에 순위가 또 바뀌게 마련이다.

 여름을 나고 가을쯤이면 애써 쌓아 놓은 퇴비장이 폭삭 주저앉게 마련인데 겨우내 밥 짓는 연료로 사용했거나 군불로 지핀 볏짚이나 나뭇짐깨나 태운 재와 허드레 탑삭 이들과 외양간 거름까지 쌓아 두었다가 봄철에 뚝새풀이 무성한 논밭으로 거름을 내어 뿌리고 쟁기를 소에 얽어 깊이갈이를 한 연후에 몇 날 밤낮을 이어 물을 대어 거름이 땅 심을 돋우게 해두었다가 봄비가 촉촉이 내려 개구리 알 낳고 물벼룩 장구벌레 뛰어 놀 즈음에 모 심을 준비를 한다.

물꼬를 품은 한편에 볍씨를 넣은 못자리에서는 파릇파릇한 여린 모 들이 수북하게 올라오고 있다

 이때는 코흘리개 아이까지 동원해 피사리를 해 주어야 하는데 그래야만 자라면서 피사리의 노고를 줄일 수 있고 웃자라서 씨앗을 떨어뜨리는 피 이삭을 잘라내려고 벼이삭 여물어 꺼칠한 논배미를 헤매고 다니는 괴로움을 줄여주기 때문이다.

어른 손바닥만큼 자란 볏모를 무논에 심기 전에 반드시 거쳐야 하는 일이 써레질이다

 길이는 1m쯤 됨직하고 굵기는 어른 팔뚝만 한 나무토막에 말뚝 10여개를 빗살모양으로 끼운 농기구인 써레에 두 줄을 길게 매어 소가 끌게 하여 높낮이가 다른 논바닥을 고른 후에 물이 수평을 이루게 되면 이때부터 모내기가 시작된다.

못줄을 한줄 씩 띄워가며 모내기를 해나가다 보면 허리는 지끈 거리고 진흙 속에서 한발 한발 빼 박는 다리는 천근만근이다.

 농가들은 울력으로 모내기를 하는데 힘은 들었지만 이앙기가 없던 시절 모내기는 운치가 남달랐다 논둑에선 모내기를 독려하는 패두 어르신이 북을 어깨에 비스듬히 걸어 매고 북채를 힘차게 둥둥 쳐가며 농요를 부르며 일꾼들의 기운을 북돋우는데 무명으로 지은 저고리와 무릎까지 걷어 부친 홑바지나 잠방이를 입고 북장단을 치며 선소리를 하면 허리를 꺾고 모를 심는 이들은 단순한 후렴구로 화답한다.

 손아귀에 쥔 모춤을 저마다 대중 잡은 못줄 공간에 심고 나서 길고 구성진 목소리로 한소리 하며 허리를 펴면 양쪽 두렁에서 못줄 띄우는 이가 짧은소리로 응답하며 못줄을 옮겨 꽂는다. 그렇듯 농악으로 노동의 괴로움을 덜며 논배미 하나 가득 채울 즈음이면 멀리 둑길을 따라서 함지박을 이고 큼직한 막걸리 주전자를 든 아낙들이 남정네들의 허기를 달래주기 위해 논둑길을 따라서 새참을 이고지고 들로 나온다.

삶아 건져낸 국수와 열무김치나 채소무침과 고추장 장떡안주로 큼직한 막걸리 한 사발 꿀꺽꿀꺽 들이켜 마시고 장국에 고명까지 얹어 말아준 국수를 뚝딱 해치우고 나면 그간의 고통이 어지간히 수그러든다.

 그릇 챙기는 아낙들을 뒤로하고 노소가 한 공간이나마 연배대로 두세 패로 나뉘어 돌아앉아서 봉초나 필터 없는 궐련을 나누어 피우노라면 여느 동리나 하나쯤은 있을법한 소리꾼이 포만감으로 불룩한 배를 두드리며 한 곡조 뽑아내면 삼식이 아범은 짝발 짚고 서서 지게목발을 두드리며 소리꾼의 신명을 돋워준다. 뒷정리에 바쁜 아낙들이나 점잖은 노인들까지 걸진 민요가락에 웃음꽃이 만연하니 신윤복의 그림속의 정경 다름 아니다.

