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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랑에 빠지다    
글쓴이 : 봉혜선    22-12-14 08:54    조회 : 2,589

노랑에 빠지다

 

봉혜선

ajbongs60318@hanmail.net

 

 ‘노랑하면 무엇이 가장 먼저 떠 오르냐 하면요. “저기 노랑나비가 날아요!”희망이라는 계절 봄은 푸릇푸릇한가요? 봄은 아무래도 노랑으로 시작한다고 해야 할 거예요. 복수초는 떨면서 얼음 사이에서 솟아요. 마치 태양이 겨울에도 당당하듯 노랑은 봄을 밀어 올려요. 아슴아슴 노란 산수유, 생강나무는 노란 봄이에요. 개나리의 샛노란 색이 없다면 진정한 봄이 아니라고 말해야 할 거예요. 겨울 눈을 흉내 낸 하얀 꽃을 가리켜 봄의 전령이라 할 수는 없겠지요. 노랑은 싱그러운 시작의 색이예요.

 계란 노른자의 동그랗고 선명한 노랑을 보노라면 바쁜 아침 시간마저 푸근함에 휩싸여요. 흰자와 섞어 풀어도 노랑으로 변하니 노랑의 확산 세는 거침이 없어요. 소풍 나온 유아들의 노란 발걸음은 위태하지만 톡 쏘는 설렘을 안겨주어요. 그 노랗고 여린 노랑은 눈과 마음을 번쩍 뜨게 만들어요. 노랗고 작은 병아리 앞에 모여 작고 뾰족한 입을 한 채 병아리를 가리키는 아이들에게서 느껴지는 희망의 빛은 노랑이 아닌가요? 노랑은 순수하며 또한 생명의 색이 아닐는지요.

 생명을 키우는 에너지를 가리키는 근본의 색 노랑이 기준이에요. 오방색이 흙을 가리키는 노랑을 기준으로 봄여름가을겨울을 상징하는 파랑, 빨강, 흰색, 검정이라는 것 아시잖아요. 일출의 기운도 노랗게 시작해 붉은 기운으로 번져요. “아침 해는 마치 작은 비행기가 방향을 틀듯이 올라와 멈칫거린다. 온종일 사내의 눈이 자각하는 것은 노랑이며 손을 통해 나타나는 것도 노랑이어서 설사 그것이 노랑이 못 된다 할지라도 해 아래 흔적들은 노랗다. 그러니 해는 벌써 할 일을 다 한 것 같다.” 화가 변시지(1926~)아침 해에 황학주 시인이 덧붙인 감상 글을 봤어요.

 그러고 보니 촛불 심지의 색도 같아요. 형광등 불빛 아래에서보다 노란 전구 아래에서 더 예뻐 보이니 노랑에는 뭔가 있는 것이 분명해요. 친구와 테이블 조명이 하얀 돈까츠 집을 그냥 나온 적이 있어요. 아마도 무드가 모자란다고 생각해서였을 거예요. 노랗게 뜬 별빛을 받으며 그리고 달밤 아래에서 지은 낭만시가 얼마나 많이 전해 내려오고 있는지 아시고 계시지요. 이백이 달을 칭송한 건 혹 노랑에 취해서가 아닐까도 생각해 봐요.

 가을 허공을 가득 채우며 내려오는 노란 은행잎은 축복이지요. 은행잎이 떨어진 포도를 요즘은 일부러 놔둔다지요? 노랗게 물든 길은 우리를 사색의 장으로 이끌어 주어요. 천천히 걷고 생각할 사색을 허락해 주는 계절의 마지막 풍경이에요. 사색이 없는 생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아닌지요. 노랗게 영근 모과가 맑은 하늘을 배경으로 중력을 무시하고 옆으로도, 위로도 솟아있어요. 논에서 영그는 노랑으로 풍성해져 존재하는 기쁨을 누려요. 다가오는 겨울을 거뜬히 버틸 수 있는 위안을 받아요. 노랑 덕분이에요. 고맙습니다.

 노랑 양말을 샀어요. 신으니 흰 옷 차림에는 물든 듯 어울려 보여요. 상하를 흑백으로 입은 차림에도 썩 어울리네요. 검은 색 옷에는 심심하지 않아요. 삼원색끼리이니 빨강 티셔츠와 청바지 차림에도 자연스러워요. 숨겨 놓은 밝은 마음을 발에서라도 발견해 주니 좋아요. 흥겨워지네요. 사계절 노란 가벼움이 하늘에 닿을 듯해요.

