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섭이의 롤 케이크
무역센터반 윤소민
드르르륵...
“윤소민 선생님...아! 선생님, 저기 이거...”
불쑥 한 아이가 제과점 종이 가방을 앞으로 내밀면서 연구실 안으로 쭈뼛쭈뼛 들어온다. 나는 내 책상까지 아이가 도달하기 전에 얼른 일어나 아이를 향해 걸어갔다. 2년 전 담임하면서 맡았던 제자 형섭이였다.
“어, 형섭아, 어쩐 일이야?”
“선생님, 이거...저 오늘 졸업했거든요.”
졸업식 날, 롤 케이크를 들고 4학년 때 담임이지만, 지금은 전담 교사를 하고 있는 나를 만나기 위해 반대편 건물에 있는 전담실까지 찾아오다니 반갑고 놀라웠다. 2020년, 이 학교에 부임하자마자 코로나19가 터지고, 첫해에는 6학년을 하고 이듬해에는 4학년을 했다.
그 2년 간은 학생 밀집도를 낮추기 위해 등교 인원을 조절하였고, 그러다 보니 격주로 대면 수업과 비대면 수업을 병행하였다. 아이들을 직접 대하는 시간이 짧다 보니 정도 덜 들고, 아이들 관계에서 문제가 보여도 제대로 관찰하고 중재하기가 어려웠다.
‘잃어버린 2년’이라 할 정도로 아이들의 성장에 교사로서의 제 역할을 못 하고 방역과 행정에 과몰입되었던 시간이었다. 그래서 미안한 마음도 있고 덜 채워진 정도 있어 오늘 졸업한다는 것을 알았지만 강당에 가는 것을 망설이다 가지 않았다. 그런데 이렇게 일부러 인사를 오니 몸 둘 바를 모르겠다.
전담 교사들이 같이 사용하는 연구실이라 밖에서 이야기를 하려고 졸업 축하한다고 하면서 아이를 데리고 복도로 나왔다. 복도에는 형섭이의 부모님이 꽃다발을 들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부모님도 코로나로 인해 한 번도 뵌 적이 없어 첫 대면이었다. 4학년 때 담임을 기억하고 이렇게 찾아와줘서 고맙다고 했더니, 형섭이가 4학년 때 전학 왔고 마침 코로나여서 친구도 없이 적응하기 너무 힘들었는데, 선생님이 잘 챙겨줘서 고맙다고 한다. 의례적이면서 어색한 인사를 몇 마디 주고 받은 뒤 형섭이네 가족은 계단 쪽으로 걸어갔다.
‘참 고마운 사람들이네.’
저녁에 집에 와서 남편에게 오늘 졸업식이었는데 옛날 제자한테서 이런 걸 받았다고, 요즘도 이런 사람이 있다고 생각지 못한 감동이라고 했다.
"당신이 잘 했겠지."
남편은 당연하다는 듯이 말한다.
“글쎄...꼭 그런 건 아닌 것 같아. 사실 더 신경 써주고 잘해 준 애도 있어. 얼마 전에도 엄마가 전화해서 애 문제로 어렵다고 해서 도움 줬잖아. 2년 전 담임 찾아 그렇게 해달라고 하기 쉽지 않은데...내가 2년 무상 AS 해준 거지. 그치만 그 사람은 고맙다고 안하더라. 형섭이와 부모가 감사를 잊지 않는 사람들인 거지.”
그렇게 말을 하고 나서 퍼뜩 내 생각이 모순적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10년간 ㄱ대학 교육대학원에서 겸임 교수로 강의를 했다. 낮에는 꼼지락거리는, 화장실까지 가도 되는지 물어보고 가는 어린 초등학생들을 가르치다가, 저녁에는 교사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해 대학원을 다니는 성인 학습자를 가르쳤다.
처음 한두 학기는 그 격차가 혼란스러웠지만 이내 시간이 해결해 주었다. 그러나 여전히 적응되지 않는 것은 매 학기 수강생들이 남기는 강의평가였다.
‘이 강의를 다른 사람에게 추천하고 싶다.’, ‘교수자는 학생들에게 적절한 피드백을 하였다.’ 등의 항목에 ‘보통’ 혹은 ‘그렇지 않다’가 몇 건이라도 체크 되어 있으면 억울했다. 특히 서술식 평가에 ‘과제가 많아서 힘들었다’, ‘학교 현장에서 실제 사용할 수 있는 내용도 중요하지만 이론이 부족했다.’ 등 강의 계획서와 OT 때 이미 설명했는데 수강 신청을 변경하지 않고 남아있다가 자기 생각과 달랐다고 쓰는 후기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강의평가 점수가 높아 우수 강의상을 여러 번 받았으면서도 나는 몇 명이 남기는 악평에 무척 괴로웠다. 남편은 60명의 학생들에게 어떻게 좋은 말만 들을 수 있냐고, 너무 완벽하려 하지 말라고 위로했지만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어떤 말은 너무 마음에 남아 억울해서 심장이 뛰고, 내가 그렇게 잘못했나, 얼마나 어떻게 더 잘해야 하나, 밤새워 생각한 적도 있다. 심지어 아침에 눈 뜨자마자 그 말부터 생각나는 날이 이삼일 이어진 적도 있다.
그런데 형섭이가 준 롤 케이크를 보면서 생각해 보니 롤 케이크가 그들의 인품이라면 혹독한 강의평가에도 분명히 ‘그 사람의 몫’이 있다. 주변에 많은 교사들이 교원평가에 적힌 악평, 뉴스 기사나 맘 카페에 적힌 악플들 때문에 속상해하고, 자책하고, 가르칠 의욕을 잃는다고 한다. 그런 교사들에게 나는 남편이 내게 말한 것처럼 "당신의 탓만은 아니다."라고 말해주고 싶어진다.