 

 여름날에는 논에 사는 우렁이나 미꾸라지와 벌레들을 잡아먹으려고 황새나 두루미가 한가롭게 오가는 것을 볼 수 있는데 멀리 산에서 바라보면 뙤약볕 아래 논배미를 훑고 걸어 다니며 허리를 간간히 꺾는 흰 옷 일색의 예닐곱 농부들의 모습은 널따란 평야를 오가며 벌레를 잡아먹는 백로가 오락가락하는 듯하다

어머니는 이웃집 밭일 품앗이 가시고 아버지는 맥고자를 쓰시고 목에 수건하나 두른 채 목축임도 못하고 논에서 김을 매고 계시다.

 

또래들과 개울에서 첨벙 거리며 놀다가 제방에 올라가 우리 논 김매시는 아버지를 바라보니 참도 거르고 점심 잡수실 시간이 한참은 지났건만 숙연히 일만하고 계시다.

 

 어머니 속내는 아버지가 일하시다가 원근에 새참 내고 점심 나올 때 시골 인심에 불러서 잡숫게 하지 않겠냐고 생각하시지만 새참 내오고 점심 내온 이웃이 한둘이 아니건만 멀어서 불러도 들리지 않을 곳이요 부르지도 않는데 염치없이 들이 밀 위인이 아니신지라 어린 내 소견에도 아버지 걱정에 제방 둑을 안전부절 오르락내리락 한다.

 

 오후 서너 시경 뱃속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도록 놀다보니 아무래도 아버지 걱정으로 이대로 있을 수는 없다는 생각에 친구들을 뒤로하고 홀로 집으로 돌아와 부엌살림을 뒤져보니 가마솥 안에 어린자식들 배곯지 말라고 사발에 퍼 담아 둔 보리밥이 옹기종기하다.

 찬거리를 찾아보니 먹잘 것 없는 시어터진 묵은 짠지뿐이니 이것만으로는 안 되겠다 싶어서 살강 밑에 놓여있는 두엇의 오지항아리를 열어보니 염장갈치가 들어 있었다.

 

 열두 살 어린 녀석이 무얼 할까마는 염량대로 갈치를 한 마리 끄집어내어 소금에 절어 비린내가 진동하는 염장갈치를 그대로 국솥에 집어넣고 물 붓고 소금 한 숟가락을 퍼 넣고 곤로 불에 국적불명의 국일지 찌개일지 모를 갈치염장 국을 끓여 함지박에 담아 아버지께 내갔다.

"아부지! 진지 잡숫고 하세요"

"웬 밥을 가져왔니?"하며 가져온 먹거리를 보아하니 어머니의 솜씨는 아닌지라 "네가 만들었니?" "" "웬 국도 끓였구나?"

"항아리를 열어보니까 갈치가 들어 있길래 끓였어요."

"어디 맛 좀 볼까, 어 맛있다 제법이구나! 이놈아 남자가 부엌 출입하면 고추 떨어져"라고 웃으셨다.

반나마 드시더니 수저를 놓으시곤 "너도 먹거라."하신다

집에 가서 먹겠다고 하는데도 배고프니 어서 먹으라고 하셔서 밥을 큼지막하게 한 술 떠 넣고 갈치 국물을 한 숫가락 떠서 밥과 함께 삼키려고 하자 "우웩! 이럴 수가!"

도저히 목 넘김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짜고 쓰다.

아버지는 어린 아들의 갸륵한 정성을 생각하여 밥을 반그릇이나 비워주신 거였다.

찡그린 내 얼굴을 보시고선

"갈칫국이 좀 짜지? 그래도 맛있더구나"라고 웃으시며 격려를 해 주셨다.

저녁이 되어 선잠들은 내 귓전에 부모님께서 두런두런 하시는 말씀 중에 우리 어머니는" 세상에! 저 어린 것이 지 아부지 배 곯아가며 일하시니까 어린 소견에 음식이라고 염장 갈칫국을 끓여 내간 것이구먼."라며 기꺼워 하셨다

 

 오월이 가고 유월이 오면 그간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던 몸뚱이를 잠시나마 내려놓을 수가 있는데 이때가 되면 아낙네들은 어린새끼들 내몰아 미꾸라지나 피라미라도 잡아들여 남편의 원기를 돋워 주려고 애쓴다.

