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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명 : 봉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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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독독(讀·毒·獨)    
글쓴이 : 봉혜선    21-06-11 15:43    조회 : 8,007

독독독(··)

 

봉혜선

 

문맥을 따라 흐르며 내용을 따라 주인공이 되는 것은 독서의 자연스러움이라 할 수 있다. 작가가 밝히지 않고 숨긴 의도를 상상으로 짚어 보는 등 책 속에 묻혀 뒹구는 것이 일상이 되어 있다. 글자를 따르는 책 읽기는 때로 옆길을 넘나본다. 책에 적힌 대로의 띄어쓰기를 무시해 다른 단어를 만들거나 앞 뒤 문맥을 떼고 단어만을 뚫어져라 쳐다보기도 한다. 변검술은 수시로 필요한 독서의 기술이 아닐지.

알랭 드 보통의 <<책으로 천 년을 사는 방법>>에 언어유희라고 할 만한 한 획 차이의 글자로 다른 뜻을 뜻하는 유머가 종종 나온다. <순식간에 추악한 말을 하는 방법>단어들이 혐오스러워지는 것은, 단지 그 단어들만 사용하고 다른 수많은 단어들을 사전 속에 썩히는 사람이 우리들을 짜증나게 만들 때이다. (<순식간에>대신에). 곧바로, 한순간에, 눈 깜박할 사이에, 1분 이내에, 번개처럼, 금세, 별안간에, 미처 생각하기도 전에, 몇 십만 분의 1초 사이에, 순간적으로, 찰나에......’.라는 문장에서 멈칫한다. 내 언어의 궁핍함은 얼마나 심한가.

한 가지 뜻을 나타내는 단어가 이렇게 많으니 단어들이, 용어들이, 이름이 다르지만 비슷하게 발음되는 것들은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한동일 <<라틴어 수업>>이 오늘의 첫 책이다. 라틴어 어원에서 파생된 알파벳은 서구 각지로 퍼져 나가며 뜻이 변형되거나 확대 축소된 경우가 허다하다. 동음이의어나 한 끗 차이 나는 단어들로 유추할 수 있는 것들은 비슷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글자가 가지는 일반적인 특성이니 굳이 한국어에만 속하는 경우가 아니다. 글자의 결을 매만질 수 있다면 한 가지라고 우겨볼 수 있지 않을까도.

보르헤스의 <불한당들의 세계사>에 마술사는 창조물들이 가진 원래의 색깔들을 교란시켜 놓았다고 쓰여 있다. 미술과 마술은 내 둔한 손으로는 만지작거릴 수 없다는 의미에서 공통점을 찾는다. 이 역시 격차와 차이를 구분하기 쉽지 않다. 모딜리아니의 사람은 목이 길어져 있고, 팔이 없는 비너스가 불후의 명작이라는 평가는 시대를 막론한다. 마술에 홀리지 않은 다음에야 팔다리가 없는 여인이 아름답다는 걸 얼마나 믿어야 하나. 지금은 무엇보다 얼짱이 최고인 때이다. 성형이 범람하다 못해 성형한 사실을 밝히는 것이 당당한 시절이다. 미인의 가치란 얼마나 찰나적인 기준으로 갈리는 것인가. “모호함과 불확실함이야말로 독서에서 풍부한 상상과 경험을 더 제공해 주지 않나요?”라는 격려의 글까지 찾아내면 손에서 책을 놓을 수 없다.

여름열음이라고 쓰면 왜 안 된다는 거지? 온 데 문을 활짝 여는 계절이니 여름열음이 아니겠나? ‘모든 게 다 열리(, )는 계절이라고 작가 최윤은 썼다. ‘뭉친 것이 풀린 듯한 시간이라고도 썼다. 열매가 열린다는 건 뭉친 생명이 풀리는 증거다.

전산마비전신마비가 되어 다가든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전산이 마비된다면 전신이 마비된 듯 꼼짝 못하는 데가 한두 군데가 아닐 것이다. 어두워진 시간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다면 독서는 가능하지 않을 터이며 그건 나를 마비 상태로 이끌 것이 틀림없다. 전산이 마비된다면 전신이 마비 될 수 있으니 나의 착각은 설득력이 있다? 정기 검진을 해야 하는 신세가 된 눈 속 동공이 40배 확대된 날은 책을 잡을 수 없다. 책을 잡을 수 없는 동안은 전신이 마비된 것과 같다.

