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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밥 묵자    
글쓴이 : 문경자    12-11-13 11:36    조회 : 5,509
밥 묵자   
                                                                               문경자
 
전기 밥솥에 처음으로 찰밥을 안쳤다. 시어머님은 나무로 불을 떼어 찰밥을 하셔도 구수하고 찰 지며 맛있는 밥이 되었다. 늦은 밤 동치미와 먹던 맛은 둘이 먹다가 하나 죽어도 모른다는 말이 실감 날 정도였다.
남편은 찰밥이 되기를 기다리며 평상복 차림으로 텔레비전 화면을 보고 있다.  말이 별로 없는 터라 둘이 있으면 엄청 심심하다. 경상도 특유의 무뚝뚝함은 목석 같은 그 사내 라고 노래하던 유행가 가사와 딱 맞아 떨어졌다. 퇴근하여 집으로 돌아오면 “아는 자나.” “밥 묵자.” 하도 많이 들어서 말 같지도 않고 잠꼬대 하는 소리로 들렸다.  
선을 볼 때 딱 한마디 “저어 서울에 오신지는 얼마나 되었는지요.” 하고 안 방 천정만 바라보던 모습이 떠올랐다. 나도 “네.”하고 그 한마디만 하였다. 그 때나 지금이나 변함이 하나도 없었다는 것을 증명해준다.
어느 날 퇴근한 남편이 돌아오는 시간에 맞추어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를 듣고 방문 뒤에 숨어있었다. 하도 말을 하지 않으니 그래도 여자인 내가 아양이라도 떨어야지 하고 기다렸다. 드디어 문을 열고 들어서며 하는 말 “엄마는.” 하며 아빠가 묻는 말에 아이들은 모른다고 하였다. 웃음이 나와도 꾹 참았다. 그럼 그렇지, 그 성격이 어디 갈려고, 안 방으로 들어오는 남편에게 “까꿍” 하며 얼굴을 내밀었다. 남편은 “이 사람아.” 한 마디 하였다. 내가 돌았나 뭘 바라고 이렇게 까지 해야 하나. 남편 말로는 여자는 밤에 여우가 되어야 한다나. 그러면 여우 데리고 와서 살면 되겠네, 진짜 여우 같은 여자를 데리고 오면 어떡해.
 
된 밥이나 죽 밥이나 상관없이 밥만해서 주면 먹는 편이라 시집 와서 여태까지 잔소리를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 친정 아버지께서는 이서방이 성격은 있는데 잘 참는 사람이라며 칭찬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말씀을 해주셨다.
 친척들은 그날이 그날이라 속 상하게 하는 일 없으니 얼마나 좋으냐 하며 남편은 법이 없어도 사는 사람이라 하였다. 나도 그런 남편을 좋아했다. 박력은 없지만 한결 같은 마음이다. 사람이 살다 보면 화가 날 때도 있고, 가장으로 큰 소리도 질러보고 그래야 남자다운 면이 있는데, 술에 술 탄 듯 물에 물 탄 듯 하여 답답하다고 말을 하면 박력 좋아하다 두들겨 맞는다며 복인 줄 알라고 타이르곤 하였다.
 
밥이 잘되는지 궁금하여 전기밥솥을 쳐다보았다. 남편은 텔레비전을 보며 “밥은 잘 되고 있어요.”하며 배가 고프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밥은 잘 되겠지 하며 여유를 가지고 기다렸다. 피~~쉬 하며 수증기가 올라오면 오케이.
 마음이 불안하다. 수증기가 올라 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밥이 다 되었다는 표시가 떴다. 주걱으로 밥을 뒤지니 생쌀이 그대로 있었다. 이것들이 미쳤나 보다 하고는 남편의 눈치를 살피며 조금 덜어 내어 생쌀을 냄비에 담아서 올려놓고 가스레인지를 켰다. 남편은 개콘재방을 보며 웃고 있었다. 따라 웃었다. 밥도 못하는 게 웃음이 나와? 누군가 나에게 핀잔을 주는 것 같아 웃지도 못하고 그냥 얼굴 근육만 움직였다.
밥이 잘 되었는지 궁금하여 냄비 뚜껑을 열었다. 물이 보글보글 동그라미를 그리며 내 속도 모르고 끓고 있었다. 찰밥이 아닌 찰 죽이 되었다. 차라리 삼층 밥이 되었으면 입 맛에 맞게 먹을 수도 있는데 이걸 우짜노 하며 “여보. 찰 죽이 되었어요. 어떡해요?” 남편은 얼굴이 굳어지며 벌떡 일어났다. 냄비 속을 들여다 보더니 박력 없는 목소리로 그냥 먹어도 되겠는데 하며 찰밥이 아닌 찰 죽을 말없이 먹었다. 숟가락으로 죽을 먹는 남편의 입이 오물오물 하는 것을 보니 죽이 싫은가 보다.
내색도 하지 않고 찰밥을 한다고 애쓴 아내를 위해 맛있게 먹어주었다. 남편은 죽 두 그릇을 뚝딱 비우고 밤참으로 나중에 먹는다며 숟가락을 힘 없이 내려놓았다. 배가 고픈데 꾹 참았다는 기색이 역력했다.
 
  말이 없는 남편이지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죽이든 밥이든 아무 말 않고 먹어 준 남편 덕에 내 실수는 무사히 잘 넘어갔다. 평생 이해하며 살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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