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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틀어 짜며 -문경자    
글쓴이 : 문경자    16-12-30 19:14    조회 : 5,887


비틀어 짜며


                                                    문경자


 아버지의 부탁으로 내 중매를 한 고모님은 신랑감이 얌전하여 평생 속을 썩일 일이 없으며, 네가 백마디 하면 한마디 할까 말까 하는 성격으로 보이더라라고 하였다. 맞선 보는 자리에서 처음 본 나에게 한마디로 간단한 질문을 했다. “서울에 올라 온 지는 몇 년 되었어요?”라며 물어 본 기억 밖에 나지 않는다. 우리 부모님은 그런 신랑감을 내 의견에 상관없이 선뜻 결정을 해버렸다. 서둘러 시집을 가라며 서울에서 아지랑이가 가물거리던 4월에 결혼식을 올렸다. 30대 아들 둘이 장가 갈 나이가 되었으니 세월도 많이 지났다.

  서울에서 산골로 시집을 갔던 나는 모든 것이 낯설기만 하였다. 고모님의 말씀이 조금씩 신빙성이 있어 보였다. 새신랑은 밤이면 마실 가서 텔레비전을 보고 온다며 나에게는 통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한 밤중에 돌아와 말없이 등을 돌리고 자는 모습은 무관심 그 자체였다. 나는 참는데도 한계가 있다는 생각에 일어나요하며 등을 흔들어 보았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더 세게 힘을 주어 깨웠다. 고모가 점쟁이처럼 딱 맞혔다.‘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 적중하였다. 시부모와 함께 살고 있으니 부부싸움은 어림도 없었다. 그날 밤 굴뚝이 서있는 곳에 숨어 울었다. 내가 보이지 않자 가족들이 찾아 나섰다. 남편이 빨리 일어나요하며 데리고 가니 모두 화살을 나에게 쏘았다. 시집이 무섭기는 무서웠다. 화가 치밀어 한마디 하였더니 그만 자요하며 등을 홱 돌렸다. 한숨을 쉬며 꽃이 수 놓인 베개를 고쳐 베고는 잠을 잤다.

  시골에서 살기에는 아이들 장래도 그렇고 하니 친정 아버지는 서울에서 살기를 원했다. 서울에 취직이 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시부모들은 잘됐다라며 전세금을 마련해 주었다. 돌을 지낸 첫아들을 업고 서울로 왔다. 30대 초반의 남편은 하루가 다르게 회사생활에 익숙해져 갔다. 나는 친정을 들락거렸다. 아버지는이서방은 회사에 잘 다니고 있지! 일을 잘 한다고 직장 상사가 칭찬을 하더구나하며 늦게 들어오는지 살피고, 왜 늦었는지 이유를 알아 보라는 충고를 해주었다. 그 말을 되새기며 남편의 행동을 주시하였다.

  어느 날 남편은 집으로 돌아 왔는데 얼굴이 환하게 보였지만 말 한 마디 없이 잠을 자는 숫자가 늘어만 같다. 여자의 직감이 꼬리를 내 밀었다. 하얀 와이셔츠를 벗으며 매주 사는 복권에 당첨이 된 것보다 더 기분 좋게 흥얼거렸다.‘저 모습이야!’발을 씻고 들어와 아들을 보고 웃으며 혁아! 잘 놀았나라며 웃는 모습이 어딘가 모르게 미심쩍게 보였다. 평소에는 저렇게 웃지도 않는데 이상했다. 시골에서 쭈~욱 자란 그는 경상도 사투리만 듣다가 서울말씨를 쓰는 아가씨들을 보고는 뿅 가버린 것은 아닌가! 여자의 좁은 소견머리가 자꾸만 채찍질을 하였다. ‘두고 보자라며 나는 퇴근길에 아들을 업고 버스정류장에서 기다려보기도 했다. 그런데 제시간에 딱딱 맞게 퇴근을 하니 의심의 여지가 보이지 않아 그것도 무의미 하였다.

  며칠 뒤였다. 반소매 흰 와이셔츠를 벗어 놓고 회사로 출근을 하였다. 화가 나서 옷을 꾸겼다. 목이 닿은 곳에 때를 빡빡 문질렀다. 비틀어 짜며 화풀이를 했다. 속이 시원하여 웃음이 절로 나왔다. 호주머니 쪽에 담배 가루가 있어 그것을 꺼내기 위해 뒤집으려는데이건 또 뭐지. 립스틱 자국 아니야!’호주머니 박음질 선에 묻어있었다. 물에 젖어 더욱 선명했다. 이상한 그림들이 눈앞에서 나비처럼 춤을 추었다. 어떻게 해야 증명을 할 수가 있을까 내심 혼자 고민을 하였다.

