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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즐거운 전철    
글쓴이 : 봉혜선    23-09-10 19:16    조회 : 1,672

즐거운 전철


봉혜선

 

  한 곳에서 20년 넘게 살다보면 보통은 근방의 지리와 환경에 익숙해지기 마련이리라. 새로 지어진 아파트에 입주한 지 몇 년 되지 않아 앞에 지하철역이 개통된다는 소식을 들어도 그다지 기쁘지 않았다. 덕분에 집값이 오른다고 들썩거려도 무관심했던 것 역시 마찬가지 이유에서였다. 내가 전철을 타고 꼭 가야할 곳은 남편 심부름쯤으로 그 외에 나갈 일이라고는 거의 없었다.

 움직이기 싫어하고 게으른 나는 그렇지 못하니 보통도 되지 못하나보다. 대중교통으로 어딜 가는데 도통 서툴어도 괜찮았다. 그런 내가 요 근래 집을 박차듯 뛰쳐나와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두 군데 정기적인 외출을 만들었다. 모두 전철이 닿을 수 있느냐의 여부를 전제로 두었음은 물론이다. 길이 복잡하면 집에 돌아오다 길을 잃을지도 모르는 길치가 되어버렸으니.

 전철 표가 내장되어 있는 카드를 신청했다. 일부러 500원을 더 내고 일회용 교통카드도 뽑아보았다. ‘환불한 동전을 열 개도 더 모아 짤랑거리며 길을 잃을 수도 없는 전철의 친절한 수많은 표지판을 따라다닌다. 얼뜨기처럼 보이지 않을까 하는 염려를 하며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하게 하나하나 살펴본다. 아무도 관심 두지 않는 무관심이 오히려 고마워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가 가로저어도 본다. 그간의 세월이 억울하다, 지금이 기쁘다고 생각하기로 한다.

 좌석 끝부터 앉는 사람들을 살필 수 있는 것은 전철 종점 부근에 사는 특권이다. 빈자리가 그득하다. 띄어 앉기의 예의로는 각 좌석의 끝자리가 우선순위다. 승객이 많아 좌석이 없는 어디에서나 구석은 방해와 관심을 거부하는 이들의 안식처인가 보다. 혼자 있기가 두려워 휴대폰을 놓지 못하고, 있을지 모르는 위안 상대를 찾아 나선 길에서도 사람들은 섬처럼 떨어져 앉는다. 원래 혼자인 것이 진정한 모습이던가. 홀로 왔다가 홀로 가는 인생처럼 외로움은 친숙해 보인다.

 집안에 들어앉아 읽던 책을 접어놓고 나온 눈에는 글에서만 엿보던 사람들이 살아나와 입체가 되는 현실이 놀랍기만 하다. 전철 안을 가득 메운 무표정의 얼굴 각각이 책에 나오는 누군가를 닮았다. 승객들은 단순한 선남선녀가 아니다. 모두가 주인공인 인생을 살고 있고 각각의 사연을 지닌 주연 배우이다. 실연과 아픔과 비련의 주인공들과 친구들, 서술자들, 사랑에 빠졌거나 합격하거나 또 다른 기쁨을 감춘 이들이 포커페이스로 자신을 무장하고 있다. 책에 나오는 구절 중 알맞은 서술을 떠올려보기도 한다. 상상으로만 그려본 적 있는 소설 속 주인공 같은 옷차림과 표정을 한 모습을 눈앞에서 맞대면하는 전철 안 풍경에 적응하기는 쉽지 않다.

 화려한 TV 드라마에 나오는 비현실적인 주인공들과는 다르다. 무슨 인연으로 나와 같은 날, 같은 시간, 같은 방향으로 가는 전철에서 앞과 옆에 같이 있더란 말이냐. 대개 휴대폰을 들여다보거나 귀에 이어폰을 꽂은 체 말하는 모습이다. 고개 숙인 누구에게든 엷은 미소를 보내보고 싶다. 보이지 않는 귓속의 상대에게 마음을 보이며 마주 보이는 사람이 누구든 그에게 미소 짓거나 인상을 쓴다. 그 눈에 보이는, 마주앉은 나에게 관계없는 사건에 말려드는 느낌과 사고에 끼인 느낌을 준다. 혼자 하는 웅얼거림에 귀를 댔다가 사생활에 너무 가까이 침투하는 나를 곧추세운다.

