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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글쓴이 : 봉혜선    24-03-14 09:27    조회 : 1,030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봉혜선


 이틀 째 되는 날이었고 일요일이었다. 갈수록 조문객들이 밀려들어왔다. 겨울 내내 이어진 가뭄을 해갈하듯 많은 비가 쏟아졌다. 비가 언제 그칠 것이라는 예보는 들을 수 없었다. 성가신 비를 무릅쓰고 찾아오는 조문객에게 더욱 머리를 조아리게 했다. 비를 닮듯 쉼 없이 눈물이 흐르는 날이었다. 빗물과 눈물은 마르지도 그치지도 않았다. 엄마의 지금 상태처럼 비는 늦었다, 많다 불평 없이 그저 받아들여야 한다, 대자연을 엄마에 비견하는 연유일 것이다.

 영원한 마음의 고향, 내 마음의 안주인이 눈을 뜨지 않기로 한 모양입니다. 서로의 역할이 있습니다. 톱니 하나가 빠졌습니다. 가장 중심에 있는 가장 둥그렇고 가장 큰 톱니입니다. 더구나 정해진 대로가 아닌 버티는 대, 축이 부러졌습니다. 덜거덕거리지 않으려고 모두 모여들었습니다.

 비가 그쳐도 올 봄은 봄이 생략되어 버릴 것도 같습니다. 봄은 없습니다. 어쩌면 영영 봄이 오지 않을 것만 같습니다. 사라졌습니다. 겨울은 오래 이어질 것 같아요. 4월에도 눈이 내리는 시대이니 3월의 날은 겨울이에요. 엄마는 봄을 데려갔습니다.

 음식상을 받으러 간 사람이 두고 간 우산에서 흘러내린 빗물을 닦는 손길을 보았다. 눈물을 닦아주고 싶은 마음이 담긴 그 손길.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는 것이다. 우산 속에 웅크린 조문객들이 여느 때의 나처럼 성가셔할 모습이 떠오른다. 하늘도 무심하시지. 착하게 조문을 하는 길인데 비까지 내리시다니. 비 오는 날의 문상이 힘든 걸 아시는 데도, 하늘도 슬픈 날이든가.

 떡을 더 주문해야겠다는 도우미의 말에 선선히 그러라고 말한 기억이 난다문상 온 친구를 주겠다며 아버지는 떡을 주머니가 불룩하게 넣으셨다집에 가서 드신다고 떡을 챙기신 아버지... .  아버지께 알아듣게 설명하기는 얼마나 어려운 일이던지. 엄마 없는 집에서 홀로 떡으로 끼니를 이을 아버지 모습에 돌아서며 목이 메었다.

 하늘나라로 가신다는 말이 생각나도 하늘을 쳐다볼 수는 없어요. 빨래를 했다면 마를 걱정을 하며 하늘의 동태를 살폈을까요. 하늘을 올려다 볼 수도 없고 시간도 마음도 흐르지 않는 이틀이 지나요. 검은 옷을 입고 있는 날들이지요. 그 후로도 오랫동안 벗지 못할.

 화장터가 만원이라 해서 장례식장을 비우고도 5일장을 치르듯 대기 상태였다. 바이러스가 세상을 지배한 하수상한 시기다. 5일로 나간 부고장으로 헛걸음 한 문상객들의 인사도 있었다. 코로가-19로 결혼식이나 문상이니 장례가 더 없는 혼선을 빚는 때였다파장한 식장으로 뒤늦은 조화(弔花)가 줄을 이었다고 했다

 한결 푸석해진 모습으로 만난 식구들이 새벽에 버스에 올랐어요. 아무도 봄맞이를 할 것 같지 않을 표정. 누구도 눈을 마주치지 못했고 각자 서로를 피해 구석으로 숨었어요. 아버지 머리를 눅진하게 누르는 흰 빛이 광채를 잃어 푸석합니다. 엄마가 보셨다면 그런 모습으로는 나설 수 없게 했을 헤어스타일이라 엄마 없이 지낼 앞날을 짐작하게 하는.

