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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탱자나무가 있는 집    
글쓴이 : 문경자    22-07-14 22:35    조회 : 3,659

■  탱자나무가 있는 집

                                                      

   

어느 날 험상궂은 남자가 집 안으로 들어왔다. 보기만 하여도 기분이 나빴다. 그 남자는 빨간 딱지에 압류라는 글자가 새겨진 것을 여기 저기 부쳤다.

어머니는 솥 안에 붙은 딱지를 보고 한숨을 쉬었다. 철없는 나는 그저 어머니 얼굴만 쳐다보고 있었다. 밥도 지을 수가 없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서로 책임을 물었다. 큰 소리로 주고받는 말을 듣고 걱정이 되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 사이가 별로 좋지 않아 어머니가 얼마나 힘이 들었을까! 착한 어머니는 등을 돌려 앞치마로 눈을 가렸다. 결국 집은 남의 손에 넘어갔다.

 그때 어머니는 입이 굳어 있었고 얼굴은 얼음 같았다. 부엌에 쭈그리고 앉아 부지깽이로 잿불을 마구 파헤쳤다. 얼굴은 하회탈 같았다. 날이 갈수록 기울어 가는 집안은 어린 내 눈에도 보였다. 어머니는 하루가 멀다 하고 돈이 되는 것을 장에 내다 팔곤 하였다.   

 

누구의 힘으로도 어려운 난간을 피할 수가 없었다. 아버지는 별로 집안에 대해 신경을 쓰지 않았다. 당장에 집을 구하기도 어렵고 모아둔 돈도 없으니 속이 타 들어 갔다. 그 때만 해도 집세를 내고 산다는 것은 꿈에도 생각하지못했다. 다행히 빈집을 구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친척이 사랑채를 내주어 쉽게 들어가 살수 있었다. 이사를 온 후 어머니 얼굴엔 목화송이 같은 미소가 피어났다. 고급스러운 아파트도 아니고 대궐 같은 집은 더더욱 아니었다. 작은 기와집이었다. 좁은 마루가 있었으며 방은 2칸 작은 부엌이 딸려 있었다. 집안을 깨끗하게 치웠다. 부뚜막은 흙으로 만들어져 있었고, 무쇠 솥에서 구수한 밥 냄새가 폴폴 났다. 아궁이에 있는 불을 꺼내 석쇠에 얹어 굽는 간 갈치를 보고 나는 군침을 흘리며, 갈치의 튀어나온 눈을 보고 있었다. 갈치 눈을 먹으면 눈이 밝아 진다고 하여 그것을 달라고 어머니를 조르기도 하였다. 보글보글 끓인 된장에 겉절이와 밥을 맛있게 먹었다. 볼이 터지게 먹는 나를 보고 어머니는 손가락으로 내 볼을 튕겼다. 나는 볼에 힘을 주어 탱자처럼 탱탱하게 만들었다. 명절에는 고구마를 푹 고와 조청과 달콤한 식혜도 만들었다. 내가 먹고 싶다는 것은 척척 만들어주었다. 부엌은 어머니가 마술을 부리는 것처럼보였다

마루에는 햇빛들이 찾아와 놀고 있었다. 나는 마루 끝에 나와 앉았다. 집 주변에는 작은 감나무, 매화나무, 벚나무가 심어져 있었다. 그때 키 큰 탱자나무 한 그루가 내 눈에 들어왔다. 탱자나무는 마당을 들어서는 입구에 서있었다. 우리 집 문패 역할도 했다. 다른 집은 큰 탱자나무가 아예 없었다. 친척집은 탱자나무 울타리만 있었다. 음력 이월 초하루 영등할머니가 내려올 때 할머니는 정화수를 떠놓고 자식들이 잘 되길 빌었다. 액운을 물리친다는 의미로 색실과 화려한 헝겊을 탱자나무에 매달아 놓았다. 우리는 신기하여 그것을 손으로 풀어서 소꿉놀이에 쓰기도 했다.  

 

삭막한 도시에는 철조망 울타리가 대부분이다. 오랫동안 그 역할을 하다 보면 녹이 슬어 흉하게 보였다. 하지만 꽃이 피고 새가 우는 탱자나무 울타리는 운치가 있었다. 동네 과수원도 탱자나무 생 울타리를 만들어 도둑이 근접할 수 없게 하였으며, 과수원 주인은 탱자나무를 파수꾼으로 여겨 그 가치가 높았다. 탱자나무 너머로 과일이 익는지 궁금하여 나무 사이로 눈을 돌려 보았지만 보이는 것은 뾰족한 가시가 찌를 태세를 하였다.

