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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번의 마력    
글쓴이 : 김늘    22-08-15 16:17    조회 : 3,970
   백번의 마력.hwp (90.0K) [0] DATE : 2022-08-15 16:17:22

백번의 마력

김늘

 

   이진의 장편소설 기타 부기 셔플에 나오는 주인공 김현의 성장 과정은 흥미로웠다. 유복하게 자라던 어린 시절 부모님이 시키는 대로 바이올린을 공부했다. 소나타 두어 개 마칠 즈음 바이올린이 재미가 없어진 현은 레슨을 빼먹고 연습하지 않아 선생님에게 손등에 멍이 들도록 맞았다. 그것을 본 엄마는 당장 레슨을 그만 받게 하였다.

   6.25를 겪으며 부모님을 잃은 현은 숙부 집에 얹혀살게 된다. 온갖 구박을 받으며 숙부 공장에서 일하고 받은 월급으로 음악다방에서 음악 듣는 것을 낙으로 삼았다. 숙부 집에 불이나 쫒겨나다시피하여 독립한다. 오갈 데가 없어 노숙할 위기에 우연히 친구를 만나 미군기지 쇼단의 잔심부름꾼으로 들어간다. 쇼 단원중 기타리스트의 갑작스러운 결근으로 김현은 그 자리를 대신한다. 음악다방에서 많이 들었고 그 당시 유행이었던 기타 부기 셔플이라는 팝송을 불렀다. 다른 사람들은 진짜 연주를 하고 김현은 전기기타 코드는 빼놓은 채 연주하는 척한 것이다. 미군들은 열광적으로 환호하였고 연주는 성공리에 끝났다. 대타로 시작해 끼와 실력이 인정되어 쇼단의 정식 기타리스트가 된다. 낡은 기타 하나 사서 잠을 줄여가며 연습에 매진했다. 최소 30여곡은 자유자재로 연주할 수 있어야 한다. 다른 기타리스트들의 주법과 무대 매너를 면밀히 관찰하여 연구하여 흉내를 냈다. 무턱대고 자립을 갈망한 것은 배고픔을 면하기 위해서였다. 이제 기타를 배워 전문 기타리스트가 되는 목표를 찾았으므로 쇼단원으로 최선을 다하였다.

   한국인을 위해 미국인들이 박수쳐 주는 유일한 곳에서의 성공, 그것이야 말로 K-POP의 원조였다. 어릴 때 억지로 바이올린을 배웠다. 공돌이 시절 밤새워 미국 방송 AFKN을 들었다. 배고픔을 참아가며 음악다방에서 음악을 들었다. 이런 것이 기회가 왔을 때 발현되어 김현을 더 나은 곳으로 인도했다. 준비된 자에게 기회는 주어지게 되어있다. 주인공이 얼떨결에 기타 연주자가 되었을 때 10여 년 숙부 집에서 눈칫밥 먹으며 힘든 시간을 참고 견딘 세월을 보상받은 듯하여 나도 기뻤다.

   목표, , 마음의 바람을 위해 노력함은 놀라운 경험으로 이어지곤 한다. 내가 피아노를 시작한 것은 초등학교 6학년 때이다. 대청마루에 놓여있던 2단 찬장 앞에서 종종 피아노 치는 흉내 내던 모습을 보셨던 듯하다. 어머니 손에 이끌려 피아노 개인 교습소에서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다. 피아노 앞에서 예쁜 드레스를 입고 연주하는 모습을 상상했다. 천재적 재능은 아니었지만 성실한 노력으로 음악을 전공으로 택하게 되었다.

   피아노를 전공한 나는 일 년에 한 번 가을에 있는 학교 정기 연주회에 출연해 보고 싶었다. 2학년 때 피아노 트리오를 결성하여 베토벤의 피아노 트리오 대공1악장을 연주했다. 3학년 때는 모차르트의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1악장을 연주했다. 4학년 졸업반이 되어 솔로를 해 보고 싶어서 쇼팽의 바레이션 브릴란테를 연습하고 있었는데 10·26 사태로 연주회가 취소되어 아쉬운 마음이 컸다. 그런데 교사로 발령을 받아 2년 차에 기회가 왔다. 교사 음악회가 있어서 그것에 도전하였다. 등위 안에 들면 연구 점수도 반영되니 일석이조였다. 나는 2등급을 받아 학교 강당이 아닌 청주 예술 문화회관에서 연주하게 되었다. 연주 시간은 사오 분, 길어야 육칠 분 정도이지만 이를 위한 노력은 어마어마했다. 최소한 백 번, 아니 그 이상 연습을 해야 작품의 맛을 알고 연주할 수 있다. 거기에 기타 부기 셔플김현의 목표에 대한 갈망처럼 내가 걸어온 길들이 더해져 간절히 바랐던 연주를 만족스럽게 마칠 수 있었다.