 

 장성한 청장년들은 동리 사랑방으로 쓰는 삼식이네 골방에 모여 막걸리 잔이나 기울이면서 내일 날이 밝으면 창골 웅덩이를 퍼서 미꾸라지 메기 가물치 붕어나 잡아 동네천렵이나 하자고 이구동성으로 의견을 내놓는다.

 지금처럼 모터달린 양수기가 있는 것도 아니고 두레라고 하여 두 사람이 양쪽에서 끈을 잡고 사각 통에 물을 담아 퍼내야 한다.

 사방에서 두레로 물을 퍼내니 넘쳐흐르던 웅덩이의 물도 바닥을 보이기 시작한다. 웅덩이란 곳이 원래 물이 샘솟는 곳에 만든 것이라 조금만 지체해도 다시 물이 차오를 테니 한개 조는 계속 물을 퍼내고 남은 예닐곱 청년들은 안으로 들어가 등지느러미 희끗희끗 보이는 잉어나 붕어 등속을 얼개미나 성글게 엮은 대삼태기로 건져 잡아내었다

 맨 마지막에 잡는 것이 미꾸라지나 쏘가리 가물치 등속의 바닥을 기는 녀석들인데 이때는 두엇은 첨벙거리며 고기를 띄우고 나머지는 족대라는 1인용 그물을 휘젓고 다니며 숨은 놈들을 건져냈다.

이렇게 하여 작은 저수지인 웅덩이 하나를 초토화시키고 난 수확물이 양동이 3개를 가득 채웠다

그중 꾸무럭거리는 미꾸라지가 제일 실하다

청년들이 개선장군처럼 마을로 돌아오자 동네사람들은 신이 났다

 드디어 천렵이 시작되는 것이다 동네 앞 개울가에 멍석을 깔아서 어른들을 공경하고 마을에 남아있던 청년들은 땅을 파고 돌을 괴어 가마솥 걸고 아낙들은 채마밭에서 갓 뽑은 대파를 산처럼 썰어놓고 음식솜씨가 빼어난 평식이 엄니는 물을 반이나 채운 큼직한 가마솥에 썰어 논 대파랑 고춧가루 와 의깬마늘과 된장 등 갖은양념을 한 후 "간은 강된장으로 맞춰야 해"라며 대여섯 수저 퍼 넣는다.

일머리를 모르는 문 서방 댁이 싱겁다고 타박을 하자 평식이 엄니는 "그러니까 느 서방이 허구헌 날 우리집 와서 내 밥먹지, 느 서방 반은 내 남편이여 이것아!"라고 댓거리하자 아낙들 웃음이 미루나무 꼭대기까지 날아올라 잎사귀를 흔들어댄다. 평식엄니 말씀은 지금 간을 딱 맞추면 끓고 나서 가락국수를 넣으면 짜서 못먹는다는 거였다 역시 평식엄니다.

 

 막걸리와 온갖 생선을 진국으로 우려낸 후 가락국수를 넣어 끓인 생선국수로 배를 채우고 나니 뭔가 분위기를 띄우고 싶은 마음의 여유들이 생겼다

 청년들 염량이 모내기하는데 고생들 많이 했으니 어른들 즐겁게 해드리자며 쑥덕공론 끝에 면소재지에 있는 여씨네 주점에서 기생 몇 명을 부르자고 의견을 모았다 술김에 모두 동의하여 이장네 자전거를 얻어 타고 입담 좋은 칠성애비가 면소재지까지 나가 여씨네 주점에 가서 기생들을 설득하여 출장방문을 시켰다

 기생들이 낭창낭창한 허리를 흔들며 소리를 하니 노인들 점잖은 체면에도 엉덩이가 들썩들썩하며 즐거워하신다.

