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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갈아요    
글쓴이 : 문경자    23-04-05 02:02    조회 : 1,759
-칼 갈아요

 특수 제작한 오토바이를 타고 할아버지는 벚꽃이 핀 도로를 천천히 지나가고 있었다. 지붕은 비 바람을 피하기 위해 하얀 비닐을 덮었다. 얼마나 오래 되었는지 비닐이 검은 색에 가까웠다. 양쪽으로 노랑색 천을 덧댄 자리에 칼 갈아요라는 큼직한 글자가내 눈에 꽂혔다.

 칼 갈이 할아버지는 칼 갈아요하는 외침 대신에 흘러간 옛 가요를 크게 틀 어 사람들의 환심을 사게 하였다. 구수한 노래는 칼을 갈아 살아온 할아버지의 삶을 대변해주는 가사였다. 그래도 한번은 외쳐야 되지 않을까! “칼 갈아요하고.

내가 생각을 해봐도 저렇게 다녀서 하루에 몇 자루의 칼을 갈아 생계를 이어 갈수가 있을지! 하는 염려가 되었다. 하기야 단골로 칼을 가는 곳이 있겠지만. 미장원이나 이발관 정육점 등을 찾아가 칼을 가는 정도가 아닐까 하는 짐작을 해본다.

 동네에서 부지런하기로 소문난 어머니는 시집 살림을 알뜰하게 꾸려 나갔지만 시집살이는 평탄치 못했다. 어머니는 저녁준비를 위해 무채를 썰다가 식칼이 들지 않으면 장독대로 갔다. 비뚤어진 싸구려 독 뚜껑 테두리를 이용하여 무쇠로 만든 칼을 싹싹 원수같이 갈았다. 누군가에게 보내는 칼날 같은 매서운 소리 같았다. 어머니는 속을 상하게 하는 아버지생각을 하면서 무딘 칼을 몇 번이고 갈았다. 손바닥에 슬쩍 칼을 대본다. 얼굴에 날카로운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칼을 간다는 것은 마음에 상처도 함께 갈아 버리는 잔인함이기도 하다. 나도 칼 갈이 하는 것을 배워 칼 날을 세워 보았다. 애꿎은 칼날이 더 망가졌다고 어머니께 꾸중을 들었다. 쉬워 보이지만 칼을 가는 일도 큰 기술이 필요로 하는 것을 알았다. 어머니가 식칼을 하루 이틀 갈아 쓴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런 어머니를 보고 할아버지는 숫돌에 식칼을 갈아 며느리에게 건내 주었다. 그날 무채를 써는 어머니 얼굴엔 그림자가 사라졌다.

결혼을 하여 농사를 지으면서 살 때였다. 시집 사랑채에 석류나무 아래에 숫돌이 하나 있었다. 석류나무에 핀 빨강색 꽃송이는 얼마나 요염하고 고운 자태로 달려있는지 숫돌 앞에 앉아 있는 시아버지의 모습이 무색해 보였다

시아버지는 거칠어진 손으로 한 귀퉁이가 깨어진 사발에 있는 물을 퍼서 숫돌에 바른 다음, 식칼을 바짝 부쳐서 아래 위를 왕래 하면서 손으로 조절을 하였다. 식칼은 살점이 갈려 나가는 것이 서러운지 시커먼 눈물이 되어 흘렀다. 많은 눈물이 흐를수록 칼날은 시퍼렇게 번득였다. 손으로 잘 쓰다듬어 보다가 한 쪽 눈을 찡그린 채 몸을 구부려 훑어본다. 적군을 향해 겨누는 모습과 닮았다.

칼날이 잘 드는지 석류나무 밑 둥지에 있는 잔 가지를 잘라 보기도 하였다. 내려다보는 석류꽃은 얼마나 무서울까!

나도 가끔 무디어진 식칼을 숫돌에 갈아도 신통치 않았다. 숫돌을 만져보면 그 감촉이 여자의 고운 살결을 연상케 했다.

숫돌은 대대로 이어온 귀중한 것이라 애지중지하게 여겼다. 동네 사람들도 와서 숫돌에 식칼이나 낫을 갈아 번쩍이는 칼날을 보고 속이 뻥 뚫린 것 같은 내색을 하면서 좋아하였다.

세월이 흐른 뒤 아무도 살지 않은 집에 석류나무와 미쳐 챙기지 못한 숫돌도 누군가의 손에 의해 온데간데없어졌다. 지금도 남편은 그 숫돌을 누가 가져 갔을까! 하는 말을 하곤 한다.

언젠가 남편이 전철에서 샀다는 얄팍한 상자를 나에게 내밀면서 싱글벙글하였다. 어쩐 일로 나에게 선물을 다 사다 줄까! 웃으며 덥석 받았다. 가벼운 것이 탐탁치 않았다. 혹시나 하고는 눈을 똥그랗게 뜨고 뚜껑을 열었다.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 하는 의심이 갔다. 플라스틱으로 만든 작은 기구였다. 일명 신제품으로 나온 칼 갈이라나! 기가 차서 말도 나오지 않았다. 내 표정을 보더니 식칼을 내오라고 하였다. 칼 갈이 하는 법을 가르쳐 준다는 말에 식칼을 내밀었다. 나도 칼이 들지 않으면 어머니가 하던 그대로 칼을 갈아 사용을 하였다.

남편은 식탁에 칼 갈이를 고정시켰다. 무딘 식칼을 쓰는 아내를 위해 남편은 칼을 열심히 갈았다. 뒷모습이 시아버지를 닮았다. 칼 가는 소리만 요란하게 나는데 비해 칼날은 시아버지가 숫돌에 가는 만큼은 날이 서지 않았다.

남편은 칼 갈이가 끝났다며 뭐든지 잘 썰어질 꺼야.” 하고는 자신 있게 큰 소리로 말했다. 고마운 마음에 큰 무를 한번 썰어보았다. 별로 신통치는 않았지만 힘들어 갈아주었는데 잘 쓸어진다는 말을 하였다.

물건을 파는 아저씨가 아주 잘 갈리는 것을 특수 제작하여 사람들 눈을 속이지 않았을까 하는 의심이 생겼다. 나는 잘난 척하면서 남편에게 큰소리로 담부터 이런 물건을 사오면 던져버릴 거예요.”하고 엄포를 놓았다. 내가 너무 심했나! 그래도 또 사가지고 올 가능성이 많아. 그렇게 사다 놓은 것이 몇 개나 된다. 남편이 없는 틈을 타서 폼을 잡고 앉아 칼 갈이를 하지만 갈기전이나 별로 다를 바가 없었다.

요즈음은 집집마다 칼 갈이 남자와 여자가 있으니 칼을 갈아 돈을 버는 일이얼마나 힘들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몇 년 전만해도 자전거에 판자를 고정시켜 여러 가지 모양의 칼을 팔기도 했다. 골목을 누비면서 칼 갈아요하는 소리에 아줌마들은 칼을 들고 소리 나는 곳으로 갔다. 칼 갈이 아저씨는 손에 힘을 주어 열심히 간다. 우스개 소리를 하고는 잘 갈아진 칼을 괜히 요리보고 저리보고 눈을 찡긋하며 윙크하는 시늉을 하여 골목 안에 웃음꽃이 피기도 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 많은 칼 갈이 하는 사람들은 지금 어디에!

아무리 신제품이 쏟아져 나와도 칼 갈이 아저씨가 쓱쓱 갈아주는 식칼로 시원하게 썰어지는 식칼의 날을 세우고 싶다.

 멀리서 외치는 소리

 칼 갈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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