 수영장 물속에서 주황, 연두, 노랑 등 형광색은 눈에 잘 띄어요. 그렇지만 초보로서는 무리인 색이죠. 뚱뚱하고 수영 초보 시절에는 색도 무늬도 무난한 수영복이 제격이죠. 상급자반에 올라갈수록 수영복을 고르는 기준이 달라요. 어느새 17년 동안 수영을 했네요. 마음먹고 노란 수영복을 입기로 해요. 형광 빛 선명한 색이 멋지고 고급스러워 보여요. 가격도 물론 달라요. 그래도 나는 특별하니 사요.

 물 밖으로 나오는 시간이 별로 없고탱크라는 별명을 받아 거칠 것 없던 시기였어요. 눈앞에 닥친 이런저런 상황들을 어찌할 수 없을 때면 잠시 미뤄두고 물속에 들어가 뱅뱅 돌아요. 강사가 지금까지 세 사람에게만 주었다는 노란 모자를 받고 의기양양했어요. 남편은 수영에 대한 내 열망을 알아주지 않아요. 작은 수영장에서 잘한다고 우쭐대봐야 우물 안 개구리라고, 진짜 잘하는 사람들은 나오지 않는다고 기를 꺾으며 대회에 나가지 말라고 했어요. 대회에 참가하라는 제안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하는 수영은 울분을 잠재워야 했으므로 탈출구가 있어야 했어요. 나를 방해하거나 규칙에서 벗어나는 행동을 가차 없이 지적했어요. 노란 모자를 보고도 알아보지 않는다며 서 있거나 수다 떠는 사람들에 함부로 비키라거나 나가라며 충고했어요. 낯모르는 사람에게도 함부로 가르치려 들었어요. 노란 모자를 쓰고 들어온 초짜에게 기어이 벗으라고, 아무나 쓰는 색이 아니라고 다른 색을 쓰라고 말하기까지 했어요.

 그러나 아차, 노랑은 경계의 색이에요. 남편에게 인정받지 못한 어쭙잖은 실력과 노란 모자는 남을 제치고 수영장을 제 집처럼 사용하라는 허가증이 아니었어요. 거리에서 가장 쉽게 자주 눈에 띄는 색은 노랑이 아닌지요. 집 밖은 위험하다는 말이 진심인가요. 그럼 노랑은 그 사실을 알려주려 거리에 가득 찬 색이네요. 신호등 속 빨강과 초록은 보색인데요. 통과를 가리키는 초록불과 불통과 정지를 명하는 빨간불 중간에서 양쪽을 무마해주는 색은 노랑이예요. 어느 쪽에 속해도 조금은 배려 가능한. 어느 쪽에라도 얼른 넘어가라거나 멈추는 동안 기다려주겠다고 말해요. 노랑은 남 보고 피해 가라는 색이 아니라 배려하는 색이네요.

 사람이 가득 선 건널목 발아래 불 켠 노란 선이 선명해요. 오장 7부라 일컬어지는 휴대폰으로 눈이 혹사당하고 있어요. 앞을 보며 걷지 않으니 경고용 가리개를 보지 못하거나 사건 사고가 옆에 다가온다는 것을 알아채기도 어려워요. 언제 눈을 잃어 노란 보호색, 실은 앞이 보이지 않는 이에게는 쓸모없는 색이기도 한 노란 선 위 울퉁불퉁한 데를 지팡이로 짚어가며 불편한 걸음을 걸어야 할지 몰라요. 지금은 점자 같은 그 노란 선을 피해 걷네요. 그러니 거리에 즐비한 노랑은 눈 뜨고 걷는 뭇사람이 경계해야 하는 친절한 경고등이에요. 얇게 그은 노란 중앙선을 경계로 다른 길을 가는 질서정연한 차량의 행렬은 아름다워요. 전철을 기다리는 중에도 노란 선 안에만 서면 안전해요.

 거리 공사장이나 경계 표시 가로대 하면 대번 검은 바탕에 그어진 노랑 줄무늬가 떠오르지요. 유난히 큰 키의 기린도 독한 침을 지닌 벌의 무늬도 같고요. 가까이 가지 않는다면 위험하지 않아요. 노랑 장미의 꽃말은 영원한 사랑, 변치 않는 우정이래요. 또 있어요. 모든 생명 있는 것들이나 일의 속성이 그러하듯 양면성을 가지고 있어서 노랑 장미는 이별, 질투, 시기를 의미하기도 한대요. 사랑이 식은 상대에게 꽃을 선물해 봐요. 이별의 노랑 장미를요. 이왕이면 시든 꽃으로요.

 자, 우리 이제 이야기의 끝을 맺기로 해요. 노랑은 끝을 의미하기도 하네요. 앞날이 노랗다, 하늘이 노랗다. 그러니 경계하기로 해요. 고흐는 그가 그린 노란 <해바라기>만 한 진한 생을 인정받고 있어요. 노랑은 또한 재운을 의미한대요. 죽어서 빛을 보는군요. 모든 노랑에 빠져요.

<<에세이문학, 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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