   서울로 이사 온 2001년부터 십여 년 간 다닌 교회에서는 해마다 가을에 지역교회들과 함께 연합 성가제를 한다. 오 년째 되던 2005년도에 우리 교회는 헨델의 할렐루야를 연주하기로 하였다. 많이 들어본 곡이고 여러 번 성가대에서 연주해 보았지만 악보를 외워서 해야 하는 것은 어려웠다. 멜로디는 어찌할 수 있는데 난 알토 파트였다. 이 곡을 외우기 위해서 백 번은 불러 보아야겠다는 맘이 들었다. 연주회 날까지 매일 하루에 몇십 번씩 불렀다. 드디어 연주회 날, 악보없이 합창이 가능했으며 연주하는 내내 눈앞에서 악보가 넘어가는 경험을 했다. 그해 가을 성가제에서 악보 들지 않고 하는 성가대는 우리뿐이었다.

   하모니카로 어메이징 그레이스를 불었을 때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호흡 연습에 좋다고 많이 불어 보라고 하였다. 이것도 백 번 연습해보자는 마음으로 백 개의 동그라미가 그려진 프린트물에 표시하며 불었다. 어린 시절 피아노 학원에서 연습할 때 과제장에 스티커 붙이던 것이 생각났다. 과연 호흡도 길어졌으며 눈앞에서 악보가 떠올라 가사를 생각하며 마음을 담아 불게 되었다. 요즘은 우리나라 민요 메들리를 불고 있다. 마지막 엔딩은 예전에 하지 않았던 새로운 기법이다. 혀로 아르르르하면서 두 박자 동안 두 옥타브를 글리산도처럼 지난다. 먼저 혀가 잘 돌아야 하기에 큰 호흡 후 아르르르를 열 번씩 열 번 하였다. 머리도 어지럽고 손에 쥐가 나는 듯하다. 이것을 열 번을 더해 보려는 맘으로 길을 가면서, 운전하면서, 주방에서도 생각날 때마다 연습했다. 그런 후 하모니카에서 소리 내는 연습을 해야 한다. 한 호흡 가다듬고 혀를 굴리며 소리를 낸다. 처음에는 첫 부분만 혀 굴리는 소리가 났다. 이것도 그만큼 노력해야 능숙하게 연주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며 연습의 수를 세어가며 했다. 백번은 훨씬 넘었으리라. 이제는 마지막 음에서까지 혀 굴리는 소리가 난다. 연주가 끝나면 한 호흡 쉰 다음 자신 있고 도도한 모습으로 입에서 하모니카를 떼고 인사하는 모습을 그려본다.

   초등학교 시절 원고지를 묶어 겉표지에 엄마가 채송화를 색연필로 예쁘게 그려준 기억이 있다. 글짓기 과제물로 만들었는데 무엇을 썼는지 모르겠다. 앨범 정리를 하다 보니 여고 시절 여러 명이 잔디밭에 앉아 글 쓰고 있는 사진을 발견하였다. 클럽활동 시간에 글짓기반 활동을 했었다. 그 후 40여 년 그것과는 상관없이 지내왔다. 늦은 나이에 그 공부를 하며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있다. 배울수록 어려운 것임을 알았다. 천부적 소질은 없다. 그래서 글을 쓰며 종종 좌절한다. 얼마나 더 해야 조금 더 나아질 수 있을까? 노력 앞에서 바보 같은 질문이 이어진다. 백번의 백번, 그 배의 배는 노력해야 하지 않겠냐는 답이 기타 소리로 피아노 선율로 하모니카 멜로디로 들려온다. 나는 지금 나의 기타 부기 셔플을 만날 날을 꿈꾸며 자판을 두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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