 동네 아낙들은 아들놈들이 제 아비들 즐겁게 해드리는 마당에 뭐라 강짜를 놓을 수는 없고 보고 있자니 허여 멀건한 기생들과 농사일에 숯검정이 된 자기들이 비교가 되는지라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하나 둘씩 일어나 집으로 돌아가고 흥이 도저한 노인들은 불콰해진 얼굴에 빠진 이빨 오므리지 못하고 일어서서 덩실덩실 춤을 춘다.

 좌중이 몇몇의 춤사위로 흥이 무르익자 용기백배한 창식 아버지와 임실댁네 시 어른이 기생들의 손을 잡아당겨 춤판 가운데로 몰아가서 기생의 가뿐한 허리를 끌어안고 춤을 춘다

기생들은 춤은 추되 머리는 자꾸 도리질을 한다.

막걸리 마신 후에 트림 질이 얼마나 고역스러울까?

 그 중 빼어난 미모와 기품 있어 보이는 시골기생 하나가 하얀 홑바지 저고리 차림으로 점잖게 좌정하여 술잔을 기울이는 우리 아버지한테 눈이 꽂혔다 예서제서 주책없이 끌어당기는 어른들의 손길은 제쳐놓고 우리 아버지 곁으로 다가가서 손잡아 일으키더니 제 품으로 당겨 춤판으로 나간다.

 어머니 밖에 모른다고 생각했던 울 아버지가 다른 여인을 품에 안고 멋진 스텝과 춤사위로 좌중을 압도하자 박수와 환호가 쏟아져 나오고 기생은 흥에 겨워 우리 아버지 얼굴에 뽀뽀를 쪽! 하면서 "오늘은 내 서방이요!"라고 선언하자 좌중에 도저한 흥이 넘쳐흘렀다

 어린 나는 얼굴이 붉어져서 괜히 기생이 밉고 아버지는 속없이 바라보고 서 있는 아들을 의식하는지 드문드문 내 쪽을 보셨다

저녁 무렵 집으로 돌아오니 어머니 혼자서 집안일을 하고 계셨는데 할까 말까 망설이던 끝에 아버지를 기생이 끌고 나가 춤판에서 얼굴에 뽀뽀를 했다고 일러 바쳤다.

말씀은 않으셨지만 가슴에 천불이 일어나셨을 거란 생각이 든다.

 늦으막히 사립문을 밀고 들어오시며 다정한 어투로 "영하엄마 나 왔소"하니까 담박에 "왜 기생하고 살지 뭐 하러 집에는 들어와요? 끌어안고 춤추고 입맞춤까지 하니까 좋습디까? 이눔어 기생 년 아가리를 찢어버려야지, 어따 대고 남의 서방 얼굴에다 주딩이를 들이밀어!"라며 홱 돌아서자 "영하엄마 샘나서 그러우? 내 맘과 사지육신은 영하엄마꺼요"라고 돌아선 어머니의 등을 쓸며 어르자 "드런 손 어딜 만져요"라며 손을 탁 치우며 슬쩍 돌아서 눈을 홀기지만 아버지 말씀에 반분은 풀리셨나보다.

 

 이러구러 시간은 흘러 여름내 태풍과 장맛비에 휘둘리면서도 나날이 우후죽순으로 잘 자란 벼 이삭이 누렇게 고개 숙이는 가을이 왔다

 우리 동네 개울건너 주렛들 벌판에도 황금물결이 새를 불러 모아 집집마다 허수아비를 만들어 세우고 국민학교 운동회 때 사용했던 만국기를 길게 걸어 늘어 맨 논도 보인다.

이젠 참새와의 전쟁이다

 꽹과리 찌그러진 세숫대야 양은냄비 등속을 가지고 나가 수숫대로 그늘 막 쳐놓고 앉아 두드려서 참새를 쫓았다

동쪽에서 쫓으면 서쪽으로 날아가고 서쪽에서 남쪽으로 날아간다.

