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로운 군무
김늘
얼마 전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렸던 앙리 마티스의 특별전(21.12.21~22.04.10) ‘라이프 앤 조이’전에 다녀왔다. 그는 강렬한 원색과 거친 형태를 특징으로 하는 야수파의 창시자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번 전시는 판화와 컷아웃 작품 위주여서 그래픽 아티스트로의 마티스를 만날 수 있었다. 야수파 그림의 진수를 볼 수 없는 아쉬운 마음에 그의 작품들을 검색해 보았다. 여러 작품 중 「댄스」가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영국 『가디언』 신문은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미술품’ 걸잘 20선 중 하나로 뽑았다.
다섯 명이 벗은 몸으로 손을 잡고 춤을 추고 있다. 모두 집중한 듯 열중하고 있다. 여럿이 함께하는데 춤사위는 일정치 않다. 오른 다리 올린 사람 두 명, 왼 다리 올린 사람 한 명, 넘어질 듯한 사람 한 명, 제대로 서서 추는 사람 한 명이다. 표정은 한 사람만 겨우 보인다. 취한 듯 살며시 눈을 감고 자유롭다.
이 그림의 처음 느낌은 열정이다. 하나님의 언약궤를 기럇여아림에서 예루살렘으로 가져오는 것이 기뻐서 옷이 벗어지도록 춤추었던 다윗이 생각났다. “다윗이 여호와 앞에서 힘을 다해 춤을 추는데 그때에 다윗이 베 에봇을 입었더라.(사무엘 하 6:14)” 춤을 추는 즐거움에 몰입하는 열정이다. 두 번째는 강렬함이다. 야외인지 실내인지 장소를 알 수 없는 공간이지만 색감도 초록과 파랑의 원색 바탕이다. 사람들의 벗은 몸은 붉은색이다. 근육질의 굵은 허벅지까지도 강렬함을 나타낸다. 세 번째는 당당함이다. 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않은 아담과 하와(창세기 2:25)처럼 치부를 보여줄 수 있어도 부끄러워하지 않고 살았던 낙원에서 춤을 추며 즐거워한다.
작품 중심에 있는 사람이 지은 취한 듯한 표정은 예전에 경험했던 내 모습과도 같다. 밀레니엄의 새 시대를 두려움으로 맞이했던 2000년 2월, 충북 옥산 중학교에 5년을 근무하고 인근 학교로 발령이 나서 떠날 때 송별회를 하였다. 회식 후 젊은 선생님들과 노래방엘 갔다. 송별은 아쉬운 것이 아니었다. 우리는 너무 즐겁게 시간을 보냈다. 한 사람이 마이크를 잡고 노래를 부르면 모두 중앙으로 나가 춤을 추었다. 배워서 추는 춤이 아니다. 자유롭게 흔들어댄다. 이때 난 무아지경이 되어 취한 듯 나도 모르게 손과 발이 움직이며 춤을 추던 나를 발견하였다. 마치 그림 속 가운데 사람처럼 눈을 지그시 감고 있었다. ‘정말 즐거움을 만끽하며 춤을 추니 이렇게 춤이 추어지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일은 내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화가는 열정적인 한 사람에게만 대표적으로 표정을 그려 넣었다. 다른 사람들의 표정은 상상해 보라는 듯 뒷모습을 그렸다. 그들의 다른 표정을 상상해 본다. 입꼬리는 올라가 배시시 하고, 어떤 이는 헤벌레 웃고 있다. 눈은 부드럽게 감은 채로 힘이 풀려 모든 것을 용서하고 허용할 수 있는 넉넉함으로 웃음 짓고 있다.
다섯 명이 함께 하지만 춤사위가 맞지 않는 동작은 내가 노래방에서 추었던 춤과 비슷하다. 자유로움이다. 군무의 특징인 일사불란한 춤이 아니라 각자의 개성을 존중하며 마음껏 즐기고 기쁨을 나누었으면 하는 마음을 마티스는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은 것은 아니었을까.
