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물찾기
김늘
초등학교 시절 소풍 가면 하는 게임이 꼭 있다. 보물 찾기이다. 수풀이나 나뭇가지 또는 돌 틈에 접힌 쪽지를 찾으면 선생님께 가서 상품을 받는다. 친구들은 학용품이나 장난감 등을 받아 가는데 나는 ‘꽝’이나 ‘다음 기회에’를 찾아서 선생님께 가져갈 수가 없었다. 자랑하는 친구들이 부럽기도 하고 나는 왜 보물 찾기를 못할까 생각하며 아무것도 받지 못한 것이 속상하기도 하였다.
세월이 흐르자 행운권 추첨으로 게임 형태가 바뀌었다. 하지만 역시 내게는 행운이 오지 않았다. 옆자리 앞자리 뒷자리 앉은 사람은 추첨에 뽑혀서 기뻐 날 뛰다가 선물을 받아오는데 나만 빈손이다. ‘저 선물들 별것 아닐 거야’라고 스스로를 위로하면서 공짜가 생겨서 가져가는 행운의 복은 내게 없다고 생각하자 마음이 편해졌다.
80년대 교사 초년 시절, 퇴근 후에 교사들은 고스톱을 치는 것이 일과였다. 어느 날 동료 여교사가 집으로 날 초대했다. 그 선생님 남편이 근무하는 학교의 남 교사도 와 있었다. 처녀 총각을 연결해주고자 하는 깊은 뜻을 가지고 모인 것이다. 저녁을 간단히 먹고 고스톱으로 무료한 저녁 시간을 재미있게 보냈다. 난 한 번도 고스톱을 해 본 경험이 없기에 그제야 고스톱 룰을 배워가며 게임을 했다. 몇 번하지 않았는데 초보자인 내가 제법 많은 금액을 땄던 것을 기억한다. 다음날 저녁값으로 모두 지불하기는 했지만 나에게 ‘초심자의 행운’이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30여 년 평교사 생활을 하면서 ‘어떻게 하면 학생들이 음악 이론을 잘 알게 할까, 어떻게 하면 음악을 아름답게 느끼게 할까’를 연구하였다. 화음을 쉽게 이해하기 위해 젠가를 사용하여 수업한 것, 슈베르트 ‘마왕’으로 조별 오페레타를 꾸며 본 것, 미디어를 활용하여 ‘서편제’의 진도 아리랑을 수업한 것 등, 이런 것은 내가 스스로 찾은 보물이었다. 이런 보물 덕분에 관리자가 되어 10여 년을 보냈다. 위기가 왔을 때 함께하는 이들과 겪어냈던 일들, 어렵게 하는 학부모와 학생을 위한 간절한 기도는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내가 찾은 보물이다.
사람들은 보물 찾는 것을 좋아한다. 보물을 찾기 위해 바다 깊은 곳으로 내려가고 산속으로 사막으로 찾아다닌다. 왜 보물을 찾으려 하는 것일까? 보물을 찾기 위해 멀리 여행을 떠나는 ‘연금술사’의 주인공 양치기 산티아고가 사막에서 만난 여인 파티마를 보물이라 생각하기도 했다. 거기서 멈추었다면 안락을 누릴 수 있었지만 자아의 신화를 위해 다시 길을 떠난다. 안정된 삶에서 다른 것을 향한 도전은 다소 무모한 듯 보일지라도 그것은 값으로 치를 수 없는 보물이다. 이런 것을 보물로 볼 수 있는 안목이 필요하다. 보물은 금은보화만이 아니라 우리가 겪는 많은 경험도 보물이 되어 삶을 풍요롭게 한다. ‘젊어서 하는 고생은 사서도 한다’고 하지 않던가.
정년 후의 생활 속에서 나는 또 다른 보물을 찾았다. 산티아고처럼 방랑의 삶과는 다르지만 내가 있는 곳에서 나만의 방식으로 찾은 보물이다. 남아공에서 온 여학생과 한국어 수업을 줌으로 하고 있다. 그녀의 한국어에 대한 모든 실수를 괜찮다고 말해주며 웃고 있는 줌 화면에 비친 내 모습은 너그러운 엄마이고 자애로운 할머니다. 한 학기 수업 마칠 때 그 여학생은 “내 선생님 인내심 많아요” 라고 소감을 발표하였다. 끝까지 기다리고 용납해주며 응원하는 수업을 예전 평교사 생활 때 했으면 훨씬 더 좋은 보물들이 내 곁에 있었을 텐데라는 생각을 해 보았다. 지금이라도 새로 발견한 나의 보물, 너그럽고 자애로운 마음을 먼저 남편에게 그리고 이웃에게도 펼쳐 보이리라. 또 다른 보물이 내 옆으로 다가와 있을 것을 믿으며 그것으로 자아의 신화를 이루어 보고 싶다. 보물은 일상에서 가까운 곳에서도 찾을 수 있다. 무언가를 간절히 원할 때 온 우주는 소망이 실현되도록 도와준다는 말을 기억하며 또 다른 내 자아의 신화를 구축해본다. 초등학교 때 찾지 못한 보물이 인생 말년에 찾아진 듯하여 기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