결국은 게으른 집 논 알곡은 새들의 몫이 되었고 수백 수천마리가 몰려다니며 까먹고 나면 쭉정이만 남아서 이집 저집 소출의 차이가 컸다

동시다발로 익는 늦벼는 피해가 덜하지만 올벼를 심어놓고 관리를 안 하면 새들의 몫이다

벼 익을 무렵이면 그 동안 채워 놓았던 물을 물꼬를 통해 빼 버린다

 추수직전이 되면 질퍽한 논바닥이 고무신을 신고 들어가도 진흙에 빠지지 않을 만큼 폭신해져야만 부지런한 농사꾼 대접을 받으며 그런 집 일은 품앗이 때 대환영이다 발이 빠지지 않으니 상대적으로 힘이 덜 들고 또 그렇게 일머리가 좋은 집의 아낙은 음식솜씨도 빼어나 입을 즐겁게 해준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 수가 있다

 그런데 정성 들여 물을 빼도 물꼬 옆의 쌀 한 가마니는 나올법한 넓이의 논바닥은 거죽에 물은 안보이나 속은 축축하다 개울이나 물목이 이어지는 그런 논바닥 속에 여름내 벌레 잡아먹고 보드라운 풀을 뜯어 먹어 육식과 채식을 잘한 덕분에 튼실하게 잘 자라준 우람한 미꾸라지가 진흙 속에서 꾸무럭거린다. 어릴 때 꽤나 영특하다고 소문이 나고 동네서 공부를 젤 잘했고 반장을 도맡아 한 덕분에 동네 어른들도 나를 어리다고 함부로 대하지 않았다(자랑 질이 심하다)

 6학년 때는 동네 아이들을 공회당 앞에 집합시켜놓고 마을에서 학교까지 콩을 심어 수확하여 어른들께 드리면 우리도 새마을 운동을 하는 것이고 어른들을 돕게 되는 것이라고 일장연설을 하고 각각 집에서 한 주먹씩 콩을 들고 나오라고 했다 그때는 한집에 최소 2명에서 4~5명까지 국민학생 들이 있었는데 마을 세대수가 90여 호가 됐으니 학생의 숫자가 얼마나 많았겠나?

 그 많은 학생이 가지고 나온 서리태며 메주 콩,쥐눈이 콩, 혹자는 팥을 콩으로 알고 들고 나왔는데 그 많은 것을 약2km정도 되는 통학로 양쪽을 일구어 각자 가지고 나온 콩을 심도록 하여 때때로 김매주고 관리해주니 대체로 열매가 잘 여물어 어린 학생들이 이고 지고 끌고 와 동네 공회당 앞에 쌓아 놓으니 작은 산처럼 보였다.

아침저녁으로 주인의 손에 이끌려 가는 소가 드문드문 뜯어 먹었는데도 결과는 성대하였다.

동네 청년들이 한군데로 그러모은 온갖 잡다한 콩을 탈곡한 결과 5가마가 넘는 어마어마한 결실을 본 것이다

그 당시 한집에서 콩을 한가마 이상 수확하는 집이 별로 없었으니까 대단한 성공이다

 어느 날 청년회장과 부녀회장이 나를 불러 "너희들 덕분에 부녀회 자금이 넉넉해졌구나, 온갖 콩이 섞여서 제값은 못 받았지만 꽤 많은 돈을 적립하였다, 너희들에게 무엇을 해주면 좋겠니?"하여 연필과 공책을 사주시면 우리 동네 운동회를 열어 상품으로 나누어 주겠다고 하자 기뻐하시며 학용품을 구입하여 건네 주셨고 동네 아이들을 청미천 개울가 모래톱으로 집합시켜 학년별 마라톤 씨름 담력훈련 등을 시키고 학용품을 나누어 주었고 "여러분 덕분에 이렇게 우리 모두가 행복하게 학용품을 나누어 가지게 되었다, 근면 자조 협동을 몸소 실천해보니까 좋지?"라고 묻자 모든 어린이들이 자신들이 이룬 성취감에 얼굴이 홍안이 되어 "와아!!!"하고 함성을 질렀고 개중에는 눈물을 글썽이는 아이도 있었고 감격스러운 그 분위기가 깨어질까봐 두려워하였다

 그렇게 아이들로부터 진정한 신뢰를 얻고 묵묵히 제 할일을 하는 내가 동네어른들은 듬직해 보였을 거고 대하는 자세에서 어른들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벼를 다 베고 난 들판은 썰렁하게 바닥을 보이고 그 위로 가을바람이 소슬하니 불고 짧은 가을햇살이 내려 앉아 생명이 얼마 남지 않은 벼메뚜기가 힘없는 날개 짓으로 풀 섶을 찾아 들어간다

바깨스라고 불렀던 양동이와 삽을 들고 미꾸라지 잡이를 나섰다

평소 봐 두었던 논바닥을 삽으로 조심스럽게 헤집어 보니 예상한대로 굵은 미꾸라지가 보드라운 진흙 속으로 숨어 들어 간다.