 

탱자나무는 5~6월이면 하얀 꽃이 핀다. 잎이 돋아나기 전 꽃이 먼저 피어 더 화려하게 보였다. 꽃이 피고 진 자리에는 푸른 탱자가 동글동글한 얼굴을 내밀었다. 그 모양이 방울토마토가 익기 전의 모양과 비슷했다

그것을 따서 공놀이도 하였다. 단단하게 만들어 놓은 땅에 톡톡 튕기면 용수철이 튀는 힘을 느낄 수 있었다. 손바닥에 닿으면 간지럽기도 하다. 또한 탱자나무 가시는 냇가에서 잡아온 다슬기를 빼먹는데 안성맞춤이었다. 작은 탱자나무는 울타리를 만들지만 우리 집 탱자나무와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그러니 동네서도 알아주는 명품이었다. 돌담 사이에 뿌리를 내리고 서있는 그 자체가 명품나무다. 탱자나무에 참새들이 찾아와 노래도 불렀다. 나도 그 소리에 맞추어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참새들은 가시가 많은 나무 사이를 잘도 피해 다녔다. 살금살금 걸어가서 나무아래 서면 눈치 빠른 참새가족들은 조용하였다. 노랗게 햇살이 물들었다. 가을에 익은 탱자는 귤을 연상케 하였다. 귤나무와 비슷한 점이 많다. 천생에 사촌형제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어머니는 노랗게 익은 탱자가 탐스럽다며 소쿠리에 담아 말렸다. 새콤한 향기가 입에 침을 고이게 했다. 잘 말린 것을 한약방에 가서 팔기도 했다. 노란 탱자는 어머니 향기와 같았다.     

 

겨울이 오면 앙상한 탱자나무는 참새들 놀이터였다. 조잘조잘 지저귐도 더 요란하다. 그 사이에 가족들을 많이 늘렸나 보다. 코흘리개 남자아이들은 참새를 잡기 위해 고무줄로 새총까지 만들었다. 개구쟁이들은 탱자나무를 향해 쏜다. 키가 큰 탱자나무를 쳐다보면서 새총을 겨누기 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때는 고기도 구경하기 어려웠던 시절이었다. 잡아서 구워 먹겠다고 난리를 피웠다. 어디 먹을 게 있다고 그것을 잡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도시에 포장마차 메뉴로 구워 파는 가계들이 있었는데 진짜인지 가짜인지 모르지만 꽤 비싸게 팔려 나갔다는 소문도 들렸다. 참새가족은 더 크게 재잘거렸다. 가시가 박혀 있는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것이 곡예사 같았다. 한 마리도 잡지 못하고 허탕만 쳤다.  위에서 보고 있던 가족들이 짹짹 웃었다.   

 

몇 년 전에 둘러본 그 집은 아직도 남아있었다. 마루는 빛을 잃었고 작은 방은 자질구레한 잡동사니가 자리하고 문풍지는 너덜거렸다. 부엌에는 농기구가 자리 잡고 있었다. 어머니의 하얀 무명치마가 까맣게 변한 모습으로 그려졌다. 언젠가는 이집도 헐리겠지. 명품이라 여겼던 탱자나무도 베어지고 없었다. 순간 가슴이 짠하고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구름을 타고 흘러갔다. 베어진 자리에는 시멘트를 바르고 경운기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 담장도 사라지고 이제는 시골도 많이 변하였다. 철 대문이 자리하고, 울타리도 쇠막대기로 만들어 졌다. 쇠막대로 만든 담장은 꽃나무를 심어야 하지만 탱자나무는 세월이 흘러도 꽃이 피고 새잎이 돋고 참새가 찾아와 놀이를 하였다.  

가시가 수없이 많지만 꽃잎 하나 잎 하나 다치지 않는다. 나에게 어머니는 가시 같은 말을 하지 않았다. 공부도 하지 않고 게으름만 피우는 나에게 탱자탱자 논다고 하였다.  어머니에게 위안이 되었던 탱자나무가 있는 그 집은 추억과 행복을 주었다. 구름은 내 맘을 아는지 하늘나라 어머니에게 흘러 가고 있었다.

 

탱자 꽃말은 추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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