 집에 온 남편에게 보여주자는 심사에서 그대로 빨랫줄에 널어 말렸다. 머리 속은 쑥대밭이 되었다. 드디어 집에 올 시간이겠다. 방문 여는 소리에 머리가 팍 하고 쪼개지듯이 아팠다. 저녁상을 물렸다. 첫 마디가 중요한데 말 주변도 없는 내가 뭐라고 하지. 눈웃음을 치며 여우처럼 변해야만 한다. 누워있는 남편에게저어기요. 와이셔츠 호주머니 쪽에 여자립스틱이 묻어있었는데 어떻게 된 영문인지 자초지종 말을 해보세요.”남편은 나에게 존대 말을 하기 때문에 싸움을 할 때도 그렇게 말을 해야 했다. 시집살이에서부터 남편이 잘 못 한 것을 꼬집으며 눈물 콧물 범벅이 되었다. 남자는 여자의 눈물에 약하다는 것을 감안하여 더 슬프게 울었다. 슬며시 몸을 뒤척이더니 인주(印朱)가 묻었다는 한 마디만 던지고는 잠을 자는 척했다. 너는 떠들고 나는 잔다는 식이었다. 시어머니는 평생 소원이 시아버지와 부부싸움을 한번 해보는 것이라 했다. 지금 아버님의 모습을 보고 있는 것 같다. 고모는 남편들이 자는 척하면서도 다 듣고 있으니 할 말을 해야 한다는 말을 해주었다. 12시가 지나도 말을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속이 터졌다. 이런 남자와 한 평생을 살아 갈 날을 생각하니 앞이 캄캄하였다. 나는 앉은자리에서 꼼짝도 않고 돌아 누운 등쪽을 보고 말했다. 남편은 벌떡 일어나더니 방문을 발로 차버렸다. 방문이 한쪽으로 기울었다. 밤을 꼴딱 세워버렸다. 남편은 출근 준비를 하였다. 가슴이 막혀왔다. 하얀 와이셔츠를 입고 쓰다 달다 말 한마디 않고 가버렸다. 눈이 따갑다. 문짝을 고치는 아저씨는 간 밤에 부부싸움을 했나 봐요. 이렇게 부숴진 문은 말을 하지 않아도 알지요하며 고쳐주고 갔다.

  옆집에 사는 아줌마에게 그 옷을 보여주었다. 밝은 곳으로 나갔다. 립스틱과 인주를 동시에 칠해 보았다. 같은 색으로 분별이 어려웠다. 친정엄마가 안 계시니 속이 터져도 말을 할 데가 없었다장위동에서 도봉산 가는 버스를 탔다. 날씨는 덥지! 등에 업혀 있는 아들이 축 늘어져 더 힘이 들었다. 아줌마는 독하게 마음을 먹어야 된다고 하였다. 어느 정류장에 내렸다. 아줌마는 너무 지쳐 징징거리며 보채는 아들에게 쭈쭈바를 사주었다. 길은 꼬불꼬불하고 햇빛은 머리 위에서 이글거리는 용광로 같았다. 다리에 힘도 빠지고 아이는 엉덩이 아래로 자꾸만 내려갔다. 다시 고쳐 업고 뒤를 따랐다. 언덕배기를 올라 가는데 숨이 헐떡였다. 등에 업힌 아이는 자꾸만 칭얼거렸다.

빨간 깃대가 축 늘어져 있었다. 방안에 들어서니 키가 작고 머리는 바글바글 지져서 일년에 한 번만 미장원에 가는 스타일을 하고 있었다. 눈은 감았는지 눈동자가 참외 씨 같아 보였다. 그러니 믿음이 가지 않았다. 아줌마에게 아는 척하였다 내 딱한 사정 얘기를 듣고 있던 점쟁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눈을 감고 흰쌀을 한 움큼 쥐더니 상위에다 뿌렸다. 눈을 감고 뭐라고 혼자 중얼거리더니 왈 남자가 일을 하다 보면 그냥 다방에서 차 한잔 정도 하는 그런 사이지, 여자를 사귀거나 좋아할 그런 위인은 못 되니 안심하고 가라는 말만 했다. 나의 속마음은 죽고 못사는 여자가 하나 생겼다!’이런 말을 듣고 싶었는데 헛고생만 하였다. 점쟁이 이야기를 남편에게 하였더니 그 옷을 엄지발가락에 걸어서 잡아 당겨 쭉 찢어 방바닥에 던졌다. “아니, 이상하네. 가슴 한 구석이 찔리는가 보다라며 나는 내 팽개쳐진 옷을 주워 돌돌 말아 장롱구석에 숨겨놓았다.

  언젠가 장롱을 정리하다 꺼내보았다. 그 옷도 이제는 낡아져서 립스틱? 자국도 분간하기가 어려워 쓰레기통에 버렸다. 그 후로 말이 없는 남편과 부부싸움을 하는 것은 바위에 두부치기였다. 남편이 하는 말에 의하면 여자랑 싸움을 해보아야 쓸 말도 없거니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린다고 하였다. 그래야 집안이 조용하고 편안하다고 했다.

  지금까지 회사를 다니고 있지만 그런 표적은 보이지 않았다. 살면서 부부싸움도 해야만 정도 들며 속마음도 알아 볼 수 있다지만 그 성격이 어디 쉽게 바꾸어 질 리가 있겠나 싶어 어지간한 일은 여자인 내가 참아야지. 이렇게 만났으니 믿고 살자. 입술에 립스틱을 바를 때면 가끔 생각이 난다.

  립스틱? 아니면 인주(印朱)가 맞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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