 형상이 사라져 볼 수 없고 만질 수 없으되 느낌은 여전한 엄마의 따끈한 뼛가루를 싣고 달리는 길. 새 계절의 풍경인 강가에 줄 선 구름 같은 벚꽃. 부옇게 아슴아슴해 흰빛도 봄빛도 아닌 형상. 하나는 이승이요, 강에 빠져있는 그림자는 형상이 있으되 만질 수 없으니 저승이 아닌가요. 강 건너 만개한 목련꽃의 흰빛 풍경은 하얀 무덤이 아닌가요. 벌어진 목련은 예정된 낙화의 순서를 기다리는 것일 뿐이에요 목련은 제단 위에 켜진 촛불 닮은 봉오리인 채로 있을 작정으로 보입니다.

 '내가 살아온 날들은/ 내 죽음이 함께 살아온 날들/살아있음의 뒤켠이/ 생생하게 살아있는 나의 죽음/거울의 배면이다//내가 살아야 내 죽음도 이렇게 살아 있다/내가 죽어야/ 내 죽음도 죽는다.' (내가 죽어야 내 죽음도 죽는다)이문재 시인은 나이가 들면 죽음에도 원숙해져서 죽음이 생각의 안쪽으로 들어와 한 자리를 차지한다고 했어요. 자기와 죽음을 분리하는 것도 놀랍지 않나요. 죽음과 어깨동무 한 채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만은 잊고 있지만 이제는 더 이상 그럴 수 없을 것 같아요.

 기억과 추억으로만 남은 엄마어둠 속에서만 피어오를 새싹하얀 튤립에는 귀기만 어려 있어요엄마, 나를 낳지 말으시지요. 이런 헤어짐이라니요. 아무 것도 남지 않은 마음. 마음 버리기 연습을 해야겠어요.

 ‘어쩌면 우리가 나는 법을 알지 못하는 건 고통의 순간을 참지 못하고 자꾸만 날개가 잘렸기 때문이다. 고통의 순간이 다가올 때 삶의 크고 작은 순간순간 속에서 재생의 시간을, 빈 시간을 받아들이자. 그러면 우리에게 있던 근원의 힘과 활력을 되찾을 것이고 새처럼 한없이 가벼워질 것이다.’ ‘오늘의 좋은 글을 소리 내어 보지만 어떤 글도 나를 말해주지, 아니 아무 글도 나를 가볍게 해주지 못한다. 애인이든 친구든 헤어진다는 것은 이별이든 별리든 하나의 세계를 잃어버리는 것. 애인이자 친구이자 나이 들어가며 딸과 엄마의 위치를 바꾸자는 요구에도 응해주던 엄마. 엄마.

 남매들, 들어줘. 그렇게 좋아하는 엄마가 나를 고해의 바다에 집어던지진 않았을 거라고 생각해. 그래서 잘 지내보려고. 그게 좋잖아. 어떻게든 살아야 한다면 잘 사는 것이 좋고 즐겁게 사는 것이 좋고 행복하게 사는 것이 좋겠지. 참고 견뎌야 한다면 그 또한 참고 견디면 되는 거지. 우리 그 정도는 되잖아. 우리 엄마 아빠가 그만큼은 우릴 키웠잖아. 날 그만큼 사랑한다고 생각해야지?

 “삼가 받듭니다. “그래라고 하신 말씀이 유언으로 남았습니다. 전체를 긍정하셨고 잘 살고 먼저 간다고 두 번이나 또렷이 말씀하셨습니다. 온화함과 자애로움을 끝까지 놓지 않았습니다. 제가 떠 넣어드리는 대로 미음으로 연속 두 끼를 드셨습니다. 그리고는 소원처럼, 오복처럼 자는 중에 생을 놓으셨습니다. ()타원님! 49재동안 계송을 읊조리는 중에 드는 한 가지 걱정은 아픈 다리를 어디에 지탱해 그 먼 길을 홀로 가실까 하는 것입니다. 부축해 드리러 가고 싶나이다. 헤어지는 고통이 이럴 줄 몰랐습니다. 윤회에서 벗어나 다시는 오지 마십시오. 아라한(阿羅漢)이 되시기를 빌고 빕니다.

 아침이 와도 할 일이 없어요. 올 봄은 유난히 흐릿합니다. 색을 지니지 못한 꽃들이 피는 것도 보지 못했는데 공중과 바닥에 떨어진 모습만 그득합니다. 그 꽃자리를 밟지 못해 발은 공중에 있습니다. 봄은 오랫동안 오지 않겠어요. 아무 데도 마음 둘 수 없는 큰 딸 올립니다.”

 <<에세이문학>>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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