 크게 통화하는 사람을 흘겨보았다. 다음 순간 홀연히 울리는 익숙한 전화벨 소리. 나를 꼬아보는 타인들의 시선을 통해 나를 의심한다. 타인의 통화 소리에 눈을 흘긴 바로 전의 상황을 상기하며 입을 막고 통화하지만 내 통화 목소리 크기를 짐작할 수 없다. 내 입도 마스크 속에 갇혀 있어 목소리가 커졌다는 것이 실감나지 않는 것이다. 내게 들려야 소리가 난다는 것을 알아챈다. 아니, 귀는 소리 내는 입 가까이 있으면서도 독립적인 기관인 걸까. 얼굴에 붙어 있지 않고 얼굴 옆에 자리 잡은 탓에 굳이 따지자면 얼굴이랄 수 없는 기관이 귀가 아닌지 생각해 본다. 일상적으로 생각하던 평범한 일이나 현상에 관심을 쏟을 수 있는 것도 전철 안에서 누리는 특권이다. 바쁘고 일 많은 일상에서 떨어져 손은 쉴 수 있는 자리이다.

 시간대 별로 지하철에 오른 모습은 매우 다르다. 아침 지하철은 설레고 상기된 표정이 짓는 삶의 현장이며 서 있는 사람들의 공동 장소다. 끝도 없이 부지런히 움직이는 사람들은 구부정한 등으로 계단을 오르고 또 내려간다. 한 노선에서 다른 노선으로 끊임없이 갈아탄다. 에스컬레이터에서는 걷지 말라는 안내판과 관계없이 부지런한 개미처럼, 꿀에 이끌린 벌처럼 움직인다. 이렇게 퍼렇게 움직이고 숨 쉬는 살아가는 사람들이 사는 역동적인 바깥 대신 돈 들이고 시간을 허비하며 스텝박스를 오르내리며 운동 잘한다고 자위하며 지냈으니 혼란스럽다.

 환승역에 앉아 잠시 숨을 고른다. 바깥으로 계속 빠져나가고 연이어 들어오는 지하철을 느껴본다. 지하철은 인생과 닮았다. 흔히 인생을 여행에 비유한다. 여행(旅行)을 한자로 풀자면 나그네처럼 다니는 것이니 다니는 것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목표를 향해 부지런히 움직이는 과정의 연속이 인생이 아니던가. 지하철은 목적지에 도달하기 위한 과정이며 수단이다. 죽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닌 것처럼 살아간다는 것이 더 중요하다. 걷기 위해 나오거나 길 위에 있기 위해 나온 사람들은 아닐지라도 움직이고 이동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살아있는 현장에 나와 있는 감격이란.

 여행을 꿈꾸며 제 1번으로 꼽고 있는 것은 시베리아 횡단 열차다. 목적지에 도착하는 여행도 좋지만 여정이 없다면 진정한 여행이 아닐지 모른다. ‘일상이 싱겁거든 여행으로 간을 맞추라고 역설하는 지인의 말에 흔쾌히 동의하지 못했다. 집안에 들어앉아 책을 읽으면서도 일상을 잊을 수 있고 나름 즐거웠으니까. 낯선 곳으로 떠나는 전철은 보는 것만으로도 역동적이 된다.

 「즐거운 바깥을 쓴 시인 홍수연의 마음도 이러했으리라. ‘바깥은 안보다 역동적이며 철학적이다/ 정신 나간 이들이 떼 지어 싸돌아다니는 곳이 바깥이라는/ 전근대적 사고를 버리기로 한다 //~ 바깥은 안보다 친절하다//~ , 즐거운 바깥.

 길에서 매번 전혀 다른 사람들을 살필 수 있다는 것이 새롭고 경이롭다. 나서면 보이는 일상의 모습에 낯설어 한 이유? 보통의 사람들에게는 평범한 일상이 내게는 허용되지 않았다. 사람은 섞일 때 진정한 인간이 아니던가. “띠리리리전철이 들고 나는 소리가 선명한 개나리 색만큼 명쾌하다. 도착을 알리는 소리는 삶의 출발을 알리는 종소리이다. 이번에는 타야 하리. 용기를 내 나선 길이니 웃음 웃고 싶다.

*제목 즐거운 전철은 홍수연 시의 제목 즐거운 바깥에서 모티브를 얻었습니다.

  <<문학사계>> 87. 2023,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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