꼼짝하지 못하고 책에 잡혀 눈을 떼지 못하고 전신이, 생활이 마비된 듯한 시간 중에도 저녁 식사 준비를 해야 하는 시간은 닥친다. ‘고등국어고등어국으로 읽는다. 고등국어를 보면 고등어로 만든 국을 먹은 만큼의 영양을 얻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독서에 방해가 되니 때로 밥은 좀 먹고 들어 와주라 남편아.

포르노포로로 읽히는 밤. ‘니체는 자꾸 나체로 보인다. 어떤 책이 술술 읽혀 독서를 중단할 수 없는 경우, 작가에 방점을 찍고 작가의 다른 작품을 찾아 읽는다. 독서는 작가 자신에 까지 이른다. 작가는 내 앞에 나름 나체가 된다. 정신의 교유가 그것이다. 니체는 신은 죽었다고 하며 인간으로 살라고, 인간적 매력, 즉 나력(裸力)으로 살라고, 허울을 벗으라고 소리 높이 외친다. <니체는 나체다>에서 우리는 허물을 벗고 봄마다 새로운 껍질을 입는다. 계속해서 더 젊어지고, 더 커지고, 더 강해진다는 문장을 찾아냈다. 독서는 다른 사람과 사고와 상황을 받아들이겠다는 활동이다. 내 마음의 독선(獨善)을 벗어 접어두고 그를 받아들인다.

마이클 둘리는 <<죽은 자들이 알려주고 싶어 하는 10가지>>에서 죽은 후에도 살아있다는 것을 알라고 경종을 울린다. ‘영원과 영혼이라는 글자는 제삿날 모이는 우리를 위무한다. 제사와 차례를 올리며 남은 우리를 무탈하게 지켜주고 소원을 성취하는 데 도와주길 바래왔다. 새로 생겨나는 손자들의 닮은꼴 얼굴에서 조상의 영혼이 돌보아주신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영원히 순환하고 있는 생을 깨닫는다. 조상들을 잊지 않고 기억해야 죽어서도 영혼이 영원히 살 수 있다는 이야기를 담은 애니메이션 <<코코>>를 떠올린다.

지식이 있음 뭐하나라는 문장에서는 지식자식으로 읽혔다. 그렇지. 비슷한 거지. 이해받지 못한 지식은 자식이 찾지 않는 노인처럼 외로우니까 하며 쉽게 넘어간다. 글자들이 지닌 유사점을 설명하면 전혀 이해받지 못하진 않는다. 이런 생각을 소리 내어 말할 상대가 거의 없는 것은 감당해내고 있다.

일상을 최소화하고 하는 독서이다. 독서는 생활의 순서와 자연스러움을 이겨낸다. 종일 잡고 있는 책의 행간을 뒤지고 메우느라 수면 시간은 30분도 되지 않는다. 5시에 일어나는 남편의 눈을 피하느라 잠을 잔 척 불을 꺼야 하는 4시 반 경부터의 30분이 너무나 아깝다. 잡은 책의 마지막 장을 덮어야 일어나 움직이는 매일이 얼마동안이나 이어지고 있는지 모르겠다. 홀로 하는 독서는 맹독을 품은 뱀처럼 나를 물고 늘어진다. 머리는 새로운 개념을 조합해 내느라 작용과 활동을 하고 있을 테고 신경세포인 뉴런은 무엇을 어딘가에 연결하려고 애쓰고 있으리라.

책과의 교응 중 드는 이런 생각이 교환적, 사회적 언어가 아닌 자연 언어의 기본이 되는 정신적 구조 즉, 멘탈레제*(mentalese, 사고 언어)라는 용어에 닿는다. 나만의 독서에서 나온 것이 아니니 더욱 그럴싸하다고 여기며 다시 책으로 행간으로 돌아간다. 배신하지 않고 언제나 기다려 주는 책 속으로. 한밤에 커피를 들고.

*멘탈레제-포도(Fodor)의 가설. 언어가 처리되는 방식으로 사고의 형식이 처리되고 있다는 주장. 사고 역시 표현되어야 하며 언어로 표현될 수 있다는 이론.

                                                                                            <<수필미학 2021, 여름호>> <<현대수필 2022 가을호, 다시 읽는 실험수필>>

봉혜선 ajbongs60318@hanmail.net

서울 출생. <한국산문> 등단. 한국문인 협회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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