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잎 사랑
은행잎! 사랑해. 어느새 너의 계절이 성큼 다가왔구나. 푸른 잎들은 가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네. 색동옷 입은 너의 모습을 생각하니 가슴이 콩콩 뛰어. 얼굴이
파랬다, 노랬다, 하는 것을 보면 정말 신기해. 푸르른 날이 지날 때 갱년기를 앓을 수 있고, 몸의 변화가 오면
마디마디 실핏줄까지도 앓고 있지 않았을까! 성형해서 예뻐진 것도 아닐 텐데 자연 그대로의 얼굴에게 반해서
좋아하는 줄을 너도 알고 있지!
단풍이
들면 길가나 언덕이나 들판이나 골목이나 나무와 잎들이 서있는 곳은 다 아름다워. 단풍나무, 은행나무, 느티나무, 옻나무
잎들은 어디서 그렇게 예쁜 의상을 맞춰 입는지 모르겠네. 회사를 다니는 것도 아니고 알바를 해서 돈을
버는 것도 아니지. 너의 부모는 뿌리에서 만든 물감들로 색색의 무늬도 만들어 주나보다. 그래서 말인데 나는 마음에 드는 옷을 입고 싶어도 참고, 눈치를
보다가 엄마 아빠가 웃을 때 사 달라고 조르기도 해. 노랗게 물든 예쁜 옷을 갈아 입는 것도 나와 닮아
있는 거 같아. 단풍철이 되면 구경간다고 백화점 남대문 지하상가 등산복 등 가게들을 찾아 기분 좋은
쇼핑을 해. 단풍보다 더 좋은 의상을 구입하기는 어려워 왜냐하면 너의 옆에 서서 기념사진을 찍으면 내
얼굴과 의상은 큰 차이가 나서 차라리 푸른 소나무 아래서 찍는 것이 더 좋아. 사람들은 시샘이 많아
내 얼굴이 예쁘게 나오지 않으면 기분 나빠 하며 바로 삭제를 해.
장미꽃이
한창 필 때는 그때가 좋아 축제 보러 간다고 야단이고, 가을에는 단풍구경을 간다고 야단이야. 울긋불긋 단풍보다는 노랗게 바른 볼 연지와 입술선을 그린 은행잎이 더 정겨워.
나도 너를 보면 사랑하는 마음이 생겨. 이럴 때는 사람들도 너를 닮아 다 예뻐 보여. 보고 또 봐도 너의 고운 색깔에 반해버려. 바람이 불 때마다 노랑나비가
되어 떨어지는 모습을 보면 얼마나 환상적이야. 보는 순간에 기쁨과 행복감에 감탄사가 절로 나와, 화장을 하지 않아도 향기로워. 마음 속에 있는 우울한 감정도 너를
만나면 먼 곳으로 날려버리고 너에게 빠져들거든.
길을
걷다 보면 낙엽을 쓸어 담는 아저씨들이 많이 눈에 띄어. 그 일을 하는 것도 힘들지. 쓸고 뒤돌아보면 쌓이고 하니까 허리 펼 시간도 없어. 혹시나 지나가다
낙엽에 미끄러지거나 아니면 지저분하다고 신고가 들어오면 곤란해. 나는 그냥 지나가다 “아저씨 왜 단풍을 쓸어 담고, 기계로 날리는 거예요? 그냥 두면 가을 정취가 풍겨 보기만해도 좋은데요.”하고 물어보았다. 환경미화원은 “길거리를 깨끗하게 하는 일을 하다 보니, 우리에게는 좋은 것도 상관없이 말끔하게 쓸어서 청소를 하는 것이 일입니다. 허리도
아프고 팔도 쑤시고 몸이 힘들어 죽을 맛입니다.”했다. 괜한
소리를 해서 저 분이 마음 상해하면 어떡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쓸어 담은 포대기속 낙엽들은 그 안에서
몸살을 앓고 있는 듯한 한숨소리가 들렸다. 미화원 아저씨들은 부피를 줄이기 위해 꾹꾹 발로 밟아 빗자루로
열심히 쓸어서 담았다.
마음이
무거워 걷고 있는데 은행잎들이 수북이 쌓여 있는 것을 보니 순간 고향 율곡면 본천리 마을회관 앞에 있는, 수백
년이 된 은행나무가 떠올랐다. 지금도 은행나무는 사계절을 잘 견디며 보는 사람마다 좋은 기억을 안겨주는
고마운 나무다. 죽은 가지에는 잎이 없어 노란 잎을 떨구지 못했다. 노랗게
물든 은행잎을 밟으며 약간의 미끄러운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떨어진 잎 위에 누워 있으면 차가운 기운이
닿았지만, 계속 잎이 떨어지는 것을 보면 즐거움이 가득하였다. 어릴
때는 은행나무 잎을 책갈피에 꽂아 두었다가 크리스마스 때가 되면 은행잎을 밥풀로 붙여서 카드를 만들었다. 선생님
친구 부모에게 글자를 썼다. ‘크리스마스 축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라 고 카드에 적었다. 선생님은 카드를 받아보고 기특하다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가을이
되면 사춘기 시절에는 머슴애들에게 단풍 든 잎을 던져 주기도 하며 놀았다. 그렇게 자라서 사랑의 눈을
뜨게 되었다. 마음도 설레고 멋진 남자를 보면 호감이 갔다. 시집을
갈 나이가 되어 부모들은 중매를 한다고 알아보는 중이었다. 한 남자를 소개받아 약혼을 하고 데이트도
하였다. 가을이 되면 단풍길을 걸으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마냥 즐거웠다. 은행잎을 주워 내 손바닥에 놓아주며 웃는 얼굴로 내가 더 예쁘다고 했다. 도시와
시골에서 각자 떨어져 있을 때였다. 그때 연말 카드에 붙여 보내준 ‘경이
사랑해’써준 은행잎은 아직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이맘때면
단풍잎이 웃음을 주고 행복을 안겨준 둘만의 가을은 오지 못할 시절을 떠올리게 했다.
단풍을 보며
괜스레 사랑하는 감정이 생기고 누군가에게 아름다운 사연의 엽서를 띄우고 싶다. 사랑하는 남편에게 ‘오늘 가을비가 내리는 저녁입니다. 당신과 함께 노란 우산을 함께 쓰고
팔짱을 끼고 덕수궁 돌담길이나 붉은 담쟁이와 단풍나무가 많은 공원을 걷고 싶습니다. 퇴근시간이 되면
빨리 전화주세요. 앞치마 벗어 던지고 보글보글 끓고 있는 김치찌개도 잠깐 불을 끌게요. 빨리요.’하는 말을 하고 싶다. 지금은
바라볼 수도 만날 수도 없다. 그냥 마냥 좋은 가을을 혼자 보내기는 쓸쓸하다. 이런 마음을 품고 사는 김에 여보 당신께 은행잎을 붙인 사연을 노란색 우체통에 넣어 볼까요 하늘나라 어느 곳에
닿을 수 있을지. 아니면 연말에 은행잎이 새겨진 두터운 양말이라도 선물해 볼까 하는 마음이 생기는 저녁입니다. 단풍은 때가 되면 떨어지고 떨어진 것들은 멍들고 아픔을 겪는다. 그
아픔조차도 나에게 은행잎은 사랑하는 마음과 위로의 마음을 다독여준다. 노랗게 변한 카드를 꺼내 붙어
있는 은행잎을 어루만져본다. 사랑해 은행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