어릴 때 친구들과 다툼이 있을 때 했던 말들이 생각난다. ‘남이야 전봇대로 이를 쑤시던 말든 무슨 상관이야!’ ‘남이야 오강으로 꽈리를 불던 말든 무슨 상관이야!’ 내게는 남에게 구속받지 않고 얽매이지 않을 권리가 있다고 주장하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나의 행동과 언어가 상대방에게 문제가 되고 피해가 되었기에 다툼이 되었다. 그 당시 나는 권리와 자유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해 봤어야 했다. 내가 그것을 누리기 위해 남에게 피해를 주고 인격을 무시하는 행동이나 언어를 사용하는 것은 자유가 아니고 남용이다. 내가 밟는 스텝이 남의 발을 밟지 않아야 하고 내가 흔드는 팔이 남의 얼굴을 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진정한 자유로움이다.
춤사위는 자유로운 모습이지만 손을 잡고 있는 것은 이 사회가 함께 사는 세상, 더불어 같이 하는 세상임을 강력하게 알게 하려는 작가의 의도가 보인다. 이 작품의 모습과 유사한 것으로 우리나라 춤 중에 강강술래가 있다. 여자들이 손을 잡고 원을 그리며 추는 춤이다. 강강의 ‘강’은 주위, 원이라는 뜻의 전라도 방언이고 술래는 한자어 순라(巡邏)에서 온 말로 ‘주위를 경계하라’는 구호이다. 실제로 임진왜란 때 우리 군사가 적어서 일본군을 속이기 위해 여자들이 횃불을 두 개씩 들고 보름달 밑에서 군사들이 많아 보이게 하는 전략으로 썼다. 재미있는 놀이로서의 춤이기도 하지만 다 같이 놀았기에 나라를 위하는 일에도 쓰임을 받았다. 요즘 혼술, 혼밥이 유행이고 대세라 하지만 사진 찍어 SNS에 올리는 것은 함께하고픈 마음을 전하는 것이리라.
지난해 강서구청에서는 마을공동체 사업을 하였다. ‘마실하모사랑단’이라는 이름으로 모인 하모니카 연주 친목 단체이다. 회원은 16명 정도이고 내가 대표 제안자로 제안서를 제출하였다. 두 명의 대표 제안자가 더 있고 실무책임자 한 명, 이렇게 네 명이 임원이다. 구청으로부터 약간의 지원금을 받아 운영하므로 여러 절차와 사업 진행이 필요했다.
코로나 시기로 모이기 어려운 가운데 4명 모임 원칙을 지키기 위해 투명 칸막이를 설치하여 매주 연습하였다. 회원들은 한 번 연습에 오지만 지도하는 나와 다른 선생님은 두 번씩 시간을 내야 했다. 활동 중 틈틈이 향상음악회, 연주 봉사, 야외연습도 하였다. 11월엔 모임을 결산하는 정기연주회를 하였다. 평균 나이 68세 동네 어르신의 모임이니 나서서 일 처리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대표 제안자 한 분은 코로나가 걱정 되어 나오지 않았고 또 한 분은 컴퓨터 일은 잘못하신다고 간식 정도 구입하여 주는 일을 도와주셨다. 실무책임자는 회계처리를 전산으로 해야 하는데 건강상의 이유로 전혀 관여하지 않았다. 손을 맞잡고 일을 분담하여 함께 재미있게 하고 싶었다. 연습과 연주 지도부터 보고서 작성과 회계 정산까지 혼자서 모든 일을 하려니 힘들었다. 조금 남은 지원금을 남김없이 쓰려고 여기저기 다니며 항목에 맞는 물건 사는 것도 혼자의 몫이었다. 외로웠다. 남들 곤히 잠든 시간에 작업하고 있는 모습이 처량하게 느껴졌고 마음에는 불편함이 요동쳤다.
올 3월 다시 제안서를 내자는 사람과 우리끼리 소소하게 하자는 사람으로 나뉘었다. 투표 결과 제안서를 내기로 결정되었다. 나는 작년의 어려움을 토로하며 ‘함께 손잡고 일하겠다는 사람이 있으면 하겠다’라고 하니 부족하지만 자진하여 같이 돕겠다는 사람들이 나섰다. 이제는 임원 카톡방에 나의 의견을 올리고 서로 의견을 나눈다. 맡은 일을 열심히 하려는 움직임이 보인다. 이제는 외롭지 않게 마티스의 ‘댄스’처럼 손잡고 자유롭게 춤추듯 재미있고 즐겁게 마을 공동체 사업을 운영할 수 있는 예감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