"역시 내 예감이 맞았어."라고 쾌재를 부르며 한쪽부터 무른 땅을 차근차근 파나가기 시작했다

한 삽 뜰 때마다 실한 녀석들이 논바닥에 뒹굴 거린다. 얼른 삽날에 대고 그러모아 양동이에 담는다. 열두 살 어린 내가 들고 가기 버거울 정도로 가득 잡아서 약1km를 걸어 집에 돌아왔지만 집에는 식구들이 아무도 없었다.

 배고픈 것도 뒤로하고 얼른 씻어서 품앗이 가셨던 어머니가 돌아오시면 비린 것을 유난히 좋아하시는 아버지께 맛나게 끓여 드리라고 해야겠단 생각으로 커다란 통으로 옮겨 담고 소금을 한 대접 퍼 넣고 볏가마니를 덮었다 통 안에서는 미꾸라지가 소금벼락을 맞아 퍼덕 거리며 난리가 났다

그렇게 속엣 것을 모두 토하게 한 연후에 물로 씻어내니 허연 거품과 부유물이 한도 끝도 없다. 물을 부어가며 맨손으로 문질러 댔지만 끈적끈적한 점성이 쉽사리 씻겨지지 않고 손에 닿는 촉감이 미끄럽다

반복해서 씻는 작업 끝에 뽀득뽀득한 몸피를 보이는 미꾸라지에 깨끗한 물을 부어 부엌 한편 응달에 놔둔 후 목욕을 하고 까무룩 잠들어 버렸다.

얼마를 잤던지 머리는 개운한데 몸은 나른하다 어머니가 일어나 밥 먹으라는 말씀에 벌떡 일어나 보니 온 식구들이 벌써 밥상에 빙 둘러 앉아 있다

어머니는 "그 많은 미꾸라지를 어디서 잡아왔니? 피곤해서 곤히 잠들었구나?"하셨고 아버지는 희색이 만면하게 웃으시며 ", 너는 잡는 것만 하고 씻지는 말거라"하셨다

어머니는 미소 지으시며 "미꾸라지는 너무 뽀득뽀득 씻으면 민물생선 특유의 비린내가 없어서 생선 맛이 덜하다고 저러시는 거다."라고 아버지 말씀을 해석해 주셨다 한국말도 해석이 필요하다니 원! 약간은 서운했지만 맞는 말씀이니 화낼 일도 아니다.

진짜 추어탕을 한 숟가락 먹어보니 구수한 비린 맛이 덜한 듯싶기도 하여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후 겨울이 오기까지 추수가 끝난 논바닥을 헤집고 다니며 미꾸라지 잡았던 기억이 새록새록 뇌리에 스칠 때면 아스라한 어릴 때 시골살이가 아름다운 한 폭의 산수화처럼 눈에 선하다

 

다정다감하신 어머니와 아버지 숨결이 남아있는 곳!

다투고 웃고 울고 함께했던 그 많은 형제들과 이웃들이 살던 그 곳이 그립다.

 

 이제는 갈 수 없는 그 곳!

변함없는 순수가 온 산하에 스미어 따사로움이 가득한 그 곳!

그 곳이 내 참 고향이었습니다.

 비록 나 살던 옛집이 남아 있고 지금도 동리 앞으로 맑은 시냇물이 변함없이 흐르고 있지만 시절이 다르고 사람이 다르며 인심도 예전 같지 않으니 세월이 내게 고향을 앗아갔다는 생각에 실향민처럼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사무쳐서 아픕니다.

 

그날의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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